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고 건전한 팬들에게 사생은 좋아하는 연예인을 괴롭히는 ‘공공의 적’이다. 사생은 단순한 팬심을 넘어선 과도한 집착으로 아이돌의 일상과 사생활을 침해해 문제를 일으킨다. 20대 후반의 A씨는 과거에 사생팬 활동을 했던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 어느 사생팬의 고백
A씨는 한 케이팝(K-POP) 아이돌 그룹의 팬이다. 무대나 TV에서 보는 멤버의 모습을 가까이 보고싶어 공개방송, 팬사인회에 응모했지만 만족하지 않았다. 모두의 앞에서 정돈된 멤버의 모습이 아닌, 일상에서의 멤버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시작된 호기심으로 아이돌 멤버의 출국 일정을 알아내 공항에 가기 시작했다.
집 주소와 운동을 다니는 헬스장도 택시를 타고 따라다니며 알아내 그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자신의 일상이 된 어느 날, 사생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친구와 팬덤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A씨는 “항공권 정보는 X(트위터)에서 구할 수 있었다. 5000원에서 20000만원 정도의 가격을 지불하면 항공권 정보를 알려준다. 오픈채팅방으로 대화를 나누고 송금하면 예약번호와 좌석을 알려준다. 생각보다 쉽게 구할 수 있어, 많은 팬이 그쪽을 통해 접근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인기가 많은 그룹의 멤버는 인파에 싸여 휩쓸리듯이 보게 되지만, 인기가 많지 않은 그룹이라면 말을 붙일 수 있어 대화를 주고받기도 한다고.
A씨는 “용기만 내면 말을 걸 수 있다. 멤버마다 반응이 달라 그걸 보는 재미가 있었다. 싫어하는 듯 한 반응을 하는 멤버에게는 잘 가지 않는다. 한창 다닐 때는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공항에서 찍은 사진으로 신규 팬들이 유입되기도 하고 다른 팬들도 공항에서 찍은 사진을 함께 소비해 보통의 팬 활동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A씨가 사생으로 자각하게 된 ‘사건’이 생겼다. 좋아하는 멤버가 다니는 식당을 알아내 그 앞에서 기다리다가 “오지 말아달라”라는 정색과 함께 돌아온 멤버의 냉랭한 반응 때문이었다. A씨는 “항상 웃어주고 팬들에게 잘하기로 소문 난 멤버였는데 무리를 지어 찾아갔다가 차가운 표정을 본 후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이 사건이 내게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다른 일반인 친구들에게 말했더니 ‘네가 말로만 듣던 사생이네’라고 했다. 이전까지는 한 번도 내가 사생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때 처음으로 부끄러웠다”라고 털어놨다.
공식적인 스케줄부터 비공식 스케줄까지 따라다니며 지출한 금액도 적지 않았다. 공식적인 일정인 팬 사인회에 한 번 응모하기 위해 수 십만원 이상을 소비해야 했고, 멤버들의 이동을 따라잡기 위해 택시비가 100만원 가까이 나왔을 때 현실적으로 타격이 컸다고 전했다.
A씨는 “나만 볼 수 있는 멤버의 모습에 취해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던 것 같다. 함께 일정을 무리들과의 대화도 재미있었고 다른 팬들은 모르는 정보를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에 우월감이 생겼다. 사실 되돌아보면 내게 남는 건 없었다. 멤버의 싸늘한 얼굴에 허무함과 수치심을 느꼈다. 이제 더 이상 일일이 따라다니지 않는다. 그때 썼던 카드값을 충실하게 갚고 있다”라고 전했다.
◆ 홈마와 사생의 경계
주로 케이팝 아이돌의 공연, 방송 출퇴근길, 팬미팅 등 다양한 공식, 비공식 행사에 참석해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하고 이를 온라인상에 공유하는 팬을 ‘홈마’(홈페이지 마스터)라고 부른다.
홈마는 신규 팬의 유입을 부르고 팬덤의 커뮤니티를 더욱 활발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케이팝의 홈마는 90년대부터 존재했고, 최근 케이팝이 글로벌로 무대가 커지며 영향력 역시 함께 커졌다. 이들은 데이터를 판매해 수익을 올리거나 굿즈를 만들어 팔기도 한다.
X에 아이돌의 데이터를 검색하면 각종 아이돌의 데이터를 판매하거나 구한다는 글이 쏟아진다.
팬덤의 윤활유가 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으나, 사실 따지고 본다면 초상권 침해다, 더 나아가 무대가 아닌 비공식 스케줄까지 담는 행동은 사생과 다를 것 없다는 지적이다. 공항에서 대포 카메라(전문가용 고성능 카메라)로 찍어대거나, 해외 스케줄에서 일부러 같은 비행기를 타거나 숙소를 같은 곳에 잡는다.
그러나 소속사에서는 홈마를 팬 활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어 쉽게 제지할 수 없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사생의 기준이 애매모호하다. 팬 활동을 막는다고 항의하기도 한다. 홈마들은 자신의 기분이 나빠지거나 홀대를 받으면 커뮤니티에 자신의 입장을 유리하게 공론화시키기도 한다. 나중에 해명하려고 해도 이미 연예인과 소속사의 이미지가 추락한 후라 조심스럽다”라며 “비공식 스케줄에 나타난 홈마나 사생은 경호원이 막는 것 외에는 딱히 막을 방도가 없다”라고 밝혔다.
비공식일정까지 따라다니며 아이돌의 일거수일투족을 남기는 홈마는 일반 팬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 글로벌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B씨는 “홈마는 가수의 공식 스케줄에서 사진을 남겨 많은 사람에게 홍보하지만, 무분별한 곳에 등장하는 사생은 아티스트에게 피해를 주고, 멀쩡한 팬까지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사람들이다. 팬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다. 문제는 사생이 주는 정보들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것 역시 팬들이 스스로 자각해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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