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칙 개봉이 아니라 이젠 스크린 독과점에까지 이르렀다.”
16일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배장수 상임이사가 내놓은 말이다.
그는 오는 24일 개봉을 앞두고 주말인 21일과 22일 대규모 유료시사회를 열기로 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영화 ‘슈퍼배드4’를 둘러싼 상황을 이 같이 지적했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이하영 운영위원은 이를 더 구체화했다.
그는 ‘슈퍼배드4’의 배급사 유니버설픽쳐스와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유료시사회’라는 이름 아래 “전체 40만석의 좌석을 배정했다”고 말했다. “이는 개봉작 45만석에 버금간다”고 밝힌 그는 “그건 시사회가 아니라 개봉이다”고 짚었다.
이어 “극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화계와 협조·상생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얘기가 나온 지 며칠 되지 않아 횡포를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은 “결국 큰 영화만 살리자는 것”이라며 “과연 이게 좋은 시장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영화관 점유율 78%, 스크린 점유율 92%, 관객점유율 90%를 차지하며 시장을 장악한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극장 3사는 할리우드 직배사 유니버설픽쳐스와 함께 ‘슈퍼배드4’의 대규모 유료시사회를 협의·진행키로 했다.
16일 현재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의 상영 현황에 따르면, ‘슈퍼배드 4’는 CGV의 181개 상영관·434개 스크린, 롯데시네마의 107개 상영관·247개 스크린, 메가박스의 98개 상영관·194개 스크린에서 예매 중이다.
물론 이는 24일 개봉일과 그 직후 상영 예정분까지 포함한 규모이지만, 영화계는 이를 사실상 ‘변칙 개봉’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또 하나의 ‘스크린 독과점’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에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15일 유니버설픽쳐스와 멀티플렉스 극장 3사에 항의 공문을 보내 “관례를 넘어 전국 모든 개봉관과 전 회차의 대규모 유료시사회”라면서 이는 “타 개봉작들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기보다 유료시사회라는 주말 변칙 개봉을 통해 영화산업의 공정경쟁 환경을 저해하고 타 개봉작들의 상영 기회를 축소·박탈한 것”이라며 ‘슈퍼배드4’의 유료시사회를 철회하라 요구하고 나섰다.
이 같은 상황에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이 주최하고 영화진흥위원회가 주관한 ‘스크린 독과점 문제와 대안 마련 토론회’가 열리면서 ‘슈퍼배드4’의 주말 대규모 유료시사회 문제가 공론화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이하영 운영위원은 “대기업 멀티플렉스 극장이 늘어나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고, 일명 ‘되는 영화’가 개봉될 때에는 경쟁적으로 스크린 확대 싸움이 진행된다”면서 “그로 인해 독과점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관객수가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상영횟수 독과점이 더 심화”했다면서 “연도별 상영점유율 50% 이상 영화 편수가 1000만 영화가 5편이나 나온 2019년 7편에서 올해에는 4편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올해는 아직 상반기 집계일뿐이다”면서 “올해 말까지 최대치를 기록할 것이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그의 분석에 따르면 ‘연도별 1등 영화가 일일 상영점유율 50%를 넘긴 일수’가 2019년 96일이었지만, 올해에는 상반기에 이미 61일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하영 운영위원은 “역대 1000만 영화 가운데 최고 흥행작인 2014년 ‘명량’ 49%를 비롯해 2위 ‘극한직업’ 53%, 3위 ‘신과함께-죄와 벌’ 45% 등이었다”면서 “올해 82%의 상영점유율로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불거진 ‘범죄도시4’가 20위를 나타냈다”고 짚었다.
따라서 “상영점유율과 흥행은 비례하지 않는다”고 그는 밝혔다.
이로 인해 “영화를 비롯한 문화 다양성이 파괴되고, 중소배급작의 교차상영과 비 주요 영화 관람시간대 상영에 의해 관객 접근성이 떨어진다”면서 “흥행 양극화 및 영화제작자들의 예술성·작품성 영화 기피 현상이 빚어져 결국 관객이 다양한 영화를 선택할 권리가 사라진다”고 이 운영위원은 결론 지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또 다른 발제자로 나선 노철환 인하대 연극영화과 교수와 배장수 상임이사, 제작·배급사 싸이더스의 이한대 대표, 영화 ‘작전’과 ‘로봇, 소리’ 등을 연출한 이호재 감독 등 토론자들은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스크린 상한제 법제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노 교수는 “스크린 독과점은 영화의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하는 홍보 전략인데, 관객의 안목이 높아지고 입소문에 의한 장기 흥행 사례가 많아지면서 그 효과는 감소하고 있다”며 “스크린 상한제가 시장 변화에 순응하는 질서 변화를 앞당길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황재현 CGV 전략지원담당은 “영화의 개봉일은 배급사가 정한다”면서 ‘범죄도시4’의 경우처럼 “관객 동원력이 예상되는 작품은 개봉일 확정과 동시에 다른 배급사들은 영화를 내놓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극장의 스크린 쏠림 현상은 관객 선택권을 반영한 것”이라면서 “예매율, 스크린 편성, 좌석판매율 등 투명한 영화관통합전산망 시스템 아래서 관객 니즈에 부합하는 영화의 편성 여부는 충분히 검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황승흠 국민대 법학부 교수도 “상영관의 편성 행위에 대한 제약은 신중하고 엄격한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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