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에게 이 일(영화)을 좋아하지 않으면 가지 말라고 말해요. 전 엄격한 사람입니다. 열정이 없으면 혼나고 다른 스승을 따르라고도 말하죠. 나의 길을 따라오면서, 그 안에서 너의 길을 따르라는 말을 항상 해요.”
지난 4일 개막한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집행위원장 신철)를 찾은 ‘홍콩 누아르의 대부’ 두기봉(두치펑·조니 토) 감독의 말이다.
두기봉 감독이 영화제가 마련한 ‘마스터 클래스’ 행사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장르가 두기봉을 만났을 때’라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이번 마스터 클래스는 두기봉 감독의 대표작인 ‘용호방'(2004년) 4K 디지털 복원작 상영과 함께 이뤄졌다.
마스터 클래스 행사를 앞둔 지난 5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베테랑 제작자’이자 ‘장르영화의 대가’인 두기봉 감독을 만났다. “영화계에 들어온 지 50년 가까이 됐는데 여전히 즐기고 있다”고 말하는 두기봉 감독은 자신만의 철저한 ‘철칙’과 식지 않는 ‘열정’을 불태우는 ‘청년’의 모습이었다.
1980년 ‘벽수한산탈명금’으로 영화감독에 데뷔한 두기봉 감독은 ‘미션'(1999년) ‘암전'(1999년) ‘용호방’ ‘흑사회'(2005년·2006년) 시리즈 ‘익사일'(2006년) ‘매드 디텍티브'(2007년) ‘마약전쟁'(2013년) 등 감각적이고 세련된 연출 스타일로 홍콩에서 사랑받는 감독이자 칸, 베니스 등 권위 있는 국제영화제의 부름을 받는 ‘거장’ 감독이기도 하다.
● ‘두기봉적 사고’…”카피는 안 돼! 독립적인 사고가 중요”
이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다시 선보인 ‘용호방’은 일본영화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데뷔작 ‘스가타 산시로'(1943년)를 오마주한 작품으로, 왕년의 최고 유도선수에게 젊은 유망주가 승부를 요청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대결 과정에서 승부의 허망함,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저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광팬입니다. 그분의 영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고요. ‘용호방’을 촬영할 때 (전염병인)사스(SARS) 때문에 사회적으로 전체적인 분위기가 우울했어요. 경제도 안 좋았죠. ‘파이팅’의 정신이 담긴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일본영화의 영향을 받은 두기봉 감독은 한국영화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가 연출한 ‘마약전쟁’은 한국에서 조진웅·류준열 주연의 ‘독전'(2018년)으로 리메이크돼 52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최근 개봉한 강동원 주연의 ‘설계자’는 ‘두기봉 사단’이라 불리는 정보서(정 바오루이) 감독의 ‘엑시던트'(2010년)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한국, 일본, 할리우드 등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는 거라고 생각해요. 영화를 통해 교류하고 감명받은 걸 다른 나라에서 영화로 만들고, 이것이 조용한 혁명이지 않을까요?”
19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홍콩영화의 전성기로 불린다. ‘홍콩 누아르’라는 명칭이 성립될 정도로 수많은 작품이 탄생했으나 비슷한 인상을 주는 아류작들로 동력을 잃었다. 1997년 중국 반환 전후로 홍콩 영화인들이 해외로 진출하면서 공백이 생긴 것도 주요한 이유로 꼽힌다. 그런 상황에서 두기봉 감독은 꾸준히 홍콩 영화계를 지킨 인물로 손꼽힌다.
실제 1996년 웨이자후이(위가휘) 감독과 영화사 ‘밀키웨이 이미지’를 세운 후 지금의 그를 대표하는 누아르 액션영화를 만들며 ‘거장’의 자리에까지 올라갔다.
그가 영화사를 설립한 이유에는 본인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었다.
두기봉 감독은 “상업영화를 촬영했을 때는 사랑받아도 ‘엔지니어’인 것 같았다. 여기서 한 조각, 저기서 한 조각 가져와 영화를 만드는 느낌이었다”면서 웨이자후이 감독과 “‘내가 영화이고, 영화가 나’라는 신념으로 회사를 설립했다”고 ‘마스터 클래스’에서 관객들에게 말했다.
“지금의 젊은 후배들에게 제가 강조하는 부분은 ‘독립적인 사고’입니다. 그들로 인해 영화가 만들어지고, 영화 안에 그들이 있어요. 화면 안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영화에 기여를 했기 때문에 절대 남의 것을 베끼는 건 안 되는 거죠. 물론 영화를 많이 보고 참고할 수는 있어요. 그렇지만 카피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 두기봉 감독이 생각하는 현재 영화계 현실은?
두기봉 감독은 한국영화 중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2002년)와 ‘밀양'(2007년)을 좋아한다면서 이 감독을 “아시아 최고의 감독”이라고 꼽았다. 그러면서 “1980~90년대 홍콩영화가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그럼에도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은 왕자웨이(왕가위) 감독 영화 빼고는 없었는데, 한국은 되게 뜨겁고, 상도 많이 받았다”며 “아시아 지역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 전 세계 영화계를 바라보는 시선도 풀어냈다. 특히 ‘배우 중심’의 영화 환경에 대해서는 일침을 놓기도 했다.
“배우들이 출연료를 과도하게 받으면서 투자 대비 수익이 줄어드는 게 현재 영화 시장의 현실입니다. 창작자들이 (촬영에)예산을 투입해야 하는데, 예산의 반을 배우가 가져가니 발전할 동력이 줄어들죠. 한국도 그런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영화사들도 ‘이 배우가 아니면 안 된다’는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어요.”
지난 44년을 돌아본 두기봉 감독은 “굉장히 많은 생각과 사람들 사이의 ‘기회’와 ‘선택'”으로 자신의 영화 인생을 요약했다. 그러면서 “영화는 책과 같다. 작가가 세상을 떠나도 그 책이 재미있으면 계속 팔린다. 영화도 마찬가지”라며 “저는 앞으로 어떤 영화를 찍을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아직까지 제 작품 중에서 인상 깊은 영화가 없어요. 진짜로 이건 ‘내 거다’ ‘잘 찍었다’고 만족한 영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즐기고 있어요. 촬영할 때는 현실을 벗어나 영화 안에 속한 느낌이라 좋습니다. 제가 내년이면 일흔인데 앞으로 10년 정도는 더 찍을 수 있지 않을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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