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0.8%(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김태호 피디의 새 예능 프로그램 ‘마이 네임 이즈 가브리엘’(JTBC∙이하 가브리엘)이 방송 4회 만에 0%대로 내려갔다. 지난달 20일 1.5%로 시작해 줄곧 1%대에 머물렀다. 김 피디는 시청률 부진에 대해 “단시간에 1등할 생각은 없었다. 시청자들에게는 끝 기억이 좋아야 한다”고 21일 ‘손석희의 질문들’에서 밝혔지만, 0%대는 얘기가 다르다.
또 다른 시청률 보증수표였던 이효리가 나온 ‘엄마, 단둘이 여행갈래?’(JTBC)도 5월26일 2.5%로 시작해 지난 14일 1.3%로 막을 내렸다. ‘효리네 민박’ ‘서울체크인’ 등 예능만 나오면 화제를 모았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8부작 내내 1~2%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본방사수’하지 않는 시청 행태, 플랫폼 다변화 등을 핑계 삼기에는 지난달 28일 시작한 ‘서진이네’(tvN)가 8~9%대로 순항 중이다. 재미있으면 본다는 얘기다. ‘이름값’기대했던 두 프로의 부진은 요즘 시청자들이 예능을 바라보는 기준이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우선, 연예인들이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는 콘셉트 자체가 더는 시청자의 공감을 얻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가브리엘’은 ‘무한도전’에서 화제가 됐던 프로젝트 ‘타인의 삶’의 연장선이다. 박보검은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합창단 단장 루리가 되어 거리공연을 준비하고, 박명수는 타이 치앙마이에서 현지 요리인 솜땀 장사를 하는 우티가 된다. 연예인들이 다른 일을 경험해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사람의 인생을 72시간 동안 살아보는 일종의 ‘설정 놀이’다.
출연자들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서 화려한 삶과는 다른 일상을 경험하며 내내 “행복하다” “여기서 살고 싶다”며 바쁘게 살아온 자신을 돌아본다. 그러나 ‘가브리엘’의 문제는 여기에 있다. 이 설정 자체가 전쟁 같은 일상을 사는 소시민들에게는 배부른 소리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한 30대 시청자는 “조금만 유명해져도 빌딩 한 채는 거뜬히 사들이는 연예인들이 평범한 일상을 힐링의 기회처럼 대하는 것이 공감되지 않는다”고 했다. ‘무한도전’ 당시에는 출연자들이 ‘대한민국 국민 평균 이하’라는 설정이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나와 같은 마음으로 응원하고 공감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기득권’이 된 연예인들이 그들 기준에서 평균 이하의 삶을 재미삼아 경험해보는 것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연예인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평범한 국민이 쉽게 누릴 수 없는 것들을 부족함 없이 누리고 있다는 것”이라며 “연예인이 외국에 나가서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것 자체가 비연예인의 관점에서는 특혜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오히려 ‘싱어게인’ 등 비연예인들의 간절함을 담은 프로그램이 더 화제를 모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한 방송사 예능 피디는 “‘타인의 삶’이라는 세계관을 지우고 연예인 박보검이 합창단 단장에 도전하고, 박명수가 솜땀 장사에 도전하는 것이 더 몰입하기 쉬웠을 것 같다”고 했다.
두 프로에서는 예상을 빗나가는 의외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효리가 ‘효리네 민박’ ‘서울체크인’ 등으로 인기를 얻었던 것은 오랫동안 방송 노출이 없던 그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끄집어냈기 때문이었다. 화려한 스타였던 그가 제주에서 대중을 상대로 친언니 같은 친근함을 줬고, 그런 그가 서울을 낯설어하는 모습 자체가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엄마, 단둘이 여행갈래?’에서는 그동안 여러 예능에서 봐왔던 모습을 반복했고 ‘가브리엘’에서 박보검과 박명수는 평소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가브리엘’은 언어의 장벽 때문에 완전히 그 삶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리얼한 몰입을 보여주는데 장애요소가 됐다”고 했다.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예능에서는 실험적인 시도가 쏟아지고 있지만, 김 피디나 이효리에게 기대했던 과감한 시도가 오히려 줄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태호 피디는 2022년 문화방송을 퇴사하고 외주제작사를 차린 이후 여러 프로그램을 내놨지만, ‘무한도전’ 때와 달리 안전하고 익숙한 콘셉트를 주로 선보였다. 윤 교수는 “김 피디는 문화방송에서 주류 문화를 거스르는 창의적 발상에 집중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시대정신을 주도하는 능력으로 발휘됐다. 그러나 외주제작사를 운영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경영자로서의 조급함이 앞설 수밖에 없고 이것이 크레이터로서의 창의성 발산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한겨레 남지은 기자 /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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