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섬세이’ 대표 이창혁의 집은 막 인테리어 공사를 마친 새집처럼 간결하다. 거주한 지 1년이 지났지만 ‘누군가 생활을 하는 곳일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 정도. 거실에는 별다른 물건 없이 소파와 테이블만 덩그러니 놓였고, 2층엔 침구와 프레임으로 구성된 단출한 침실만 있을 뿐이다. 바닥과 천장, 벽, 심지어 가구까지 베이지 톤으로 통일한 이 집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너른 창 너머로 보이는 하늘과 정원밖에 없다. “이곳은 ‘고독의 집’이어야 했어요. 혼자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위해 눈에 거슬리는 것을 줄였죠. 전체적으로 색을 하나로 통일하고, 곳곳에 빌트인 수납공간을 확보했어요. 틈틈이 정리해 최대한 비워진 상태로 두려고 해요.”
예전 그의 집은 한강이 보이는 성수동의 고급 오피스텔이었다. 이른 나이에 시작한 사업이 잇따라 성공하면서 비교적 빨리 경제적 여유를 얻었지만 삶은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않았다. “돈과 시간이 주어지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따라가기 바쁘고,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걸 생각할 틈이 없었죠. 도시와 사람, 주변의 잡음으로부터 저를 분리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적한 판교 주택단지에서 발견한 이 집은 자발적 고립을 위한 공간으로 충분했다. 용적률을 가득 채운 다른 집과는 달리 이 집은 땅의 절반만 차지한 채 조용한 정원이 있어 한결 여유로웠다. 리모델링은 ‘논스페이스’를 이끄는 신중배 디자이너와 함께 했다. 과거 섬세이의 전시공간을 디자인한 믿음직한 파트너다.
주방을 환하게 만드는 창은 원래 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동트는 아침에 충분한 햇빛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디자이너가 제안한 것이다. 혼자 사는 집으로 방이 여러 개일 필요가 없었기에 주방 천장 역시 2층까지 과감히 텃다. 출근을 위해 서울로 향하는 수요일을 제외하면 이창혁은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서재 책상에 앉아 일할 때를 제외하고는 주로 ‘멍때리는’ 시간이 많다. “수준 높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인격적으로 성숙해지고 싶었죠. 그러다 존경하는 철학 교수님 집에 갔는데, 깜짝 놀랐어요. 뭐가 없어도 너무 없는 거예요. 화려하진 않지만 어딘가 단단해 보이는 집이었죠. 교수님은 혼자 있는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했어요. 그래야 스스로 질문할 수 있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알고 추구하다 보면 덕(德)이 쌓인다고 하셨죠. 사람이 공간을 만들지만 공간이 사람을 만들기도 하니까요.”
불필요한 요소를 최소화하고 내면을 꾸준히 파고든 결과, 집은 고유한 흔적으로 채워졌다. 1~2층 사이 계단에는 붓으로 쓴 ‘덕(德)’을 걸어두고, 곳곳에 좋아하는 작은 불상과 그림을 배치했다. 현관문 손잡이에는 스스로 붙인 이름 ‘혁이창’을 한자로 보일 듯 말 듯 새겼다. 브랜드 대표로서 그의 목표는 전에 없던 새로운 가전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계곡의 바위를 모티프로 한 보디 드라이어, 일렁이는 빛을 만드는 캔들 워머, 최근엔 산소발생기를 개발하고 있다. “저는 자연을 좋아해요. 그 이유를 깊이 생각한 끝에 기술을 통한 자연의 재현을 떠올리게 됐죠. 나에 대한 탐구가 결국 브랜드 정체성으로 이어졌어요. 잘되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거고, 잘 안 되더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거예요. 원하는 대로 해봤으니까요. 그 모든 과정에 이 집이 든든한 조력자가 돼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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