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한국의 주택들
가장 실험적이고도 지금 여기를 고민하는. 건축가 서재원이 길어 올린 1960~1970년대 한국 주택의 숨은 보석들.
〈잃어버린 한국의 주택들〉은 1960~1970년대 한국의 실험적 주택을 현직 건축가의 시선으로 풀어낸 책이다. 책을 펴낸 계기는
서재원 2021년, 건축 전문지 〈SPACE〉로부터 그간 잡지에 실렸던 기사를 다시 한 번 짚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이에 1966년 창간호부터 1979년까지 소개된 단독주택 중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했고, 이를 묶어 한 권의 책으로 냈다.
‘잃어버린’이라는 표현에도 어떤 의도가 있을 듯하다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이라는 뉘앙스가 있다. 남의 것을 두고 잃어버렸다는 표현을 쓰진 않는다. 원래 우리 것이었음을 상기시키고 되찾아볼 만한 가치가 있음을 강조하려고 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여정을 생각하며 운율을 비슷하게 맞춘 의도도 있다.
대부분 잘 알려지지 않은 건축가의 작업들이다
김수근 · 김중업처럼 잘 알려진 건축가는 이미 충분한 연구가 이뤄졌기에 배제했다. 그들 외에도 근현대 시기에 많은 한국 건축가가 있었으나 잘 알려지지 않았다. 흔히 한국 건축의 역사가 납작하다고 말한다. 심지어 건축가인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납작한지 아닌지는 누군가 제대로 들춰봐야 아는 것 아닌가. 이런 마음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다.
왜 그간 제대로 된 아카이빙이 이뤄지지 않았을까
자국 문화를 등한시하는 경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오른 지금은 이런 의식이 덜하지만 1960~1970년대는 산업적 · 문화적으로 과도기였다. 서양은 물론 늘 일본보다 뒤처졌다고 생각하는 탓에 우리 것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먹고사느라 바빠서 정리할 시간도 없었다. 모든 분야가 앞다퉈 성장만 목표로 하니 뒤돌아볼 겨를이 없었던 거다.
‘한국의 집’을 생각하면 한옥 또는 아파트가 떠오른다. 1960~1970년대 한국 주택에도 양식이라고 할 만한 게 있었을까
〈박철수의 거주 박물지〉에서 언급된 ‘불란서 주택’이 그것일 테다. 프랑스식 디자인이 아니라 서구 문화를 향한 동경으로 이름만 그렇게 붙여졌다. 기와식 박공지붕에 콘크리트 난간이 있는 형태로, 근래 연남동이나 연희동에서 카페로 바뀌고 있는 단독주택을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책에서 다룬 사례들은 당시 유행한 주택 양식과 꽤 거리를 두고 있는 듯하다. 1960~1970년대의 디자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모던한 집도 있고, 건축가의 개성이나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독특한 형태도 눈에 띈다
모두 당대 유행에서 벗어난 사례들이다. 주택은 건축가가 작가로서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물론 클라이언트의 요구 사항이 있지만, 공공 건축물에 비하면 시대 상황이나 잡다한 요구 사항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 건축가의 철학을 오롯이 담을 수 있다. 유행에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명료한 생각을 담은 집을 소개하고 싶었다. 주어진 자료에 기반했지만, 자료의 양과 조사의 한계로 필자의 주관적 해석이 개입될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집을 빌려 건축에 대한 내 생각을 피력한 일종의 논픽션이다.
수십 년 전의 집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엔 어떤 의미가 있나? 대부분 철거된 지 오래이고, 실현되지 못하고 계획에 그친 경우도 있다. 디자인적으로 현대에 적용될 만한 부분이 있는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시간차가 커서 가능성만 열어두고 있다. 그보다 과거의 집을 통해 현재를 돌아보길 바랐다. 오늘날 한국 건축에는 누구의 디자인인지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한 게 많다. 자기 색깔이 없고, 그저 예쁘게 만들고 시공 디테일을 잘 풀어내는 데 혈안이 돼 있는 듯하다. 건축가는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 즉 도면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매끈한 마감이나 재료를 독특하게 가공하는 것은 차후의 일이다. 유신정권이라는 어려운 시대에도 고유한 생각을 분명히 표현하고 발전시킨 이들이 있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다채로운 형태의 스케치와 도면, 모형을 만들기도 했다
볼거리와 더불어 다양한 해석의 토대를 마련하고 싶었다. 조창걸이 설계한 ‘건축가 丁씨댁’은 겉으로 보면 하나의 덩어리이지만 개별 공간이 모두 다른 모양이다. 여러 조각이 모여 하나의 정육면체를 이루는 소마 큐브처럼. 이런 특징에 착안해 형형색색의 레진으로 모형을 만들었다. 보는 이의 흥미를 유발해 이해를 돕고, 현재와의 연결성을 꾀하고 싶었다.
「
모형으로 재현한 주택들.
」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집을 꼽는다면
서울시 신청사를 설계한 유걸의 ‘강씨댁’이 기억에 남는다. 1969년에서 1970년 사이 종로 명륜동에 지어진 주택인데, 2013년경 철거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걸이 29살에 했던 작업으로, 유리와 곡선을 사용해 자유로운 형태를 표현하는 그의 후기 작업과 많이 달라 흥미로웠다. 9개의 정방형 그리드로 이뤄진 평면 역시 무척 독특한데, 실제로 공간감이 어땠는지 무척 궁금하다.
안병의의 ‘우산을 주제로 한 주택’(이하 우산 주택) 역시 건축가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안병의는 김중업건축연구소 출신이다. 김중업은 한국성이 개인의 고유성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는데, 그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안병의는 우산 주택을 두고 “비 오는 거리에 몸을 의지하는 단 하나의 공간인 우산 모양의 지붕으로 이 집을 덮는다”고 설명했다. 우산 아래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상상한 것이다. 참 따뜻하면서도 대범한 발상 아닌가.
시노하라 가즈오가 1961년에 지은 ‘엄브렐러 하우스(Umbrella House)’와 유사하다. 그의 영향일까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당시엔 인터넷도 없었고, 한국으로 유입되는 해외 서적도 거의 없던 때다. 설령 알았다고 하더라도 접근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시노하라는 전통 종이우산의 형식만 일부 차용했다. 지붕을 받치는 방식과 지붕 아래 평면 구성도 다르다. 안병의의 주택에는 우산대, 즉 지붕을 받치는 기둥이 집 한가운데에 있고 시노하라의 주택은 들보를 지지하는 기둥만 있을 뿐이다. 엄브렐러 하우스는 지붕 아래 평면이 단일한 정사각형이지만, 우산 주택은 불완전한 비대칭 구성이다. 얽매이기 싫어하는 한국인의 정신으로 보여진다. 시노하라가 전통 종이우산에서 구조를 차용해 일본성을 획득했다면, 안병의는 일상에서 느낀 감정을 삶에서 재현했다. 미학적 접근과 정서적 접근의 차이랄까. 한국인 특유의 정(情)도 읽힌다.
정길협의 ‘C씨 주택 계획안’은 파격적이고 다소 불안해 보이는 조형이 특징이다. 이를 두고 “한국성을 탐구한 과정”이라고 했는데 어째서인지
당대 정길협은 ‘한국적 조형’을 설명하며 ‘소극미’라는 표현을 썼다. C씨 주택은 전통 요소를 직접 차용하거나 형상화하지 않은 데다가 기하학적 형태이기에 일견 한국성과 관련 없어 보인다. 정길협은 소극미를 설명하며 불완전성과 소박미, 모호성 등을 예로 들었는데, 그런 추상적 개념을 시각적으로 구성하려 했다는 점에서 한국성을 탐구했다고 봤다. 완전한 조형을 만들려는 의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조형을 실험한 것이다.
소극미가 한국성의 일종이라는 견해에는 동의하는가? 공간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개념일까
동의한다. 막사발을 생각해 보라. 솔직하면서 자연스럽고, 무심하기까지하다. 결국 한국성이란 ‘만드는 사람의 태도’에 달린 문제다. 쉽게 말해 ‘작품’을 만들려는 의지가 없어야 한달까. 이런 아이러니 때문에 한국성이 여태껏 제대로 정의되지 못한 점도 있다. 결국 ‘한국성’이란 물리적 실체가 없는, 공간적으로 표현되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길 바라나
우리 것을 좀 돌아보면 좋겠다. 나는 국수주의자가 아니다. 한국성을 탐구하는 사람도 아니다. 다만 ‘우리의 생각’을 찾고 싶다. 역사란 하등하거나 우월하거나 이분법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학교에서 주택설계 수업을 하면 학생들이 가져오는 레퍼런스가 죄다 외국 집이다. 슬픈 일이다. 기후와 생활방식이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더욱 안타까운 점은 국내에 마땅한 사례가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을 계기로 한국 건축에 대한 더 많은 조사와 발굴이 이뤄지길 바란다.
「
건축 전문지〈SPACE〉에 실렸던 주택 작업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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