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포기 김장은 기본!
군대 생활 같은 결혼 생활했다는 여배우
우연히 광고에 출연하며 연기자 생활을 시작한 배우 김창숙은 1968년 TBC 5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며 당시 인기 여배우들의 주연작에서 조연으로 활약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배우로 데뷔한 그는 데뷔 초 부족한 연기력과 암기력 때문에 대사하는 게 싫었기 때문에 드라마보다는 영화가 편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연기력에도 그는 1973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증언’의 주연으로 출연하며 해당 작품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이후 영화 ‘여자태권군영회’의 주연으로 캐스팅되는 등 여러 작품의 주연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김혜수 닮은 미모로 사랑받으며 전성기를 맞았던 1977년, 그는 결혼과 함께 배우 활동을 중단하고 인생 2 막을 맞았다.
친구 오빠의 친구를 사랑했네
친구 오빠의 친구를 소개받은 그는 유학생 출신인 남편의 매너 있는 모습에 끌렸고 그들은 꽤 오랜 기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하지만 완벽해 보이는 남편에게도 반전이 있었다. 바로 나이를 속인 것인데. 친구 오빠의 친구라서 당연히 연상일 줄 알았던 그의 남편은 알고 보니 그보다 어렸고, 그는 남편의 실제 나이를 결혼 후에야 알게 됐다.
그는 “결혼하고 보니 남편 주민등록증에서 이상한 낌새를 발견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남편은 ‘그거 잘못된 거다’고 답하더라.”라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나중에야 시어머니가 진실을 밝혀줬고 크게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시어머니의 하루로 돌아가는 결혼 생활
한편, 화려한 연예계를 뒤로 한 채 사랑하는 이와 시작한 그의 결혼 생활은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얼룩졌다. 신혼 초부터 수준 높은 안목에 웬만한 건 눈에 차지도 않는 시어머니와 함께 산 그는 새벽마다 배드민턴을 치는 시어머니를 위해 7첩 반상 한정식을 차렸고, 이로 인해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났다.
이후 시어머니가 돌아오시면 TV를 보는 시어머니 옆에 앉아서 함께 TV를 봐야 하는 등 시어머니의 생활 패턴에 맞춰서 살았다.
게다가 그는 100~200포기의 김장을 도맡았고 재료로 필요한 어마어마한 양의 호두를 깎으며 군대 생활 같은 시집살이를 했다.
이후 3년간 까다로운 시어머니와 함께 생활했던 그는 단단히 키운 맷집으로 1982년 드라마 ‘행복의 계단’에 출연하며 다시 연예계에 복귀했다.
이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그땐 사회 분위기가 그랬었지. 고생하셨네요”,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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