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의 대표 기업이었던 국제그룹
왜 그렇게 급하게 사라져야 했나
1947년 국제고무의 왕자표 고무신으로 시작된 국제그룹은 1980년대에는 재계 순위 7위에 손꼽히기도 하며, 부울경의 대표 향토기업이었다.
자체 브랜드인 프로스펙스는 해외에도 수출하였으며, 당시에 나이키와 아디다스 같은 해외 브랜드들이 수입되었음에도 지지 않고 함께 경쟁하였다. 또한 리바이스 청바지를 국내에서 판매하는 일도 맡았다.
하지만 이러한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하루아침에 해체가 되는 사건이 있었다고 하는데, 과연 무슨 사연이었을까.
대기업이 대통령 한마디에 해체된 사연
1983년에 북한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시도한 아웅 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이 벌어졌다. 다행히 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때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이때 사망한 순직자들의 유자녀를 위해 일해재단을 설립했고,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재벌들에게서 받아내고자 했다.
이때 다른 그룹들은 10억 원 이상을 기부했는데 국제그룹의 양정모 회장은 5억 원의 어음만 건넸다고. 또한 새마을성금을 모을 때도 3억 원을 지불했는데, 이는 다른 기업에 비해 현저히 적은 금액이었다고 한다.
이어 후에 새마을성금으로 10억을 추가로 기부하기도 했지만, 이미 박혀 버린 미운털은 없애기 어려웠다.
또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기업인들을 모아 식사 자리를 만들었는데, 양정모 회장이 폭설로 인해 비행기가 연착되어 지각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5일 이후 제일은행에서 어음을 부도 처리했고, 국제그룹은 휘청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도움을 받기 위해 부산에 찾아갔으나, 양정모 회장은 아들의 49재를 치르느라 부산에 없었다고 한다.
아슬아슬했던 총선 결과가 부산으로 인해 완전히 뒤집혀 버리자,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제일그룹을 부실 기업으로 만들어 버렸고 곧바로 해체되었다.
국회의원 선거 결과 발표부터 국제그룹에 은행 채권단이 도착할 때까지 이틀, 국제그룹 해체 발표까지 단 일주일 남짓이 걸렸다고 한다.
이후 양정모 회장의 아내는 국내에서 불가능했던 녹내장 치료를 위해 미국에 가야 했으나 이들은 출국 금지 상태였다. 이에 양 회장이 가진 것을 모두 넘기며 겨우 이를 해결했으나 시기가 너무 늦어 아내는 시력과 청력을 모두 잃었고 곧 세상을 떠났다.
양 회장은 국제그룹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기도 했으나 실패하였고, 결국 혼자서 칩거 생활을 하다가 2009년 세상을 떠났다.
시간이 지난 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부실 기업을 정리할 수는 있지만 이렇게 정리하면 안 됐다. 적절한 단계와 분석이 우선되어야 하고 그들을 존중했어야 했다”라며 이를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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