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훈
」
작품 속에서 늘 누군가를 쫓아왔어요. ‘나쁜 놈’도 참 많이 잡았는데, 〈탈주〉에서 도망자로 쫓기는 기분은 어땠습니까
짜릿했어요. 두렵고, 걱정되고,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마음을 촬영 내내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요. 공포감에 휩싸인 채 열심히 뛰고 구르고 웅크리며 도망자가 할 수 있는 모든 액션을 해봤습니다.
쫓기는 연기를 하면 실제로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나요
이번 작품에서 심장 박동 수를 최대치로 끌어올린 것 같은데요. 쫓기는 동시에 앞에서 저를 찍고 있는 카메라를 쫓아가요. 그 안에 빈틈없이 들어서기 위해 카메라를 달고 질주하는 차를 따라 두 발에 불이 나도록 달렸습니다. ‘한 번만 더 뛰자, 한 번만 더’라고 속으로 외치면서요.
예고편에서 공개된 장면이죠. 총의 조준경으로 보이는 당신의 얼굴이 정말 처절한 도망자의 것이라 놀랐습니다
실제로 촬영 기간 후반부에 찍은 장면인데요. 극한 상황에 처하면 그런 표정과 모습이 나온다는 걸 저도 처음 알았어요. 그때 열정을 고스란히 영화로 기록할 수 있게 돼서 좋습니다. 하지만 다시 뛸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못 할 것 같아요. 지금은 무릎도 성치 않고, 도망도 못 가겠어요. 이제 누가 쫓아오면 ‘그냥 잡힐게요!’라고 말할래요(웃음).
북한군 중사인 규남은 남과 북의 경계선을 뛰어넘기 위해 열심히 달립니다. 어쩌면 일상과 동떨어진 인물처럼 보이는 그에게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나요
처지는 다르더라도 사람들마다 삶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겁니다. 꿈을 꿔본 사람이라면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한 곳을 향해 목숨 걸고 도망칠 만하다고 생각할 테고요. 그 상황에서 자신은 어떤 선택을 할지 재밌게 고민해 볼 수도 있겠죠.
이제훈은 오늘을 사수하려는 편인가요? 아니면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내일을 갈망하나요
규남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까요? 사람들은 늘 운명에 대해 얘기하죠. 미래가 정해지고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것. 저는 정확하게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요. 정해놓은 길을 밟는 건 재미없잖아요. 계속 도전할 거리를 찾고, 새로운 것에 부딪히며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런 과정에서 진짜 나라는 사람을 만들고, 점점 존재를 증명해 나가는 것 같고요.
이종필 감독은 “탈주하려는 규남의 눈빛이 이제훈 배우의 눈과 비슷했다”고 했는데 방금 그 눈빛을 본 것 같습니다(웃음). 사람들이 말하는 자신의 ‘눈’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입 모양으로는 감정이 나름대로 잘 표현되는데 눈으로 드러내는 건 쉽지 않아요. 그래서 처한 상황에 따라 제가 느끼는 게 무엇인지 온전히 담아내려고 노력해요. 작품에서 마주한 수많은 당신의 눈이 가장 솔직한 눈이었군요 하하. 그럴지도요. 아직까지도 표현에 대한 고민이 많지만, 여전히 단 한 가지 수단으로 나를 표현하라면 눈이길 바라요.
3년 전 청룡영화상에서 호흡을 맞추고 싶은 배우로 구교환을 꼽으며 공개 고백을 했는데, 드디어 성사됐습니다. 규남을 쫓는 보위부 소좌 현상을 연기한 그의 매력을 낱낱이 찾아냈나요
함께 연기한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뛸 듯이 기뻤어요. 정말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저를 쫓는다니, 더할 나위 없었죠. 구교환 배우는 늘 대중을 기대하게 만들어요. 저조차 관객 입장에서 새로운 모습을 만끽하고 싶었고요. 촬영하며 그런 기쁨은 배가됐습니다. ‘구교환이라는 사람의 매력은 어디가 끝이지?’ 하면서요(웃음). 파면 팔수록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이라서 제가 많이 애정해요. 푹 빠졌습니다.
아쉽게도 이번 작품에서는 서로 죽일 듯 쫓고 쫓는 사이인데, 다음에는 어떻게 만나고 싶나요
제가 쫓아가도 되고요. 둘이 죽고 못 사는, 좋아하면서도 미워하는 애증 관계로 만나도 재밌을 것 같아요.
이제훈은 언제 자유롭다고 느끼나요
인파 속에서 홀로 돌아다닐 때 잘 느껴요. 해외의 번잡한 도심 한가운데랄지…. 보통 사람들과 일하며 이리저리 치이다 보면 아무도 없는 휴양지를 떠올리게 되잖아요. 저는 반대예요. 다수가 오가는 곳에서 걷고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관찰할 때 자유를 느낍니다.
그런 기분이 들었던 도시가 있었나요
홍콩영화를 즐겨 볼 때는 홍콩의 빨간 택시, 큰 빌딩 숲, 그 아래 옹기종기 모인 노점들을 실제로 마주했을 때 상당히 자유롭다고 생각했어요. 좀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뉴욕 끝에서 끝까지 걸어보고 싶어요. 그렇게 돌아다니면 나를 되찾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간 끊임없이 쏟아냈다면, 다시 채우고 담으면서…. 그렇게 여행한 지 오래 돼서 요즘은 정말 갈 수 있게 되길 꿈꿉니다.
며칠 전 서울 팬 미팅을 마쳤습니다. 방탄소년단 정국의 노래를 리믹스한 곡으로 댄스 무대를 선보였어요
지난해에도 열심히 연습해서 보여드렸는데 올해도 춰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컸습니다. 안 하면 분명 아쉬워할 것 같아서 준비하긴 했는데, 올해라고 제가 더 잘하지는 않더라고요(웃음). K팝 아티스트에 대한 존경심만 커질 뿐이었죠. 춤추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지 싶어요. 내년에도 하게 된다면 아마 쓰러질지도 몰라요!
내년 여름 더 열심히 춤을 연습하고 있을 모습이 벌써부터 그려집니다(웃음). 배우에게는 눈앞에서 직접 팬들의 애정을 확인할 기회가 드물죠
흔치 않죠. 자신의 시간을 할애해서 와준 걸 알기 때문에 그 시간만큼은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아서 무리일 정도로 표현해요. 어쩌면 공연 시간보다 마무리하며 헤어지는 시간이 더 길게 느껴져요. 그때만큼은 저를 다 드리고 싶어요.
‘하트 중독자’라는 별명처럼 틈만 나면 카메라에 하트를 쏟아내죠. 하트에 그토록 후할 수 있는 게 신기해요
말로만 표현하는 건 한계가 있으니 몸으로 표현하게 되는 것 같은데요. 혼자 여러 하트 모양에 관해 고민하고 새로운 걸 창조해 내기도 했습니다(웃음). 그만큼 애정해요. 팬들이 저라는 존재를 떠올렸을 때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고, 저라는 배우의 작품을 보는 것이 의미 있고 소중하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최근 종영한 〈수사반장 1958〉도 오래 남을 작품인 것 같습니다. 최불암이 연기한 〈수사반장〉의 박영한 반장 특유의 ‘파~’ 하는 웃음소리를 재현하기도 했죠
최불암 선생님이 밟아온 발자취가 있잖아요. 〈수사반장〉뿐 아니라 어릴 적 익숙히 봐왔던 드라마들 혹은 〈한국인의 밥상〉이나 간혹 CF로 보여주는 모습을 대중은 늘 기억하고 사랑하죠. 그런 존재에게 가장 중요한 필모그래피를 통해 젊은 시절을 연기하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 컸고, 잘해내고 싶었습니다. 최소한 최불암 선생님이 제 연기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어요.
당신처럼 훗날 후배들이 〈시그널〉의 박해영을 오마주하거나 〈모범택시〉의 김도기 대사들을 재현하는 순간을 상상해본 적 있나요
상상해 본 적은 없지만, 만약 제가 선생님처럼 멋지게 나이 들고, 후배 배우들이 제 젊은 모습을 생각하며 프리퀄을 만들어준다면 그만큼 큰 영광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려면 제가 앞으로 더 잘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최불암 선생님은 어떤 조언을 해줬나요
표현에 앞서 내적으로 지녀야 할 마음에 관해 일러주셨어요. 특히 가슴속에 화를 가득 담아 표현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범인을 잡으려는 마음, 피해자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대변하는 일이니까요. 〈수사반장〉에서 박영한 반장은 굉장히 냉철하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인데, 과연 젊은 시절에도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달랐을 것 같더군요. 부딪히고 배우며 성장해 왔을 테니 좀 더 무모하고 감정적인 모습으로 비춰져도 좋겠다 싶었어요. 한 인물의 스펙트럼이 작품으로 남겨지길 바랐던 것 같아요.
〈탈주〉 또한 두 남자의 거친 추격 뒤로 희망을 얘기합니다. 이제훈이 꿈꾸는 세상은
사람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와서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 작품을 어떻게 느꼈고, 또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 혹은 타인의 의견이 그 반대라면 왜 그런지 서로 소통하면서 마음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세상이죠. 저도 그렇게 성장기를 거쳐왔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만들어왔거든요. 감상이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논의되는 세상을 바라요. 비난이 아니라 저마다 생각을 소중히 여기는 방향으로요.
배우로서 그런 세상에 이미 기여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작게나마 그러고 싶어요. 저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작품을 선택하고, 또 관객으로서 보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잊혀가는 작은 극장의 가치를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 ‘제훈씨네’의 ‘느린 유튜버’다운 말입니다
여유만 있다면 매일 찍고 싶은데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시간을 쪼개고 있어요. 굉장히 느리고 천천히 볼 수 있는 채널인데요. 궁극적으로 사라질지 모르는 것들에 대한 기록을 담아내고 싶어요. 영상을 통해 발길이 이어지고, 결국 그곳들이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아 있길 꿈꿉니다.
구교환
」
오늘 촬영 전에 어떤 생각을 했나요
오랜만에 색다른 작전을 세웠습니다.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려 하지 않고 그냥 나를 박제해 버리자고(웃음)!
웃음기 싹 빼고 냉철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더군요. 도망자 규남을 맹렬하게 추격하는 〈탈주〉의 현상처럼 말이죠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맹렬함이 느껴졌습니다. ‘와, 호흡이 직선으로 재빠르게 뚫고 나간다! 아주 돌파하는 영화구나’ 싶었죠. 두 번째 읽을 때는 제 역할에 집중했는데요. 현상이가 잡기에 능하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어, 얘 되게 훔쳐보고 싶은 친구네’라는 생각이 들었죠. 캐릭터의 등 뒤에 살짝 올라타서 훔쳐보고 싶은 마음이 들면 선택하거든요.
생각해 보면 현상이라는 이름도 꽤 독특합니다. 흔한 듯하지만 특이한 이름이죠
저는 현상을 뜻하는 영어 단어 ‘페노메나(Phenomena)’를 떠올렸어요. 이름처럼 현상은 제훈 씨가 연기한 규남에게 어떤 현상을 만들어주는 인물일 거라고 말장난을 쳐봤죠. 이런 식으로 인물에 의미 부여를 잘해요.
사고 흐름이 유쾌한데요
그런가요? 좀 더 상상해 보면 이 역할은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일까요? 단지 일어나는 현상 그 자체일까요? 현상은 규남을 잡으려는 유령 같은 존재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현상이 존재하는 인물이라면, 처음에는 규남만큼 낭만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내면에서 솟아나오는 것을 억누르고 있죠. 영화에서 규남을 추격하는 모습 이면에서 그의 특징이 도드라지는 요소들을 살짝 넣었습니다. 발견하는 재미가 있을 거예요.
인물에 접근할 때 인물의 사적인 면을 상상해 본다고요. 현상의 사적인 취향은 어떤 것일까요
감독님과 나누는 농담의 일환인데요(웃음). 현상은 아마 미국 드라마 〈프렌즈〉에 열광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드 오타쿠’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보위부 장교인 그는 조직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체제에 복종하는 인물입니다. 실제로 당신은 판도를 뒤집는 진취적인 성향인가요
반반일 것 같아요. 나와 맞는 시스템에서는 군말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하고 싶은 말은 하는 스타일? 아, 다시 생각해 보니 저는 그저 회사에 복종하는 사람이네요(웃음). 회사가 하지 말라는 건 안 하고요, 말도 잘 듣습니다. 모범생이고 우수 사원이죠. 애사심도 강하고요.
이번 작품에서 제복을 입습니다. 제복을 입으면 역할에 더 몰입되죠
그렇죠. 꼭 제복이 아니더라도 어떤 역할이든 의상이 큰 힘을 발휘합니다. 오늘도 검정 가죽 셔츠로 빳빳한 옷을 입었으니 각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박제하리라 마음먹었거든요. 저는 옷을 입어보기 전까지 어떤 연기를 해야 할지 몰라요. 〈탈주〉 포스터 사진에서 현상은 가죽 재킷을 입고 있어요. 총을 쏘기 위해 높은 곳에 오르는 장면에서 내가 진짜 현상이 됐다고 느꼈어요. 사다리를 타고 턱에 올라서자 약간 올라간 재킷을 나도 모르게 아래로 ‘탁’ 잡아당기더라고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납할 수 없는 냉철한 현상의 면모를 입었단 걸 느꼈습니다. 이렇게 본능적인 행동에서 인물의 성향이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것 같아요.
연기하며 어려움을 느낀 부분은
항상 어렵죠. 현장에서 어렵다고 생각할 때 주변을 둘러보면 감독님과 동료들이 저를 도와주려고 든든하게 지켜보고 있어요. 이런 게 진정한 팀플레이겠죠. 작품 속 인물은 나만의 것은 아니에요. 영화가 공개된 후에는 관객의 것이기도 하고요. 어떤 관객은 현상을 정말 ‘미친 놈’이라고 생각할 수도, 누군가는 짠하게 바라볼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팬들이 저를 두고 만든 ‘가까워지기 멀어지기’ 콘텐츠와 같은 맥락인데, 예전에 SNS에 올린 사진 중에서 못 나온 건 멀어졌다고 하고, 공식 석상에 꾸미고 나오면 가까워졌다고 표현하면서 나름 서사를 만들어줬어요(웃음). 저는 ‘떡밥’ 제공자일 뿐이죠.
과거 SNS에 올린 사진 중 지금도 마음에 드는 사진이 있나요
우리 강아지 겨울이가 두 살이던 시절, 품에 안고 찍은 사진이요. 겨울에 보일러를 세게 틀어놔서 아주 잘 자고 일어났을 때 찍혀서 머리는 부스스하고 품에 안긴 겨울이는 정말 조그맣고 귀엽습니다. 전체적으로 자연스러운 분위기라서 좋아요. 참고로 지금 겨울이는 열두 살이고, 몸무게는 23kg이랍니다.
이번 작품을 연출한 이종필 감독과는 꽤 인연이 깊다고요
2008년 제7회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수상한 이수진 감독의 〈적의 사과〉에서 한 청년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는 전투의경을 연기하는 장면을 봤어요. 빨려들어갔죠. 그 청년이 배우이자 감독인 이종필이었어요. 이후 그의 연기와 연출 성향을 팬으로서 오랫동안 몰래 지켜봐왔습니다(웃음). 유머도 잘 통해요. 처음 합을 맞춘 〈탈주〉 시나리오를 받고 잔뜩 기대하며 읽었죠. 저는 이종필 감독님의 ‘필(Feel)’을 믿거든요.
지난 청룡영화상 무대에서 당신에게 ‘러브 콜’을 보낸 배우 이제훈과도 첫 호흡입니다. 그의 공개 고백을 받았을 때 어떤 감정이었나요
제가 먼저 제훈 씨를 좋아했어요. 그의 필모그래피에 흠뻑 빠져 있던 상태였죠. 세상에 이제훈 배우에게 사로잡혀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제훈씨가 무대에서 손가락 하트를 날려줬던 것도 〈탈주〉 선택의 큰 요소 중 하나입니다(웃음).
상대역으로 합을 맞추며 발견한 그의 매력은
상대방이 순간적으로 몰입하게 이끌어주는 힘이 있어요. 영화 속 공간에 이미 있던 사람처럼 느끼게 만들죠. 제 생각보다 훨씬 극장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온몸으로 시네마를 사랑하고 있다는 감정을 선사하다니 정말 멋져요. 그런 면모들이 멋있어요. 이번 작품에서는 추격하는 관계였지만 언젠가 좀 더 날것의 관계를 함께 만들어보고 싶다는 바람도 생겼어요. 이번 작품으로 인연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또한 이제훈 씨에 대한 제 감상입니다.
자신이 참여한 영화가 세상에 나오면 즉시 관람하는 편인가요
한동안은 잘 못 봐요. 생각보다 많은 배우가 현장에서 가편집본은 보지만, 극장에서 완성본을 못 본다고 하더군요. 완성본은 바뀌지 않으니까 마주하기 꽤 힘들어요.
기생수를 쫓는 〈기생수: 더 그레이〉, 규남을 추격하는 〈탈주〉를 통해 연달아 쫓는 상황을 연기했습니다. 무언가를 맹렬히 쫓고 있다고 자각한 순간은
늘 시간을 쫓아가죠. 작업자로서 마감을 향해 달려가는 삶을 사니까요. 모든 직종이 마찬가지일 거예요. 마감이 가까워지면 부담스럽고 무섭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만들고 완성하게 돼요. 그래서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마감이란 건 어쩌면 원동력일지도 몰라요. 저는 성향상 작업한 후엔 꽤 오래 쉬어야 합니다. 두 시간 동안 영혼을 불태웠다면 네 시간 동안 쉬어야 하죠. 영화를 만들거나 연기하는 건 행복이지만, 반대편을 또 다른 행복으로 채우는 편이죠.
행복의 시간을 채워주는 것들
뻔해요. 배달 앱으로 맛있는 거 시켜 먹고, 멍때리며 누워 있기. 그리고 게임과 여행.
어떤 게임을 즐겨 합니까
‘파이널 판타지’ 같은 고전 콘솔 게임을 즐깁니다. 요즘은 오픈 월드 게임이 유행이잖아요. 새로운 길을 직접 탐색하며 아이템을 얻고, 같이 모험하는 상대방과 헤드폰으로 소통하고. 근데 저는 방구석에서 홀로 소통 없이 개발자가 만들어놓은 맵에 충실히 따르면서 용자로서 대마왕을 물리치는 게임을 자주 하죠.
직접 각본을 쓰는 감독이기도 합니다. 이옥섭 감독과 함께 오랫동안 꾸려온 유튜브 채널 〈[2x9HD]구교환x이옥섭〉에선 두 사람의 확고한 세계를 담은 단편영화들을 볼 수 있는데요. 〈사람 냄새 이효리〉 〈로미오: 눈을 가진 죄〉 등 작품은 유쾌함과 애잔한 감정을 동시에 유발하더군요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모르는 순간을 좋아해요. 누군가는 그 상황을 보고 코미디라고 말할 테고, 누군가는 슬퍼하겠죠. 어떤 감상이든 괜찮아요. 내가 연기하는 대부분의 작품에 나름의 유머를 담습니다. 코미디는 자연스럽게 담기고 발견되어야 하며, 남발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걸 오랜 시간 직업으로 삼았고, 연애도 오래 이어왔습니다. 좋아하는 것에 꾸준히 애정을 쏟아온 당신에게 사랑이란
애인의 자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짠한 감정이 최근 제 사랑에 대한 정의입니다. 명동 한복판에서 불같이 키스할 수 있는 용기가 사랑이 될 수도 있고, 사랑의 개념은 다채롭고 개인에 따라 계속 바뀌는 것 같아요.
구교환의 ‘프라임 타임’은 시작됐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스스로 중요하다고 여긴 가치가 변하기도 했을지
정신은 그대로인데 행동이 바뀌었죠. 과거보다 더 유연해졌어요. 이런 식으로 조금씩 깎아나가는 중입니다. 스스로 창피하지 않은 것을 하자는 마음은 내 안의 큰 뿌리죠.
당신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입니까
모두가 ‘사랑한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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