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폭염이 예고된 올여름, 30도를 가볍게 넘는 더위에 축 처지는 건 사람만이 아닙니다. 뜨거운 날씨에 항복한 듯 녹아내린 듯한 가구들이 눈에 띄는데요. 흐물흐물하게 흘러내리는 가구 디자인에 눈에 휘둥그레지다 금세 동병상련을 나누게 됩니다.
디자이너 데위 셀리나 반 데 클롬프가 만든 ‘소프트 캐비닛’에 ‘부드러운(Soft)’이라는 의미가 포함된 건 말캉한 고무로 만들었기 때문일 겁니다. 각진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캐비닛에 반전미를 더하듯, 폼 고무를 주재료로 삼아 줄줄이 기울어진 캐비닛을 선보였어요. 더위를 먹고 회사 벽에 기댄 우리네 모습이 겹치는 건 왜일까요?
과학을 사랑하는 작가 필립 아두아츠의 디자인 추구미는 소재에 혁신적인 기술을 접목하는 거예요. 의자가 녹았다가 응고하는 형태를 띤 ‘멜팅 체어’가 대표적인데요. 3D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와 재료를 깎는 CNC 밀링 모델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흐르는 강물 아니고 의자입니다. ‘베르판’을 듣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 가구는 디자인 거장 베르너 팬톤이 디자인한 ‘클로버리프 소파’. 올해 코펜하겐 디자인 축제 ‘3 days of Design’에서 베르판 쇼룸 앞에 무심하게 덩그러니 놓여 행인들의 시선을 강탈했던 바로 그 소문난 의자, 맞습니다.
아티스트 라도 키로프는 불완전한 형태의 작품을 선보이는데요. 단단한 물성의 재료가 라도 키로프의 금속 공예 기술과 만나면 매혹적인 가구로 탈바꿈하죠. ‘플루이드 파운데이션’ 벤치 역시 그렇습니다. 고가의 나무 소재로 꼽히는 부빙가 나무 좌판에 스테인리스 스틸이 절묘하게 녹아 의자 다리가 완성됐습니다.
콘크리트도 더우면 지칠 수 있습니다. 뉴욕의 디자인 스튜디오 보워 스튜디오가 만든 ‘콘크리트 멜트 체어’는 흡사 자아가 있는 콘크리트가 의자 위에 철푸덕 엎어진 것 같지 않나요? 콘크리트로 어떻게 실크 천이 바닥에 떨어진 듯한 정갈한 굴곡을 구현할 수 있는지 몹시 궁금하고 놀랍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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