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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 열고 박해수 닫고, 사이먼 스톤표 리얼리즘’ 연극 벚꽃동산 [ET현장](리뷰)

전자신문 조회수  

사진=LG아트센터 제공

27년만에 연극무대로 돌아온 전도연, 스크린·안방을 묵직하게 감싼 박해수 등 명배우들이 120년 전 러시아의 모습을 오늘날의 서울로 재해석한 리얼리즘 연극과 함께, 시대·지역 초월의 인간사회 본성과 생존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긴다.

최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LG SIGNATURE홀에서 상연중인 ‘벚꽃동산'(연출 사이먼 스톤)을 취재했다.

‘벚꽃동산’은 LG아트센터 서울의 2024년 기획공연 CoMPAS 24 중 하나로 마련한 것으로, 120년 전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가 쓴 동명의 고전을 연출가 사이먼 스톤이 재해석한 작품이다. 십여 년 전 아들의 죽음 이후 미국으로 떠났던 재벌가 여성 송도영(전도연 분)이 한국에 있는 자신의 집과 ‘벚꽃동산’에서 가족을 마주하는 가운데서 비쳐지는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다.

사진=LG아트센터 제공

특히 ‘메디아’ ‘예르마’ 등으로 입증된 사이먼 스톤의 남다른 재해석 능력을 발판으로 120년 전 원작배경을 현대 한국의 이야기로 완벽하게 재구성함과 더불어, 전도연·박해수 등 간판급 배우들부터 김영호, 손상규, 최희서, 이지혜, 남윤호, 박유림, 이주원, 이세준 등 실력파 배우들의 원캐스트 호흡과 함께 몰입감과 현실성을 동시에 충족시키고 있다.

연극 '벚꽃동산'. (사진=LG아트센터, Studio AL)

취재 당일 무대는 총 150분(인터미션 포함)에 달하는 러닝타임 내내 소위 ‘연기차력쇼’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배우들의 몰입감 있는 호흡과 함께, 몽상적 무사안일-이상주의-현실주의 등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급변시기의 사회정서들을 현실적으로 표현하는 듯 보였다.

우선 1~2막 전반부는 몰락을 앞둔 재벌가를 배경으로 한 각 인물들의 정체성과 갈등을 분명히 하는 톤으로 흐른다. 떠 있는 듯한 가벼운 말투와 함께 뭐든 잘 될거라는 낙관론을 펼치며 현재를 즐기는 송도영(전도연 분), 고장난 레코드판처럼 현실성 없는 고전을 주접스럽게 되풀이하는 송재영(손상규 분), 사기꾼스러운 한량 느낌의 사촌 김영호(유병훈 분) 등의 모습은 현실권위를 즐기면서도 현실을 도피하고픈 몽상가적 면모를 느끼게 한다.

연극 '벚꽃동산'. (사진=LG아트센터, Studio AL)

또 운전기사 집안 출신으로서의 트라우마와 함께 기쁜 듯한 모습 속 진지한 비수를 느끼게 하는 황두식(박해수 분), 꼭꼭 짚어내는 듯한 화법으로 현실자각을 촉구하는 강현숙(최희서 분)의 모습은 현실성 없이 이상적 지식만 풀어내는 변동림(남윤호 분)과 추총자 강해나(이지혜 분) 사이의 대립과 함께 차갑고 날카로운 현실감을 전한다.

여기에 순수함 이상의 바보스러움으로 무장한 기사 신예빈(이세준 분), 철부지 느낌의 귀여움을 품은 가정부 정두나(박유림 분), 허세 기운이 담긴 플러팅매력의 비서 이주동(이주원 분) 등의 기묘한 삼각관계는 블랙코미디 급의 웃음포인트와 함께, 현실욕망 부분들이 강조돼 비쳐진다.

연극 '벚꽃동산'. (사진=LG아트센터, Studio AL)

이같은 ‘벚꽃동산’의 흐름은 3~4막 후반부와 함께 펼쳐지는 반전과 함께, 몽상적 상류층-이상적 지식인-현실적 신흥세력 등의 서로 다른 이해충돌과 함께, 현실자각과 해체, 또 다른 사회적 이합집산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파산직전의 현실을 애써 무시하며 황도식·변동림을 모두 품으려는 듯한 송도영의 모습에 지친 강현숙, 강해나 두 딸들은 물론, 어린시절 트라우마를 깨뜨리려는 듯한 모습과 함께 현재의 질서를 자신주도로 재편하려는 듯 재벌가를 접수하는 황도식 등은 현실변혁을 향한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연극 '벚꽃동산'. (사진=LG아트센터, Studio AL)

감미로운 기타호흡 끝 실수포인트와 함께 순수감성을 표현하던 신예빈이 새로운 주인 황도식을 모시게 되는 과정이나 서로 인스턴트 사랑을 이야기하던 정두나-이주동의 다툼을 비롯, 사건의 뒤틀어짐 속에서 점점 대두되는 황두식의 무게감과 함께 대두되는 캐릭터들의 현실순응 면모는 파격적인 블랙유머 코드와 함께 후반부의 핵심매력으로 다가온다.

이같은 ‘벚꽃동산’의 호흡은 상당한 높이감의 계단식 루프톱을 지닌 화이트톤 집과 함께 후반부에 흩날리는 회색빛 눈발, 회색빛이 일부 물든 텅빈 공간 등의 배경구도와 함께, 120년 전 러시아 배경의 원작은 물론 극 배경이 되는 현재의 서울을 비롯한 여러 지역과 시점에서 공통될 인간군상의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듯한 모습이다.

연극 '벚꽃동산'. (사진=LG아트센터, Studio AL)

또한 파격적인 키스신과 재치있는 애드리브를 더한 몽롱한 감성 가운데서도 메시지를 또렷하게 전하는 전도연, 묵직하고 거칠지만 뜨거운 호흡으로 스토리전개에 힘을 붙이는 박해수를 기준으로, 작품의 메시지와 변화들을 날카롭게 표현하는 최희서·이지혜, 작품의 유쾌감과 안타까움을 이끄는 손상규·유병훈, 현실적인 개성을 돋보이게 하는 박유림·이주원·이세준 등 배우들의 연기호흡들을 솔직하면서도 깊게 보여준다.

전도연은 최근 연극 후 관객대화(GV)를 통해 “오랜만의 연극이라 무서웠는데, 공연을 거듭하면서 사이먼 스톤이 말한 ‘공연의 완성은 관객’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매 회차마다 진화하는 ‘벚꽃동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극 '벚꽃동산'. (사진=LG아트센터, Studio AL)

박해수는 같은 자리에서 “새로운 환경 속에서 행복하게 연기하고 있다. 배우들의 앙상블로 웃기면서도 슬픔이 느껴지는 3막 흐름과 함께, 캐릭터의 외로움과 인정욕구 등 인간적 욕구가 잘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진화하는 ‘벚꽃동산’에서 각자의 새로운 세상과 결말들을 생각해보셨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연극 ‘벚꽃동산'(연출 사이먼 스톤)은 원캐스트 구성으로 오는 7월7일까지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상연된다.

박동선 기자 dspark@etnews.com

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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