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갈 길 내가 정했습니다.”
이는 자유를 위해 남한으로 탈주를 계획한 북한 인민군 중사 규남(이제훈)을 상징하는 대사일지 모른다.
극중 규남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부한다. 실패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겠다는 강렬한 의지로 자유를 위한 질주를 시작한다. 영화 ‘탈주'(감독 이종필·제작 더 램프)가 펼쳐내는 이야기다.
3일 개봉하는 ‘탈주’는 휴전선 인근 북한 최전방 군부대에서 10년 만의 제대를 앞두고 남한으로 귀순을 시도하는 규남과 이를 저지하려는 보위부 장교 현상(구교환)의 쫓고 쫓기는 치열한 추격전을 그리는 작품이다.
● 배경이 중요하지 않는 ‘탈주’
규남이 탈주하고자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제대 후 규남에게는 나라가 정해준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캄캄한 미래”만이 있을 뿐이다. ‘실패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북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자신이 계획한 탈주 시나리오를 실행에 옮긴다.
언제 어디서 지뢰가 터질지 모르는 최전방 부대에서 모두가 잠든 밤, 탈주 시뮬레이션을 거치는 규남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강렬한 오프닝은 시선을 단단히 사로잡는다.
뒤돌아보지 않고 내달리는, 질주와 직진의 에너지로 가득 찬 작품은 북한을 배경으로 하지만 남한의 체제 우월성을 드러내거나 이데올로기를 담는 데는 관심이 없다. 오직 자신의 뜻대로 삶을 꾸려가려는 인간의 의지를 드러내는 ‘현실의 상징’으로 북한을 활용한다. 때문에 ‘북한군의 귀순’이라는 특별한 소재에도 현실에 대입해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갖췄다.
규남을 연기한 이제훈은 극중 캐릭터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기도 했다.
이제훈은 과거 배우를 꿈꾸던 당시 “보장되는 것도 없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가치 있다”고 생각했기에 “타협이 없는 규남에 몸과 마음을 다해 몰입하면서 연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규남을 통해 “인간의 위대한 도전정신을 봤다”던 이제훈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혹시라도 잊고 있었던 것은 무엇인지, 자신의 삶을 되짚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짚었다.
이종필 감독은 ‘탈주’를 통해 귀순 병사의 탈북기가 아닌, 자신의 열망하는 바를 위해 어디론가 탈주하고자 하는 인간의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욕망을 그리고자 했다. 이는 사회가 정한 기준이 아닌, 스스로가 원하는 미래를 선택해 나아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현시대의 분위기와 일맥상통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 이제훈·구교환, 쫓고 쫓으며 완성한 ‘브로맨스’
단순하게 보일 수 있는 메시지를 힘 있게 전달하는 데에는 배우들의 열연이 존재한다.
한 시상식에서 이제훈의 공개 러브콜로 성사된 두 사람의 인연은 영화 속에서 진한 ‘브로맨스’로 발현됐다.
현재는 쫓고 쫓기는 적수지만, 어린 시절 가까웠던 형, 동생이라는 과거사는 이들의 관계를 바라보는 관객에게 애틋함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현실을 받아들인 현상이 운명을 개척하려는 규남을 바라보면서 나타나는 복잡한 감정은 영화의 메시지에 힘을 더한다.
이제훈은 뛰고 구르고 물과 늪에 빠지고, 총알이 빗발치는 숲과 지뢰밭을 달리는 등 그야말로 혼신의 연기를 펼친다. 구교환은 여유로워 보이지만 알고 보면 불안한 현상의 다면적인 면모를 그려냈다.
이제훈은 “구교환을 보면 ‘이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할 정도로 너무나 특별하게 느껴진다”며 애정을 보였고, “시나리오를 쓸 때 이제훈을 상상하면서 쓴 적도 있다”던 구교환은 “만나기 이전부터 매력을 느끼고 있었고, 역시 매력적인 배우”라고 깊은 신뢰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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