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오드리 헵번을 생각하면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 장면은 각자마다 다르겠지만 에티오피아든 소말리아든 아프리카 어린이와 함께 환하게 웃는 헵번. 주름도 노화도 해칠 수 없었던 아름다움, 아니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만났던 앤 공주보다 더 아름다웠던 풍모.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주는 모습이다.
‘멋진 여성’이라는 생각을 안고 젊은 시절 영화를 보기 시작하면 머리에 작은 지진이 인다. 일테면, 영화 ‘사브리나’(감독 빌리 와일더, 1954)를 봐도, ‘하오의 연정’(감독 빌리 와일더, 1957)을 봐도 헵번이 맡은 역할은 부유한 남자로 인해 신분 상승을 이루는 신데렐라다.
‘사브리나’에서는 미국 뉴욕 중심가에서 제조업에서 증권업, 다양한 기업을 문어발로 운영하는 사업가 집안의 저택에서 일하는 운전기사의 딸 사브리나로 등장하는데. 이미 결혼과 이혼을 3번 한 것으로도 모자라 늘 여자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사랑꾼 둘째 아들 데이비드(윌리엄 홀든 분)를 흠모한다.
‘하오의 연정’에서는 프랑스 파리 최고로 인정받는 탐정의 딸로 파리음악원에서 첼로를 배우고 있는 알리안느로 분했는데. 선박업과 금융업 등을 통해 억만장자가 된 미국의 부호로, 전 세계를 누비며 자유연애를 즐기는 중년의 플레이보이(게리 쿠퍼 분)를 사랑하게 된다.
1950년대라는 시대적 한계 안에서 작가든 제작사든 하물며 배우가 자유롭기는 힘들겠지…, 이해의 틀을 가지고 영화를 관람하다 보면. 어릴 적 가난과 기근을 딛고 성장, 배우 데뷔 전 나치에 저항하는 활동에 목숨을 걸고 가담했던 역사를 지닌 오드리 헵번이어선지 그저 미모 하나로 신데렐라에 등극하는 여타 로맨스물과는 다른 양상을 만난다.
분수 모르는 딸을 데이비드에게서 떼어놓겠다는 심산으로 사브리나의 아버지는 딸을 대서양 건너 프랑스 파리의 요리학교(아마도 르 꼬르동 블루)로 유학 보내려 하고. 데이비드를 못 보느니 이대로 죽고 말겠다고 못난 행동을 하던 사브리나는 집안의 첫째 아들 라이너스(험프리 보가트 분)에게 발견돼 목숨을 구한다. 그리고 파리로 떠난다.
처음엔 데이비드 생각에 배움도 뒷전이었지만, 점차 자아를 각성하고 패션에도 눈 뜨며 멋진 ‘파리지엥’의 모습으로 금의환향한다. 운전기사의 딸을 ‘무존재’ 취급하던 데이비드는 환골탈태한 사브리나를 가장 먼저 발견해 한눈에 반하고, 플라스틱이라는 신소재 개발을 위해 사탕수수 가문의 딸과 동생의 네 번째 결혼을 추진하던 라이너스는 위기를 맞는다.
40대가 되도록 일에만 파묻혀 살아온 독신남 라이너스는 사업가 기질을 살려 동생의 마음을 뺏은 사브리나의 환심을 살 계획을 세운다. 물론, 동생의 네 번째 결혼을 성공시켜 플라스틱의 재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목적이 있다. 라이너스의 계획은 함께 파리로 떠날 것처럼 위장해 사브리나만 파리로 떠나보내는 것.
모든 계획엔 ‘변수’가 발생한다. 일밖에 모르고 살아온 라이너스의 가슴에 사브리나가 사랑을 불을 지핀 것이다. 당연히 사브리나에게도 인생 최대 변수가 끼어든 것이다. 꼬마 때부터 짝사랑해 온 첫사랑 데이비드가 내 인생 사랑의 ‘상수’인 줄 알았는데, 그저 동경과 환상의 상대였던 인기남 데이비드와 달리 현실적 자상함으로 다가서는 라이너스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사람은 관성대로 살기 쉽다. 라이너스에겐 세계 최초의 신소재 플라스틱을 포기할 수 없는 사업가적 근성이 크고, 인생에서 사랑을 가장 중시하는 사브리나에게는 오랜 시간 마음에 품어온 첫사랑을 부정하기 어렵다.
‘하오의 연정’의 열아홉 살 알리안느는 호기심이 많다. 사립 탐정 아빠의 사건 파일들을 죄다 읽다 못해 달달 외우고 있다. 일으킨 스캔들이 많아 파일철이 두꺼운 프랭크가 모든 파일 속 남자들 가운데 제일 잘생겼다고 생각하고, 치정 사건들에서 낭만을 읽는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 부호 프랭크가 파리 내연녀의 남편에게 총을 맞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알리안느는 위험을 무릅쓰고 재기발랄한 연극을 통해 프랭크의 목숨을 구한다. 알리안느는 프랭크에게 첫눈에 반하지만, 그의 ‘무책임 자유연애’주의를 알고 있기에 청순함을 감추고 방임형 연애주의자를 가장한다.
오매불망 자신에게 매달리는 여자들과 달리 1년 만에 와도 끄떡없고 다른 남자 만나느라 바쁘니 오후 4시에 만나 6시 전에 떠야한다는 알리안느. 손에 잡히지 않는 알리안느에게 매달리게 되는 건 되레 로맨스 그레이 프랭크다.
관계의 역전은 일어났지만, 서로 사랑하게 됐지만, 진실을 확인할 수는 없다. 만나서 즐거운 보내면 되지 인생까지 섞을 필요가 있느냐, 각자가 서로에게 뱉어놓은 ‘자유연애주의자’의 선언들이 있지 않은가.
설상가상 두 사람의 관계를 명탐정 아버지가 알게 된다. 자신의 과거를 낱낱이 아는 사람이 연인의 아버지라니, 게다가 그 아버지는 탐정이 아니라 알리안느의 아버지로서 어린 딸을 지키기 위해 프랭크에게 파리를 떠날 것을 청한다. 프랭크는 예의 플레이보이답게 파티가 벌어지는 칸으로 가는 열차에 오르고, 알리안느는 이번에도 쿨한 척 다른 남자와 놀면 된다면 작별 인사를 건넨다.
두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이렇게, 관성대로 위장대로 끝을 맺을까. 결말을 뒤집는 힘을 발휘하는 게 바로 배우 오드리 헵번이 맡은 캐릭터들이다. 여기에 차별점이 있다.
사브리나는 ‘나처럼 일밖에 모르는 남자를 어느 여자가 좋아하겠어, 결혼해 봤자 아내를 불행하게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라이너스, 일 중심 사고의 뇌를 깨트린다. 처음엔 살며시 파고들어 나중엔 전체를 뒤흔든다.
알리안느는 ‘사랑이 뭣이 중해, 만나는 동안 즐기면 되지. 책임을 얘기하는 순간 사랑은 지루해지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난봉꾼 플랭크, 자기중심적 편의주의를 플랭크 스스로 버리게 한다. 처음엔 알리안느의 자유연애가 좋았지만, 이제는 나만 바라보기를 애가 타게 원한다.
조건만 보면 그룹형 기업가와의 사랑과 글로벌 부호와의 결혼, 게다가 갓 스무 살을 넘긴 아가씨와 40대 중년들과의 로맨스니 사브리나와 알리안느는 제대로 ‘신데렐라 에스컬레이터’를 탄 게 틀림없다.
하지만 방법이 다르다. 남자들의 보호 의식 아래 재투성이에서 왕비가 되는 게 아니고, 사랑을 몰랐던 일벌레와 플레이보이에게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일깨워 자신에게 달려오게 하고 청혼하게 만든다. 1950년대임을 감안하면, 제아무리 미국이라 해도 꽤나 진취적 여성의 스스로 선택한 사랑이고 반전 넘치는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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