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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포테이토 지수 88%] ‘존 오브 인터레스트’, 입체적으로 이룩한 ‘악의 평범성’

맥스무비 조회수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이 ‘언더 더 스킨'(2013년) 이후 오랜만에 내놓은 ‘존 오브 인터레스트’. 극중 헤트비히가 엄마에게 정원을 자랑하는 모습. 사진제공=TCO㈜더콘텐츠온

눈으로 보지 못한다고 해서 보이지 않는 건 아니다. 인간의 오감은 외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카메라는 벽 하나로 분리된, 자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공간을 보여주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말한다. 작품 속에서 단절된 세상이 느껴지게 되는 순간 뒷덜미도 함께 서늘해져온다.

유대계 영국인인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이 연출한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인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다. 제목인 ‘존 오브 인터레스트(Zone of Interest·관심 구역)’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둘러싼 40㎢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홀로코스트는 인종청소라는 명목 아래 인간이 얼마만큼이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20세기 인류 최대의 사건이다. 이를 주제로 한 수많은 소설, 영화, 다큐멘터리도 등장했다. 비극의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2014년 출간된 마틴 에이미스 작가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이 작품은 실제 아우슈비츠 수용소 총지휘관이었던 루돌프 회스를 주인공으로 했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수많은 작품들과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단연 차별화되는 부분은, 가해자인 주인공을 ‘평범한 사람들’로 내세우고 동시에 피해자인 유대인의 모습을 단 한 장면에서도 담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홀로코스트 영화’가 유대인들의 시선으로 그려졌던 것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영화는 벽 너머 학살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통제하면서도 미묘한 시각적, 청각적 신호를 꾸준히 쌓아가며 관객들에게 보이지 않는 끔찍한 현실을 상상하게 유도하게 한다. 벽 하나 사이로 피해자의 고통에 무심하게 반응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역사적 비극을 더욱 짙게 하고, 잔인함을 배가시킨다.

칸 국제영화제와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작이기도 한 ‘존 오브 인터레스트’. 사진제공=TCO㈜더콘텐츠온

● 그림 같은 집 너머로…끊임없는 총소리와 절규

영화는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자연에서 여유롭게 한때를 보내는 가족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새들은 지저귀고, 아버지는 아이를 안고 강가에서 함께 논다. 다음날 아이들은 아버지를 위해 깜짝 생일 이벤트를 연다.

모범적으로 한 가정을 이끄는 아버지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총지휘관인 독일 장교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리델)다. 그는 가장의 얼굴과 수용소로 끌려온 유대인들을 어떻게 하면 빠르고,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를 사무적으로 논의하는 ‘두 얼굴’의 사나이다.

회스의 아내 헤트비히(산드라 휠러)는 자신이 정성스럽게 가꾼 정원을 자랑스러워하는 가정주부다. 남편이 붙여준 ‘아우슈비츠의 여왕’이라는 별명도 꽤나 만족스럽다. “이렇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잘 자리 잡은 거 같아서 뿌듯하다”는 엄마의 말에 묘한 안도감을 느끼는 평범한 딸의 모습도 지녔다.

하지만 엄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총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날카로운 비명과 아기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 등이 이어진다.

그 뒤로도 평화로운 회스의 집 너머, 유대인 등을 수용소로 데려오는 기차 소리와 그 기차가 내뿜는 연기 그리고 시체 소각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커먼 연기 등을 통해 강제수용소의 존재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독일 장교 루돌프 회스 역의 크리스티안 프리델의 모습. 사진제공=TCO㈜더콘텐츠온

● “악마는 다른 세상을 사는가?” 감독의 도발적인 질문

몇 백만명이 목숨을 잃어가는 생지옥의 한복판이지만, 회스 가족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삶을 이어간다. 안온한 악의 얼굴이 섬뜩함을 안길 수밖에 없다.

글레이저 감독은 “가해자들을 다룬 영화들이 있었지만, ‘우리와는 다른 인간들이야’라는 태도로 다룬다. 그런데 이 작품이 취하는 태도는 가해자들과 우리가 비슷한 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에 쉽게, 편하게 이입하고 공감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가해자들의 모습을 통해 어느 정도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홀로코스트는 상부의 명령에 순응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됐음을 설명하는 독일 출신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입체적으로 구현해낸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과연 악마는 다른 세상을 사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1994년) 이후 처음으로 아우슈비츠 내의 촬영 허가를 받아낸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실존 인물인 회스 가족의 사진과 그 집에서 일했던 정원사의 증언이 중요한 자료가 됐다.

10년이라는 제작 과정을 거쳐 탄생한 이 작품은 지난해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고, 올해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과 음향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추락의 해부’에서 열연한 산드라 휠러는 헤트비히 역을 맡아 존재감을 보여준다. 사진제공=TCO㈜더콘텐츠온

감독 : 조너선 글레이저 / 출연: 크리스티안 프리델, 산드라 휠러 외 / 장르: 드라마, 역사, 전쟁 / 개봉: 6월5일 /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05분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짠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

로 나눠 공개합니다.]

맥스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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