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성과를 생각하면서 부담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아무래도 어떤 과정에 이어 결과로 좋고 나쁨을 판가름하려고 하고, 수치나 순위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결과론적인 것에 꽤 많이 잠식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지난 2018년 발표한 정규 4집 ‘파트2 상상: 무드 인디고’ 이후 무려 6년만에 본업으로 돌아온 가수 케이윌의 이야기다. 새 앨범 ‘올 더 웨이’(All The Way)를 발매하기까지 그를 짓누른 건, 앨범에 대한 부담감이었다. 더구나 싱글이 아닌, 정규 앨범이라는 형태가 부담의 무게를 더했다.
“요즘엔 싱글이 아닌 앨범을 내는 것에 큰 용기가 필요한 시대잖아요. 정규를 계획해준 회사에 고맙기도 하지만, 고민이 되더라고요. 오랜만이라서 더 결단을 내리기 힘들기도 했고요. 확신이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미루고 싶진 않았죠. 다행히 그 고민의 끝에서 실마리를 찾았고, 확신도 갖게 됐습니다.”
앨범을 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2년 전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습작과 이미지 조각들을 기반으로, 1년여간 작업하고 결과물을 완성시켰다. 6년여의 번아웃을 잘 겪어냈고, 자신 안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답을 찾아낸 셈이다.
“친구들이 노래방에 가면 제 노래가 100곡이 넘게 있다고 하더라고요. 많은 사람이 즐겨 듣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제 노래의 강점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저에겐 ‘새로운 곡이 더 필요한가’라는 질문으로 다가왔어요. 어차피 새로운 곡을 내도 사람들이 알아줄 거란 보장도 없으니까요. 시스템 안에서 성장해온 가수라서 무언가를 결정하는 게 저에겐 정말 무거운 일이거든요.”
“그러다 ‘난 무얼 하고 싶은 걸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고, 가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성패를 떠나 팬들이 기다리는 새로운 노래를 발표하는 것이 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패를 하더라도 내가 선택한 실패여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죠. 이번 앨범은 다음 행보를 위한 디딤돌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에서 시작된 질문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케이윌은 이번 앨범에 관계의 형성과 설렘, 행복, 위기, 아픔 그리고 소멸과 기대를 순서대로 담아냈다. 각곡마다 윤상과 선우정아, 헤이즈, 뮤지, 다비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프로듀서진으로 참여했다. 데뷔 때부터 호흡을 맞췄던 황찬희 작곡가와도 다시 손잡았다. 여러 프로듀서의 색깔에 케이윌의 생각을 입힌 덕에 앨범은 더욱 다채롭게 채워졌다. 특히 타이틀곡 ‘내게 어울릴 이별 노래가 없어’는 가수 윤상과 작가사 김이나가 참여했다.
“타이틀곡은 윤상표 발라드에요. 앨범을 기획하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떠올리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했는데, 저는 성과에 기뻐하고 슬퍼하기보다 관계에 의해 기쁨을 얻고 상처를 받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나’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관계’로 뻗어나가는 이야기를 앨범에 담고자했습니다. 그 중에서 타이틀곡인 ‘내게 어울릴 이별 노래가 없어’는 관계가 소멸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죠.”
서인국과 안재현이 출연한 ‘내게 어울릴 이별 노래가 없어’ 뮤직비디오는 공개 직후 큰 화제를 모았다. 뮤직비디오는 2012년 발매된 정규 3집 ‘이러지마 제발’의 후속편으로, 당시 출연자였던 서인국과 안재현이 다시 출연했다. 사랑과 우정 사이를 위태롭게 넘나드는 두 사람의 감정선이 눈길을 끌면서 입소문을 탔다. 그 덕에 두 사람은 ‘월드 게이’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이 노래를 타이틀로 결정한 시점에 공교롭게 안재현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서인국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기로 했는데, 같이 나가달라고요. ‘이러지마 제발’의 출연자들이 때마침 모이게 된 거죠. 당시 화제가 많이 됐고, 지금도 회자되는 뮤직비디오라 그 속편을 만들면 좋겠다고 안재현에게 툭 제안했는데 흔쾌히 응해서 같이 인국이를 꼬셨어요(웃음). 두 사람 모두 굉장히 의욕적으로 촬영에 임해줬습니다.”
긴 고민 끝에 내놓은 앨범이 대중에게 주목을 받은 건, 그가 정해놓은 ‘새 출발’에 대한 응원이기도 하고 여전히 그의 목소리를 대중이 즐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새 출발을 기분 좋은 에너지로 이어가고 있는 케이윌은 더 나은 미래를 그리고 있다.
“전 지금까지 ‘멋있어 보이고 싶은 음악’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사람들이 ‘오래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기 위해선 음악이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앨범에 ‘나’를 담는 과정이 필요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본의아니게 ‘양치기 소년’이 됐는데, 기다려주셔서 감사하고 죄송하기도 합니다. 이번 앨범을 가수로서 행보의 재 시작점이라고 생각하고 더 많은, 더 좋은 결과물을 보여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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