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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보이스] 그들 생애 최고의 순간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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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생순〉은 감동적이지만 시스템없이 선수들의 의지에 기대는 구조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할까?

영화 〈우생순〉은 감동적이지만 시스템없이 선수들의 의지에 기대는 구조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할까?

그들 생애 최고의 순간을 기원하며

곧 시작되는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우리나라 구기 종목 선수단은 여자 핸드볼 선수단이다. 인기 종목으로 불리던 수많은 구기 종목 중에서 핸드볼만이, 특히 여자 핸드볼만이 파리행 티켓을 따냈다. 여기서만큼은 ‘여자 핸드볼’이라는 표현 대신 ‘핸드볼’로 여성 핸드볼 대표 팀을 지칭하고 싶다. 성적 덕분에 미디어에서 자주 노출돼 ‘핸드볼’ 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여성인데도 늘 핸드볼 앞에 ‘여자’를 붙이고 남성 팀이 일반명사 핸드볼을 차지하는 것이 늘 불편했으므로.

핸드볼 이야기를 할 때 자주 거론되는 영화가 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선수단의 이야기로 만든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 영화는 국제대회에서 정상급으로 활약해 왔음에도 여전히 핸드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고, 각자의 삶을 살다가 올림픽을 앞두고 다시 뭉쳐 은메달이라는 신화를 써낸 선수들을 담았다. 문제는 이 영화의 감동을 한국 엘리트 스포츠를 대표하는 서사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우생순〉의 역경은 상대해야 할 강팀이 아니라, 국가를 대표하는 스포츠인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차별이다. 충분한 시간적 · 경제적 여유도 없이 최소 인원으로 강팀을 상대하는 상황을 역대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들은 2004년뿐 아니라 자주 겪어왔다. 선수와 코칭 스태프를 말 그대로 ‘쥐어짜서’ 이뤄내는 기적이 이어지자 ‘핸드볼 대표 팀’의 디폴트는 여성이 아니지만 여성 대표 팀의 국제대회 성적은 디폴트로 좋아야 한다는 논조의 기사가 이어진다. 지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따낸 대표 팀에 대해 한 언론사는 ‘항저우 참사’라는 모욕적인 헤드라인을 내걸었다.

그러나 2024년의 스포츠 팬들은 더 이상 착취 속에서 탄생하는 영웅을 기대하지 않는다. 선수를 사랑하는 만큼 그 선수가 사랑하는 스포츠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속하길 원한다. 〈우생순〉 주역에게는 영원히 찬사를 보내겠지만, 같은 경험을 새 시대의 선수들이 같은 여건 속에서 그때의 정신으로 임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다행히 조금씩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핸드볼 팬덤이 점점 커지고 있을 뿐 아니라, 3년 내 프로 리그 전환을 목표로 출범한 ‘H리그’도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있어 혹시라도 파리 올림픽을 통해 ‘입덕’할 뉴비 ‘볼볼이’(핸드볼 팬의 애칭)들이 있다면 후속 ‘덕질’에 좋을 것이다. 한국인 최초 유럽 리그 챔피언을 경험한 류은희 선수를 비롯해 2023년 세계여자청소년대회 베스트 7에 선정된 이혜원 선수 등 기대되는 선수도 많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고등학교 여자 핸드볼 팀은 11개뿐이고, 선수단 18명을 채우지 못해 15명으로 출전한 국제대회도 있다. 불모지에서 성실성까지 겸비한 천재가 탄생하는 방식으로 성적이 나는 것은 큰 틀에서는 비슷하다. 도쿄 올림픽 한일전에서 승리하면서 4강 신화를 이룬 배구 팀도 마찬가지다. 배구 황제 김연경을 비롯한 많은 선수가 부상을 안고 분전해 일본을 꺾은 것은 고무적이며, 부상 선수는 일본에도 있었겠지만 코트에 올라오기까지의 과정을 두고 이야기하면 상황이 다르다. 생활체육 인프라가 잘 갖춰진 일본의 경우 여자중학교 배구 팀만 6174개(일본올림픽위원회 2022년 자료)지만, 한국은 21개(대한체육회 2022년 자료)다. 그마저도 고등학교로 오면 18개로 줄어든다.

지난 6월 8일 은퇴 이벤트 경기에서 팬들과 인사하는 김연경 선수 ⓒ김연경 선수 인스타그램캡처

지난 6월 8일 은퇴 이벤트 경기에서 팬들과 인사하는 김연경 선수 ⓒ김연경 선수 인스타그램캡처

핸드볼과 배구를 포함해 많은 여성 선수가 해당 종목을 시작한 계기를 물으면 늘 비슷한 대답이 돌아온다. 신체 조건을 보고 운동부 선생님에게 스카우트돼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 신체 조건이 어떻든 쉬는 시간이면 누구나 신나게 볼을 차다가 적성에 맞으면 선수를 고려해 보는 남자아이들의 서사와는 다르다. 선수를 목표로 하지 않는 여자아이들도 각자 한 종목은 경험할 수 있도록 운동장을 공평하게 제공해 주고, 흥미 속에서 피어난 열정으로 건강하게 다음 스텝으로 갈 환경이 없다. 전설을 쓴 여성 선수들이 은퇴하더라도 여성 생활체육 인프라가 작기 때문에 지도자 등으로 커리어를 이어나가기 어렵고, 여성 지도자 풀이 적은 만큼 결국 선수 시절 국제 성적 면에서는 뒤처졌던 남성들이 여성 팀 지도자를 꿰찬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양육자 입장에서는 적성과 재능을 갖춘 딸이 있더라도 운동선수의 길을 허락하는 걸 주저하게 되고, 결국 국제 무대에서는 또다시 어딘가에서 등장한 천재 선수들의 혹사에 가까운 노력과 희생으로 기적이 만들어진다.

〈우생순〉의 명맥을 이어가야 한다는 부담에 유일한 올림픽 본선 진출 구기 종목이라는 책임감까지 짊어진 핸드볼 대표 팀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다. 이번에도 핸드볼 팀만은 해낼 거라는 기대를 의식한 선수들의 비장한 인터뷰를 바라보는 마음도 무겁다. 이전 세대에서 이어진 기적을 또다시 이뤄 국민적 기대를 충족해야 한다는 의무감보다 그저 준비한 것을 변수 없이 해내고 스스로 경기에 만족할 수 있는, 행복한 핸드볼 선수로서 삶을 이어갈 수 있기를 무엇보다 간절히 기도한다. 앞으로 이어질 핸드볼 인생이 ‘우리 시대 최고의 순간’보다 당신의 행복한 순간의 연속이기를 바라며. 대한민국 핸드볼 대표 팀 파이팅!

곽민지
다양한 비혼자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예능 팟캐스트 〈비혼세〉 진행자이자 출판 레이블 ‘아말페’ 대표. 〈걸어서 환장 속으로〉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를 썼다. 여성의 몸과 사랑, 관계에 관심이 많다.

엘르
content@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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