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쯤엔 서울 말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려고.” 요즘의 나는 친구들에게 이 말을 자주 한다. 친구들은 대개 내 이야기에 큰 관심을 보인다. 어디로 가려고? 알아본 데는 있어? 가서 뭐 할 거야? 그런데 왜 떠나려고? 등등의 질문이 쏟아진다. 어디로 갈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어. 여행 삼아 몇 군데 다녀보기는 했지만. 가서 구체적으로 뭘 할지는 차차 생각해 봐야지. 알다시피 서울에서는 숨만 쉬고 사는 데 너무 많은 돈이 들잖아. 이제 그렇게 살기 싫어. 여기까지 답하고 나면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서울은 거주비가 너무 비싸긴 하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 그렇지만 다들 서울을 벗어나는 건 두렵다고 고백한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곳에 가서 혼자 외로울까 봐, 가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봐, 혹은 다시 서울로 돌아오지 못할까 봐 떠남을 고려하지 않는다.
나라고 이주 후의 삶이 걱정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뭘 하면서 돈을 벌고 살아야 할지, 어떻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것은 서울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여기서든 저기서든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된다면 생활을 지탱하는 데 드는 비용이라도 줄이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활비가 줄어든다는 건 필요 이상으로 일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며, 그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최소한으로 해도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가끔 서울에 정착해 이만큼 살고 있는 게 스스로 신기하게 느껴진다. 20대 후반, 새로운 회사로 이직하면서 부산에서 서울로 이주한 후 오랫동안 동경해 왔던 이 도시의 일원이 됐다는 걸 자랑스럽게 여겼다. 낮이나 밤이나 아름다운 한강, TV에서나 봤던 유명한 공간들, 그 밖의 수많은 가능성이 이렇게나 가까이 있다니. 서울에서 아는 얼굴들이 이만큼이나 늘었다니. 문제는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버티듯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 달에 드는 최소한의 생활비와 통장에 남은 돈, 앞으로 벌어야 할 돈을 비교하며 초조해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도 어쩔 수 없이 캘린더를 꽉꽉 채울 정도로 해내고, 그러다 보면 정말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싶은 활동에는 사용할 자원이 남아 있지 않은 생활이 지겹다. 처음 서울에 왔던 때는 그게 곧 끝날 임시적 삶의 방식이라 예상했는데, 40대를 눈앞에 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건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일 테다.
그래서 미래를 바꿔보기 위해 이주를 결심했다. 다른 지역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무작정 이주를 결정할 수 없어서 지난해 말부터 마음 맞는 친구와 다양한 곳으로 탐방을 떠나기 시작했다. 말이 탐방이지 현실적으로 시간을 길게 내기 어려워 보통 1박 2일, 길어도 2박 3일 정도의 여행이다. 방문한 지역을 깊이 있게 이해한다기보다 그곳과 겨우 안면을 트는 시간인 셈이다.
처음 가본 곳은 목포였다. 목포에 발을 디딘 지 약 세 시간 만에 사랑에 빠지고 말았는데, 일단 모든 식당에서 먹은 음식이 맛있었고 그 다음으로는 도심 곳곳에 남아 있는 건축 문화유산이 근사해서였다. 길고양이가 많고 대부분 사람을 겁내지 않는다는 점도 내 마음을 빼앗았다. 밤의 목포 구도심을 산책하며 친구와 ‘목포에 산다면’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꽤 길게 나눴다. 목포에 다녀온 이후 한동안 만나는 사람들에게 목포가 얼마나 멋진 곳인지, 왜 내가 목포에 살고 싶은지를 늘어놓았다. 그 다음은 대전에 갔다. ‘노잼’ 도시라는 세간의 평과 달리 짧은 시간에 유명 코스만 압축적으로 경험한 여행자 입장에서는 보고 즐길 게 많아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대전근현대사전시관을 천천히 둘러보고, 오징어가 잔뜩 든 두부두루치기를 먹고, ‘프렐류드’에 들러 문구를 구경하고(사고), 당연히 성심당 빵도 사 먹었다. ‘다다르다’와 ‘삼요소’라는 최고의 서점에 들러 책도 샀다. 나는 대전과도 사랑에 빠졌다. 마음속에서 나는 이미 대전광역시 시민이었다. 가장 최근에는 공주에 다녀왔다. 태어나서 공주에 가보는 건 처음이었다. 제민천이라는 하천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도시 풍경이 좋았다.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 근처 편의점에서 빵과 커피를 산 다음, 제민천 근처의 커다란 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식사를 즐겼다. 공주에서 보내는 매일 아침이 이미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듯했다.
목포와 대전, 공주는 각각 다른 매력이 있는 곳이었고, 나는 각각의 지역에 갈 때마다 빠르게 그곳에 반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모든 곳이 좋았는데 어디로도 가고 싶지 않았다. 이주를 머나먼 언젠가의 일이 아니라 곧 닥쳐올 일이라고 생각하자, 현실적인 고민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 탓이다. 지금 하고 있는 커뮤니티 만드는 일을 이주해서도 지속할 수 있을까? 대학원 졸업까지 1년이 남았는데 이건 어떻게 한담? 서울에서 KTX로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지역으로 가야 하지 않나?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이어야 뭘 해도 먹고살 수 있지 않을까? 고민을 거듭할수록 중심은 내가 아니라 ‘돈 벌어 먹고살 수 있는 가능성’이 됐다. 모든 사람이 더 적게 일하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애초에 이주를 고려했던 이유인 ‘적은 노동으로도 유지 가능한 생활’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이주 후 바뀌게 될 삶이 미리 겁나서 움직이지 않을 이유를 찾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어디로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서 움직이려는 게 아니라 단지 서울을 벗어나겠다는 각오만 있으며, 그것만으로는 훌쩍 떠나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다른 지역에 대한 짧은 체험이나 막연한 환상으로는 서울의 인력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이주를 결심했다고 주변에 이야기하면서 가끔 서울 생활에 연연하지 않는 ‘쿨’한 나, 삶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려는 행동파인 나에게 취하기도 했다. 그래서 10년 넘는 세월 동안 서울 생활에 완전히 익숙해져 버렸다는 사실,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서울에서 되도록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지만. 그러나 여전히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삶에 대한 가능성도 놓고 싶지 않다. 먹고사는 문제보다 다른 것에 관심과 시간, 에너지를 더 많이 쓰고 싶다. 살고 싶은 곳과 살고 싶은 삶의 모순 사이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일단 이곳저곳을 계속 다녀보려고 한다. 서울보다 더 강한 인력으로 나를 끌어당길 곳을 머지않아 만나게 될 거란 기대를 품으면서.
황효진
」
책부터 팟캐스트까지 세심하고 다정한 시각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때때로 실패하며 배우는 기획자이자 작가. 건강하게 일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여성들의 커뮤니티 ‘뉴그라운드’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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