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문구에 관심이 많았던 정다은 대표는 마그넷이나 키링 대신 지우개를 여행 기념품으로 모으는 어른으로 자랐습니다. 대학 졸업 후 문구 에이전시에서 일하다 자신만의 브랜드 ‘프렐류드 스튜디오’를 만들고, 대전에 ‘더프렐류드숍(TPS)’을 오픈해 세계의 다양한 문구를 소개하고 있죠. 낮에는 문구를 만들고 밤에는 문구를 쓰는 정다은 대표를 만났습니다.
안녕하세요 엘르 독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문구 브랜드 프렐류드 스튜디오의 대표이자 디자이너인 정다은입니다.
한 인터뷰에서 15살 무렵 편지지를 200여종 가까이 모았다고 밝혔어요. 언제부터 문구에 관심을 두게 됐나요.
학교 앞 문구점에서 첫 소비를 하게 되면서부터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편지만큼 마음을 전하기 좋은 문구가 없다 보니 많이 모으게 됐어요. 아버지가 오랫동안 취미로 한글 캘리그라피를 쓰셨는데, 그래서 더욱 필기구를 접하기 쉬웠던 것도 있고요.
다은님의 책상 위는 다양한 문구로 가득해요.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문구와 그 이유 무엇인가요.
하나만 꼽기 정말 어려워서 최근에 잘 사용하고 있는 문구를 소개하려고 해요. 얼마 전까지 TPS에서 팝업을 열었던 미도리 노트사의 A7 노트인데요. 최근에 대만과 도쿄를 여행하면서 이 노트에 여행 일기를 썼어요. A7 사이즈라 채우기 쉬워서 성취감도 있고, 휴대하거나 보관하기에 간편해서 좋더라고요. 여행 노트하면 당분간은 이 노트를 계속 쓰지 않을까 해요.
처음에는 문구점 입점이나 팝업 스토어로 오프라인 소비자를 만나오다가 6년 만에 프렐류드만의 공간을 오픈했어요. 더프렐류드숍(TPS)을 만들게 된 계기와 처음 공간을 구성할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으로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사람들에게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잘 안 된다는 느낌을 받아왔어요. 프렐류드를 해외 브랜드로 잘못 알고 계신 분들도 있었고, 브랜드에 관한 스토리 전달도 어려웠고요. 그래서 2019년에 성수동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고 온라인에서만 만나던 고객들을 실제로 마주하는 경험을 해보니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해졌죠. 공간을 꾸릴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위치였어요. 대전은 제가 나고 자란 곳이기도 한데, 고향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스스로에게 안식처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간 한편에는 작업실도 겸하고 있어요. 프렐류드 스튜디오에게 TPS는 어떤 의미인가요.
매장이 손님들이 누리는 공간이라면 내부 공간은 동료들과 함께 지내는 곳인데요. 일터이지만 소소한 사내 이벤트를 열거나 매일 책의 문장을 소개하는 코너를 만들어 공간을 가꾸려고 해요. 덕분에 가끔 작업실에 혼자 있는 경우가 있을 때도 ‘어제 우리들이 다정하게 가꾼 일상이 오늘의 나를 꽉 안아주는구나’라는 기분이 들어요.
공간에 들어서면 지우개가 전시된 테이블이 눈에 띄어요. 국내외를 여행하며 하나둘씩 모은 지우개라고 들었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지우개와 구매 당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면.
가장 애착이 가는 지우개라고 하면 오히려 친구들이 여행지에서 선물로 사 온 지우개들이 떠올라요. 저 스스로 다니면서 운명처럼 만난 지우개도 사랑스럽지만, 제 생각이 나서 사 왔다는 그 마음이 고마워서요. 지우개를 구매하던 당시의 이야기를 함께 전해 들으면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샌프란시스코 MoMA 미술관의 굿즈를 선물 받은 적이 있는데, 투명한 지우개 안에 형형색색의 지우개를 잘라 넣은 지우개를 보면 이 미술관에는 과연 어떤 작품이 있을까 궁금해지곤 하죠.
최근 일본 문구 브랜드 ‘페이퍼메세지’와 함께 준비한 팝업을 오픈했죠. 페이퍼메세지기치조지점을 3년 사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공간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는데요. 두 브랜드가 협업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기치조지에 있는 페이퍼메세지를 처음 방문했을 때 좋은 의미로 충격을 받았어요. 손톱만큼 작은 종이로 문구를 만드는 정성이 대단한 브랜드예요. 몇 달 사이에 제품은 물론 공간 디스플레이에도 변화를 주는 모습을 보고 ‘정말 열일하는 브랜드잖아!’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다음이 또 궁금해지더라고요.
이렇게 말하면 제가 먼저 협업을 추진한 것 같지만, 사실 지난가을에 페이퍼메세지팀에서 먼저 제안해 왔어요. 이번 팝업이 이들의 첫 해외 진출이기도 한데 저희 매장에서, 그것도 서울이 아닌 대전에서 진행하고 싶다는 말에 의아했죠. 그런데 프렐류드라면 자신들의 문구를 손님들에게 가장 잘 전달해 줄 것 같다는 말에 대전과 도쿄를 오가는 여러 번의 미팅을 거쳐 팝업 스토어를 열게 됐습니다.
뉴욕, 도쿄, 대만 등 다양한 나라에서 문구 여행을 즐겼어요. 문구 세계 지도를 만든다면 빼놓을 수 없는 문구점 세 곳은.
첫 번째는 뉴욕의 ‘Goods for the study’예요. 밖에서는 되게 작아 보이는데 안으로 깊숙하게 공간이 있어요. 마치 누군가의 책상에 놓여있는 듯이 제품을 배치한 모습이 인상적인 곳입니다. 다음으로 런던의 ‘Choosing Keeping’은 독특하고 빈티지한 필기구를 다루고 있고요. 마지막으로 도쿄의 ‘문구점타비(文具店タビー)’는 동물과 연관된 문구로 가득한 곳인데요. 처음에는 고양이를 애정하는 마음에 관련된 문구를 소개하다가 모든 동물을 사랑하게 됐다고 해요.
TPS를 방문한 손님에겐 특별한 선물이 있죠. 숍 근처 식당, 카페, 소품숍 등을 소개하는 ‘프렐류드 가이드’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여행자의 관점에서 TPS를 찾았을 때 선물처럼 느껴질 만한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다가, 여행 중에 방문한 가게에서 지역 내 가볼 만한 지도를 받은 경험이 떠올랐어요. 지금 당장 가지 않더라도 나중에 다시 오게 됐을 때 이 종이 하나만 있으면 마음 편히 여행 오겠다 싶어서 좋았거든요. ‘프렐류드 가이드’는 TPS에서 도보 15분 안에 갈 수 있는 공간을 소개해요. 팀원들과 직접 방문해서 좋았던 곳을 선정하고, 일 년에 한 번씩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엘르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은 대전의 장소를 꼽아본다면.
성심당 본점에서 도보 1분 거리에 있는 ‘다다르다’라는 독립서점을 추천해요. 책을 구매하면 영수증에 서점 일기를 작성해 주는데, 그 영수증 자체도 하나의 책처럼 느껴져요. 오후 세네시 쯤 방문하면 서점 안으로 햇살이 들어오는 풍경도 감상하기에도 좋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매일 마음속으로 느끼는 것, 바라는 것을 기록하면서 하루하루 잘 쌓아가고 싶어요. 저는 지금 하는 일이 이미 제 꿈을 이룬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쓴 일기장에 ‘나는 나중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할 것이고,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울 거다’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이렇게 계속 기록해 가면서 가끔 펼쳐 봤을 때 놀랄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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