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만드는 과정도 설레지만, 보여드리려고 하는 작업이잖아요. 보는 분들이 어떻게 봐줄지 늘 궁금해요. 그래서 감상평을 들려줄 때가 기분이 좋고 설레요. 오늘은 비가 오지만, 그래도 서로 바라보고 같이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이 자리도 설레는 마음으로 왔어요.”
배우 안소희가 한 관객으로부터 ‘최근 연기 활동에서 발전과 성장이 보인다’는 평가와 함께 ‘요즘 가장 설레고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받고 내놓은 답변이다. 관객의 애정 어린 질문에 안소희는 환한 미소로 화답하면서 “관객과 나누는 이야기”가 자신을 설레게 한다고 말했다.
세차게 쏟아지는 비에도 영화를 통한 안소희와 관객들의 ‘뜨거운 교감’은 막을 수는 없었다. 7일 오후 5시30분부터 부천시청 앞 야외광장에서 열린 ‘BIFAN 스트리트: 팬터뷰’ 현장의 모습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대치동 스캔들’의 주연 안소희와 김수인 감독은 한국영화의 미래를 이끄는 주역들에 주목하는 ‘리뉴얼 K-무비’를 주제로 이날 무대에 올라 관객들과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눴다.
● ‘부천의 딸’ 김수인 감독·’성장’ 거듭한 안소희
안소희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은 건 8년 만이다.
지난 2016년 개봉한 ‘부산행’으로 영화제를 방문한 안소희는 그 이후 배우로 성장을 거듭했고 멈추지 않는 도전의 과정에서 이번 ‘대치동 스캔들’을 완성했다. ‘부산행’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상업영화와 단편영화, 드라마와 연극 무대를 넘나든 덕분에 최근 배우로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8년 전 영화제를 처음 찾은 때를 회상한 안소희는 “그때도 너무 감사한 기회로 참석했는데 이번에는 제가 영화의 중심을 끌고 갈 수 있는 윤임(‘대치동 스캔들’의 역할)으로 여러분을 만날 수 있어서 뜻깊고 기쁘다”면서 “궂은 날씨에도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하다”면서 관객석을 향해 진심 어린 인사를 건넸다.
‘대치동 스캔들’은 ‘독친'(2023년)을 선보인 김수인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연출작이다. 김 감독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함께하며 ‘부천의 딸’이라는 수식어를 얻기도 했다.
“지난해 연출을 맡은 ‘독친’과 각색과 조감독을 맡은 ‘2035’가 장편 경쟁부문에 초청돼 부천을 찾았어요. 올해도 각색에 참여한 작품이 ‘매드맥스’ 부문에 상영돼 보러 왔고, 오늘 이렇게 ‘팬터뷰’ 자리에도 왔습니다. 작년부터 여름 한정 ‘부천의 딸’이라고 얘기하고 다니고 있어요.” (김수인 감독)
김 감독은 “누구보다 장르영화를 사랑하고, 오랫동안 참여했는데 (영화제의 부름이)장르영화를 향한 사랑이 마냥 짝사랑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위안이 된다”는 소회를 털어놨다.
‘대치동 스캔들’은 사교육의 전쟁터이자 욕망의 집결지 대치동에서 일타 강사 윤임(안소희)과 학교 교사인 기행(박상남)의 만남이 목격되면서 시험 문제 유출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윤임이 잊고 싶었던 대학 시절과 조우하는 이야기다.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인 대치동이라는 공간을 현실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풋풋하고 가슴 시린 사랑을 담은 대학 시절에 관한 이야기로 몰입도를 높인다.
이날 김 감독은 “이 얘기를 왜 굳이 대치동이라는 공간에서 했느냐는 피드백을 봤다”면서 “이 영화는 대치동 강사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좌절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관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와 눈길을 끌었다.
이어서 “남에게 꿈을 빼앗기고 좌절한 윤임과 꿈을 빼앗으려다 자신을 파괴한 나은(조은유), 가난 때문에 꿈을 꾼 적조차 없는 기행, 그들 주변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외부인 미치오(타쿠야). 이 친구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김 감독은 “네 사람의 발자취를 보면 대치동에 모일 것 같지 않지만, 그런 역설이 이 영화에서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공간에서 사람들끼리 모여 사건이 발생하고 휘말리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왜 영화의 배경이 대치동이었는지 설명했다.
● 안소희 “나에게 의미가 큰 ‘대치동 스캔들'”
안소희는 영화에서 대치동의 ‘일타’ 국어강사 역을 맡아 그동안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을 만큼 색다른 연기에 도전했다. 강사로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부터 학생들을 위하는 따뜻한 면모를 넘나들면서 윤임 캐릭터에 녹아들었다. 동시에 상처와 고뇌를 품고 성장하는 인물을 풍부한 감정으로 표현했다.
이날 안소희는 영화와 역할을 준비한 과정도 상세하게 밝혔다.
영어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는 친구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는 그는 “친구의 학원에 가서 강연 시연도 하고, 착장 등 기본적인 걸 많이 배웠다”고 밝혔다. 촬영 현장에서는 실제 대치동 국어 강사 출신인 김수인 감독에게 도움을 받으며 대치동 강사의 디테일을 높였다.
안소희는 ‘대치동 스캔들’ 뿐 아니라 현재 대학로 무대에서 진행 중인 연극 ‘클로저’의 주인공 앨리스 역을 통해 ‘새로운 얼굴’로 대중과 가깝게 만나고 있다. 최근의 행보에서는 연기에 더욱 진심으로 임하는 배우의 욕심이 느껴지는 듯 하다. 이와 관련한 궁금증은 ‘BIFAN 스트리트: 팬터뷰’ 현장에서도 형성됐다.
이에 안소희는 “기존에 보여드렸던 모습과는 많이 다른 캐릭터에 욕심이 났다”고 고백했다.
“일찍(데뷔해) 활동하면서 놓쳤던 부분들을 연기자로 전향하고 나서 체험하고, 경험하고, 쌓으려고 혼자서 부단히 노력했어요. 그걸 가지고 지금이면 윤임이를 자신 있게, 감독님과 이야기하면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용기를 냈는데 알아봐 (관객들이)주시는 것 같아서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안소희)
그러면서 ‘대치동 스캔들’에 대해 “저에게 의미가 큰 작품”이라고도 강조했다. “단면적으로 윤임은 시니컬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감성적인 친구다. 이 친구를 만나서 표현할 수 있는 게 많았다”며 “윤임은 눈에 띄게 드러나는 표현은 아니지만 레이어가 많았다. 배우는 욕심이 많아서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그런 저의 마음을 채워주는 작품이었다”고 만족을 드러냈다.
이날 현장을 찾은 한 관객은 ‘대치동 스캔들’을 4번이나 극장에서 관람했다고 밝혀 안소희와 김수인 감독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가졌던 궁금증을 안소희에게 물었다. ‘윤임의 모든 걸 빼앗을 정도로 큰 잘못을 한 나은이를 윤임이가 ‘귀찮아서’라는 한 마디로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걸로 느껴졌는데, 실제 나은이 같은 친구를 만나면 체념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다.
잠시 고민한 안소희는 “윤임이가 ‘귀찮아서’라고 표현했지만, 그걸로 용서를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며 “윤임은 용서가 무엇인지도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저도 윤임이와 같을 것 같다. 저와 제일 가까웠던 친구의 일(배신)이 바로 정리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곧바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차근차근 답변했다.
● 비 내리는데도 자리 지킨 관객들…”속상하지만, 감사해”
이날 행사가 시작할 무렵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졌다. 관객들은 우비와 우산을 쓰고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켰다. 시간이 지날수록 비가 세차게 쏟아졌지만, 관객들은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안소희와 김수인 감독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영화제 현장에서 배우 감독 그리고 관객들이 어우러져 영화를 이야기하는 기회에 ‘비’는 제약이 되지 않았고, 모두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다.
‘지금 간절한 바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안소희는 “비가 조금 그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비를 맞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 드는 관객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의 말을 통해 고스란히 객석으로도 전달됐다.
“영화제 기간 동안 비가 내려서 속상한데, 궂은 날씨에 와줘서 너무 감사합니다. 지금의 바람은 비가 그쳐서 여러분들과의 시간이 길고 편안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또 다른 건 ‘대치동 스캔들’이 영화관에서는 길지 않은 시간 관객들과 만났어요. 이제 IPTV를 통해서도 볼 수 있으니까 지금부터 쭉 많은 분들이 영화를 봐줬으면 해요.”
김수인 감독 또한 “이제 안방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으니까 많이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우천으로 인해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관객과의 자리를 마무리했지만 안소희와 김수인 감독은 다음을 기약했다. 안소희는 “길게 시간을 갖지 못해서 아쉬운데, 이렇게 자리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며 거듭 고개를 숙였다.
“다른 영화보다 ‘대치동 스캔들’로 여러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뜻깊었어요. 영화를 못 보신 분들 또 보고 싶은 분들은 봐주시면 좋겠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도 끝날 때까지 즐겨주세요. 감사합니다!” (안소희)
“와주셔서 감사하고, 비가 많이 오는데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다른 날, 더 좋은 날씨에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수인 감독)
한편 지난 5일 시작해 7일까지 진행한 ‘BIFAN 스트리트: 팬터뷰’는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집행위원장 신철)와 맥스무비가 공동 기획해 올해 처음 선보이는 토크 이벤트다.
첫날 ‘BIFAN 스트리트 팬터뷰’는 ‘K-무비 열다!’를 주제로 한국영화 블록버스터의 시대를 시작한 강제규 감독의 이야기로 출발했다. 이틀째인 6일에는 한국영화 시리즈 사상 처음 트리플 1000만 흥행을 달성한 ‘범죄도시’ 2~4편의 이상용·허명행 감독과 제작자 장원석 비에이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참여해 ‘K-무비, 새로운 액션 시퀀스’를 주제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냈다.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안소희와 김수인 감독까지 시대별로 한국영화를 이끈 주역들은 어디서도 들려주지 않았던 영화에 얽힌 이야기로 관객과 가깝게 소통하는 특별한 기회를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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