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는 영원합니다(A Diamond is forever).” 영국의 다이아몬드 브랜드 드비어스(De Beers)는 이 한 문장으로 다이아몬드를 전 세계 연인에게 영원한 사랑의 징표로 각인시켰다. 순수한 탄소 결정체로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광물인 다이아몬드가 세상에서 가장 희소성 있는 원석으로 발돋움하는 순간. 불과 100년 전의 일이었고 이후 다이아몬드 시장은 급속도로 발전했다. 현재 지구에서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이 아름다운 보석은 러시아 · 보스와나 · 캐나다 · 콩고민주공화국 등 한정된 국가에서 발굴되는데, 그마저도 러시아는 다이아몬드를 채굴한 수익을 전쟁 자금으로 쓴다는 일명 ‘블러드 다이아몬드’ 국가로 불리며 국제기구들과 거래가 끊긴 상황. 다수의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된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열악한 노동 환경은 물론이고 아프리카 무장세력의 분쟁이 격화돼 주민들이 끔찍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충격을 줬다. 게다가 비윤리적인 채굴 방식과 무분별한 광산 개발, 탄소 배출에 따른 환경 파괴 등 다이아몬드 채굴 과정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회 · 경제적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다이아몬드의 지속 가능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주목받는 것이 있다. 바로 ‘랩 그로운(Lab-Grown)’ 다이아몬드. 말 그대로 실험실에서 자란 다이아몬드를 의미한다. 2018년 5월 영국 왕손비 메건 마클이 인공 다이아몬드를 착용해 화제가 된 이 다이아몬드는 천연 다이아몬드에 비해 다양한 장점을 지녔다. 우선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는 고압 · 고온(HPHT) 공정이나 화학 기상 증착(CVD)을 사용하는 반응(Reactor)에서 생산된다. 두 공정 모두 천연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지는 조건을 기술적으로 구현해 수백만 년이 걸리는 생산 과정을 단 2주로 단축시킨다. 또 탄소 배출이 거의 없는 친환경 소재다. 게다가 다이아몬드 유통이나 채굴 방식에서도 자유로우며, 환경오염과 자원 낭비도 적다. 천연 다이아몬드 1캐럿을 채굴하려면 물 500리터와 6.5톤의 지면을 깎아내야 하지만,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적은 탄소 배출과 18.5리터의 물만 사용하면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주목받는 이유는 합리적 가격. 천연 다이아몬드보다 무려 20~70% 저렴하다. 천연 다이아몬드와 합성 다이아몬드는 화학적 구성 성분과 결정 구조, 물리적 성질이 똑같다. 굳이 차이점을 든다면 다이아몬드가 생성되는 환경이 연구실인지 자연인지만 차이 날 뿐이다. 이런 이유로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신념에 따라 윤리적 소비를 결정하는 ‘미닝 아웃’, 즉 가치소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MZ세대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다.
다이아몬드를 대하는 고객의 인식 변화 때문인지 천연 다이아몬드를 다루던 주얼리 브랜드도 앞다퉈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 시장에 뛰어들었다. 프레드는 2023년 블루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 컬렉션을 선보였고, 프라다 또한 시그너처 로고인 삼각형을 모티프로 ‘프라다 컷’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를 탄생시켰다. 스와로브스키는 글로벌 브랜드 최초로 국내에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를 선보였다. 도산공원 플래그십 스토어에 스와로브스키 크리에이티드 다이아몬드(SCD) 파인 주얼리 컬렉션을 론칭한 것. 스와로브스키 CEO 알렉시스 나사드(Alexis Nasard)는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는 미래 다이아몬드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며, 브랜드의 전략 성장 카테고리를 대표한다”며 주얼리 산업의 새로운 미래를 예측했다. 이런 행보는 워치 브랜드에서도 나타난다. 태그호이어는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카레라 플라스마(Carrera Plasma) 시계를 공개하는 파격 행보를 선보였다. 브라이틀링 역시 마찬가지. 슈퍼 크로노맷 오토매틱 38 오리진스(Super Chronomat Automatic 38 Origins) 워치는 소비자에게 시계에 사용된 금과 다이아몬드의 출처에 관한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한다는 취지로 영세 광산의 금과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를 사용했다. LVMH의 모회사 투자사인 LVMH 럭셔리 벤처스는 랩 그로운 원석을 생산하는 회사인 루식스(Lusix) 지분을 인수해 하이엔드 업계를 놀라게 했다. 또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 주얼리를 선보이는 온라인 플랫폼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 시장의 파페치라 불리는 ‘더 퓨처 록스(The Future Rocks)’가 바로 그것. TFR은 샤넬이 투자해 관심받은 쿠르베(Courbet)부터 쿠튀르 위크에 데뷔한 언세드(Unsaid), 일본의 프라이멀(Prmal), 독일의 마렌(Maren) 등 세계 각국의 지속 가능한 브랜드를 선보이고 있다. ‘TFR’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안토니 생(Anthony Tsang)은 시장 변화와 추세를 전기차 시장과 비교했다. “15년 전만 해도 모두 테슬라를 비웃었지만, 이제는 페라리마저 전기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 에르메스도 버섯에서 추출한 가죽을 사용하지 않나?”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는 더 이상 천연 다이아몬드의 대체재가 아니라 새로운 주얼리 시장을 구축하고 있다. 다이아몬드 수급의 어려움과 환경 문제 등 여러 이슈에 직면하면서 럭셔리 패션 하우스와 하이엔드 주얼리 브랜드는 ‘진짜’만 고집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천연 다이아몬드가 영원한 사랑을 의미했다면,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자신을 위한 혹은 합리적 선택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가치와 미래를 위한 선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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