주요 메뉴 바로가기 (상단) 본문 컨텐츠 바로가기 주요 메뉴 바로가기 (하단)

27년 전 신촌역 앞 김민기, 또 한 ‘어른’을 떠나보내다

맥스무비 조회수  

'뒷것'의 소박함으로 평생을 산 김민기(가운데). 올해 3월 서울 대학로 소극장 학전과 그에 대해 추억하며 SBS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에 출연한 이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맨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나윤선, 설경구, 송창식, 김대명, 이정은, 강신일, 박학기, 정재일., 황정민, 장현성, 윤도현,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사진제공=SBS
‘뒷것’의 소박함으로 평생을 산 김민기(가운데). 올해 3월 서울 대학로 소극장 학전과 그에 대해 추억하며 SBS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에 출연한 이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맨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나윤선, 설경구, 송창식, 김대명, 이정은, 강신일, 박학기, 정재일., 황정민, 장현성, 윤도현,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사진제공=SBS

“김 선생님! 제 차를 타시지요!”

1997년 봄 어느 늦은 밤 서울 경의선 신촌역 앞. ‘경기’ 번호판을 단 택시들이 길게 줄지어 선 채 일산과 파주 등 시외로 향하는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술에 취한 한 중년의 사내를 발견한 몇몇 택시기사들이 모여들었다. “김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모양새가 이미 아는 얼굴임을 알려주었다. 

택시기사들은 말 그대로, 깍듯하게 중년의 사내를 맞았다. 

“누군지 아세요?”라고 묻자 누군가 “아, 김 선생님도 몰라 보면 안 되죠”라고 말했다. “그럼 댁이 어딘지도…”라는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들은 “잘 모셔다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가세요”라며 기자의 등을 떠밀었다.

중년의 사내는 서울 대학로를 상징하던 소극장 학전의 김민기 대표였다. 

당시 김 대표는 ‘지하철 1호선’에 이어 또 한 편의 록뮤지컬 ‘모스키토’를 준비 중이었다. 

공연을 취재 영역으로 담당하며 ‘모스키토’ 연습장을 찾았다. 연습이 끝난 뒤 김 대표는 저녁이나 먹고 가라며 기자를 붙들었다.

김치전 등 소박한 안주에 막걸리잔을 주고 받았다. 김 대표와 함께한 몇몇 배우가 자리를 떠난 뒤 얼큰하게 취한 김 대표와 함께 택시에 올랐다. 

그는 기자 초년생의 일상을 이것저것 나지막한 목소리로 캐물어가며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들려주었다.

신촌역 앞에 도착한 택시에서 그를 부축하며 내리자 그에게 모여든 택시기사들. 그들의 호칭과 사람 대하는 태도는 단순한 단골 승객을 향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은 따뜻한 눈망울로 자신들의 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던 한 예술인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표하고 있는 듯했다.

다만, 그는 자신에게로 향하는 세상의 애정에 무심했고, 오히려 ‘뒷것’의 자리에 머물기를 바랐다.

무대 위에 오르는 배우와 뮤지션 등 아티스트들을 ‘앞것’이라 부르며 자신은 그들에게 그 무대를 펼쳐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해했다고, 올해 3월 선보인 SBS 다큐멘터멘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는 말해주었다.

그런 그를 한때 세상은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다.

1969년 서울대 미대 회화과에 입학한 그는 물감값을 보태기 위해 고교동창인 김영세(전 이노디자인 대표)와 ‘도깨비 두 마리’라는 뜻의 포크 듀오 ‘도비두’를 결성했다. 서울 명동의 서울YWCA가 청년들을 위해 문을 열어준 문화공간 청개구리의 집을 드나들며 노래했다.

그 시절 재수생 양희은을 만났고, 세상에 내놓은 노래가 바로 ‘아침이슬’이었다.

김민기는 1971년 자신의 독집 앨범 ‘김민기’를 선보였다. ‘아침이슬’과 함께 ‘친구’ 등이 실린 음반은 당대 ‘팝송’을 번안한 노래가 넘쳐나는 시대에 오롯한 문학적 향취로 가득한 자작곡을 가득 담은 앨범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당시 앨범과 노래는 오래가지 못했다.

사진제공=학전
사진제공=학전

정권의 극심한 사회적 통제와 단속은 이를 ‘불온한 것’으로 바라보았다. 불과 1년 전 ‘건전가요 서울시문화상’을 받았던 노래 ‘아침이슬’은 1972년 10월 유신과 함께 방송에서 부르지도, 듣지도 못하는 노래로 금지당했다.

서울대 문리대 신입생 환영회에서 노래를 부르려다 경찰에 연행되기까지 한 그는, 원치 않았지만, 당대 저항의 또 다른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당국의 체포와 구금의 탄압 속에서 자신을 구타하는 보안사 조사관들을 바라보며 “나 때문에 이들이 죄를 짓고 있구나 싶어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던(2024년 5월6일 한겨레 ‘김영희 칼럼’) 그는 오랜 시간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난 날, 달동네 공공어린이집 설립을 위한 모금공연에서 다시 노래했다.

그만큼 노래는 그에게 절박한 힘이었는지 모른다.

1991년 소극장 학전의 문을 열기 위해 그는 녹음스튜디오의 마이크 앞에 섰다. 

4장의 앨범으로 구성한 ‘김민기 전집’을 내놓으며 그 선불금으로 180석 규모의 소극장 학전을 마련했다.

1994년 초연한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시작으로 김민기는, 이제 다 알다시피, 숱한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그 무대를 통해 설경구, 김윤석, 장현성, 황정민, 조승우 등 스타들이 탄생했다. 

이를 통해 그는 서울 대학로 소극장 문화를 이끈 또 한 사람의 문화기획자로 자리매김했다. 

가수 김광석은 학전에서 무려 1000회 콘서트를 마칠 수 있었고, 작곡가 겸 가수 노영심과 윤도현 등도 자신들의 무대를 꾸몄다. 소극장 라이브 콘서트가 대중 속으로 스며들 수 있게 한 커다란 계기도 바로 그들의 무대였다.

김민기는 2000년대 들어서서는 ‘아빠 얼굴 예쁘네요’ 등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무대에도 힘을 쏟았다. “돈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돈을 벌면 끝내 못할 것 같아서” 아낌없이 투자했다. 

김민기는 그렇게 묵묵히 ‘앞것’들의 무대를 열어주며 ‘뒷것’의 자리만을 지켰다.

암울한 시대에 묵묵히 맞서면서 소외된 이들의 아픔을 낮은 목소리로 노래한 음유시인,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한 시대의 문화적 흐름을 이끌었던 탁월한 기획자.

하지만 기자에게 김민기는 다른 무엇보다, 소박한 막걸리 한 잔에 취해서도 새카맣게 어린 청년과 세상 사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공감의 고개를 끄덕여 천진난만해 보이는 눈웃음을 내어주던 ‘어른’으로 남아 있다. 

이 시대 또 한 분의 ‘어른’이 그렇게 세상과 이별하고 있다.

맥스무비
content@newsbell.co.kr

댓글0

300

댓글0

[연예] 랭킹 뉴스

  • [리뷰: 포테이토 지수: 78%] '백수아파트', 백수가 층간 소음 추적하는 까닭은
  • 김종국 쓰레기집→복덩이 지예은…'런닝맨', 폼 되찾고 2년만 '최고' [MD포커스]
  • 묘하게 어울리는 '굿데이' 88라인 '나솔' 식 작명
  • 이준수가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21kg 뺀 비결은?
  • 故김수미 보낸 후 서효림이 방송 모두 거절하다 나온 이유: 이렇게 깊은 뜻이 있을 줄 몰랐다
  • "밀리언셀러 유지 원해" 제로베이스원, '푸르른 청춘' 됐다…재계약은? [MD현장](종합)

[연예] 공감 뉴스

  • “오지랖의 선한 영향력, 연대의 힘”… ‘백수아파트’, 공감 얻을까
  • 첫회에 파격 키스신만 4번…결국 시청률 8% 돌파하며 1위 찍은 '한국 드라마'
  • [S노트] 농염한 썸머케익, 이 시점 주목해야 할 '섹시 여가수'
  • 50만 돌풍 '서브스턴스' 2030 여성 관객에 제대로 통한 '충격요법'
  • 한동근, 결혼 3년만 아빠 된 기쁨 "늘 함께 해줄게"
  • '이용식 딸' 이수민, 임신 30주 차? 출산 임박했다...'♥원혁 싱글벙글' [MD★스타]

당신을 위한 인기글

  • “하이브리드 무서워서 못 사겠네!” 스포티지 HEV, 주차 중 자체 발화
  • “그랜저 괜히 샀네” 신형 혼다 어코드, 더 날렵해진 디자인 공개
  • “람보르기니보다 빠른 아우디?” 640마력 RS Q8 퍼포먼스로 판매 부진 이겨낼까?
  • “사자마자 구형된 내 차” 싸서 샀더니 뒤통수 맞는 중국차 근황
  • “전기 VS 디젤 픽업” 무쏘 EV와 타스만, 국내 픽업 트럭 강자가 될 자는 누구인가?
  • “3천만 원으로 스포티지 잡는다” 토레스 하이브리드, 예비 오너들 사로잡는 사양 공개
  • “한남동 건물 60억 세금 추징” 이하늬의 1억 원대 벤츠 AMG, 탈세 의혹에 눈길
  • “이건 진짜 선 넘었지” 4기통에 1억 5천 받는 벤츠 오픈카

함께 보면 좋은 뉴스

  • 1
    남극과 세상을 연결하는 ‘통신’ 이야기

    뉴스 

  • 2
    고용부, 전국 영세제조업체 229곳 중 190곳 ‘노동관계법 위반’ 적발

    뉴스 

  • 3
    최정 이후 19년 만에 뽑았던 이 선수, 내외야 겸업 도전…SSG 슈퍼 유틸리티로 거듭나나 "어색함 사라졌다"

    스포츠 

  • 4
    복귀전 159.8km 미쳤다, ML 55승 사이영상&100패 팀 에이스 컴백…美 경악 "아무도 159km 도달 못했는데"

    스포츠 

  • 5
    “월급 다 세금으로 나가네” ‘국민연금 개혁’ 어떻게 됐길래

    경제 

[연예] 인기 뉴스

  • [리뷰: 포테이토 지수: 78%] '백수아파트', 백수가 층간 소음 추적하는 까닭은
  • 김종국 쓰레기집→복덩이 지예은…'런닝맨', 폼 되찾고 2년만 '최고' [MD포커스]
  • 묘하게 어울리는 '굿데이' 88라인 '나솔' 식 작명
  • 이준수가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21kg 뺀 비결은?
  • 故김수미 보낸 후 서효림이 방송 모두 거절하다 나온 이유: 이렇게 깊은 뜻이 있을 줄 몰랐다
  • "밀리언셀러 유지 원해" 제로베이스원, '푸르른 청춘' 됐다…재계약은? [MD현장](종합)

지금 뜨는 뉴스

  • 1
    종의 기원 [김다은의 웹소설] <21회>

    뉴스 

  • 2
    "재고 정리 90% 할인"…혹해서 구매했는데 판매자는 '연락 두절'

    뉴스 

  • 3
    '의욕이 불러온 대참사'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안토니, '1도움→다이렉트 퇴장' 베티스, 헤타페에 2-1 승리

    스포츠 

  • 4
    '송끄란'연휴엔 '한국 봄꽃여행'오세요!...태국 해외여행 성수기 겨냥, 한국관광 세일

    여행맛집 

  • 5
    농심 북미 매출 회복, 중국 수익성 개선 긍정적

    뉴스 

[연예] 추천 뉴스

  • “오지랖의 선한 영향력, 연대의 힘”… ‘백수아파트’, 공감 얻을까
  • 첫회에 파격 키스신만 4번…결국 시청률 8% 돌파하며 1위 찍은 '한국 드라마'
  • [S노트] 농염한 썸머케익, 이 시점 주목해야 할 '섹시 여가수'
  • 50만 돌풍 '서브스턴스' 2030 여성 관객에 제대로 통한 '충격요법'
  • 한동근, 결혼 3년만 아빠 된 기쁨 "늘 함께 해줄게"
  • '이용식 딸' 이수민, 임신 30주 차? 출산 임박했다...'♥원혁 싱글벙글' [MD★스타]

당신을 위한 인기글

  • “하이브리드 무서워서 못 사겠네!” 스포티지 HEV, 주차 중 자체 발화
  • “그랜저 괜히 샀네” 신형 혼다 어코드, 더 날렵해진 디자인 공개
  • “람보르기니보다 빠른 아우디?” 640마력 RS Q8 퍼포먼스로 판매 부진 이겨낼까?
  • “사자마자 구형된 내 차” 싸서 샀더니 뒤통수 맞는 중국차 근황
  • “전기 VS 디젤 픽업” 무쏘 EV와 타스만, 국내 픽업 트럭 강자가 될 자는 누구인가?
  • “3천만 원으로 스포티지 잡는다” 토레스 하이브리드, 예비 오너들 사로잡는 사양 공개
  • “한남동 건물 60억 세금 추징” 이하늬의 1억 원대 벤츠 AMG, 탈세 의혹에 눈길
  • “이건 진짜 선 넘었지” 4기통에 1억 5천 받는 벤츠 오픈카

추천 뉴스

  • 1
    남극과 세상을 연결하는 ‘통신’ 이야기

    뉴스 

  • 2
    고용부, 전국 영세제조업체 229곳 중 190곳 ‘노동관계법 위반’ 적발

    뉴스 

  • 3
    최정 이후 19년 만에 뽑았던 이 선수, 내외야 겸업 도전…SSG 슈퍼 유틸리티로 거듭나나 "어색함 사라졌다"

    스포츠 

  • 4
    복귀전 159.8km 미쳤다, ML 55승 사이영상&100패 팀 에이스 컴백…美 경악 "아무도 159km 도달 못했는데"

    스포츠 

  • 5
    “월급 다 세금으로 나가네” ‘국민연금 개혁’ 어떻게 됐길래

    경제 

지금 뜨는 뉴스

  • 1
    종의 기원 [김다은의 웹소설] <21회>

    뉴스 

  • 2
    "재고 정리 90% 할인"…혹해서 구매했는데 판매자는 '연락 두절'

    뉴스 

  • 3
    '의욕이 불러온 대참사'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안토니, '1도움→다이렉트 퇴장' 베티스, 헤타페에 2-1 승리

    스포츠 

  • 4
    '송끄란'연휴엔 '한국 봄꽃여행'오세요!...태국 해외여행 성수기 겨냥, 한국관광 세일

    여행맛집 

  • 5
    농심 북미 매출 회복, 중국 수익성 개선 긍정적

    뉴스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