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80%는 트라우마”
빚 갚느라 급급했던 아역 배우의 사연
‘똑순이’로 유명한 배우 김민희가 아동학대 수준의 촬영 현장을 견뎌야 했던 사연을 털어놓으며 화제가 되고 있다.
굶기고 돌 던지고… 아역시절 끔찍한 학대의 기억
지난 23일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는 배우 겸 트로트 가수인 김민희와 배우 지망생인 딸 서지우가 함께 출연했다.
6세라는 어린 나이에 배우로 데뷔했던 김민희는 남들보다 빠르게 사회생활을 시작해 고충이 컸다고 밝혔다.
오은영이 “6세에 데뷔해 너무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거나 안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냐”고 묻자 대답을 망설이던 김민희는 “주변 상황상 안 되는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김민희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오싱’이라는 영화를 찍을 당시 한파에 도망가는 장면을 찍었다”며 “핫팩도 없던 시절에 눈에서 촬영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현장감을 살린다고 그 추위에 얼굴에 진짜 눈을 붙였다”고 말한 김민희는 “밤부터 아침까지 쫄쫄 굶기도 했다”고 전했다.
아무거나 먹는 바람에 장염에 걸린 채로도 새벽까지 후시 녹음을 해야 했던 열악한 촬영 환경에 대해 말하자 출연진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김민희는 “‘나 안 할래’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철이 일찍 들어서 그걸 견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어 “웃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며 “스트레스를 양치로 풀었더니 잇몸이 내려앉았다”고 설명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김민희가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고통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1980년대 전국을 휩쓸었던 ‘똑순이’ 열풍으로 어마어마한 출연료를 받았던 김민희.
당시 김민희의 한 달 수입이 대기업 초임 평균 월급보다 5~6배나 많았다고 전해졌다. 이에 정형돈은 돈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물었다.
그러나 김민희는 “돈을 얼마나 받는지도 몰랐다”며 “정치를 하시려던 아버지의 선거 운동에 어음을 사용했다”고 당시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국회의원을 하려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빚을 갚기에 급급했던 김민희. 심지어 “중학교 때 내가 연예인인 걸 알았다”고 밝혀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당시에는 학대받으면서도 학대인 줄을 몰랐다고 말한 김민희는 트라우마로 남은 기억을 꺼내놓았다.
“아이들이 괴롭히고 어른들이 돌 던지고 책갈피에 꽂아놓는다며 머리카락을 뽑아갔다”며 “뇌의 80%는 트라우마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일일드라마 ‘달동네’에서 똑순이 역으로 출연한 이후 김민희는 당시 각종 CF에도 출연하는 등 많은 인기를 누렸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하여 성인 연기자로도 활약했지만, 아역 시절의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현재는 가수의 꿈을 펼치기 위해 ‘염홍’이라는 예명을 사용하여 가수 활동을 하고 있다.
10년 만에 이혼 밝힌 김민희, 잇몸 내려앉기까지…
한편, 최근 김민희가 10년 만에 이혼 소식을 밝히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3월 김민희는 채널A ‘4인용식탁’에 출연하여 “딸을 10년 동안 혼자 키웠다”고 밝히며 충격을 안겼다.
1997년 회사원 남편과 결혼했으나 딸이 초등학교 3학년이던 시절 이혼했으며, 그때부터 딸을 혼자 키운 싱글맘이라고 뒤늦게 고백한 것이다.
김민희는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 이혼을 지금까지 숨겼던 이유에 대하여 “딸이 이혼 사실 고백을 제안했지만 전 남편이 암으로 투병 중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전 남편이 회복되기를 기다린 끝에 이혼 소식을 털어놓은 김민희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기를 기다린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혼 공개 후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묻자 김민희는 “전화를 잘 안 받고 집에만 있으니 딸이 날 걱정한다”고 이야기했다.
김민희는 “열심히 가족을 챙기다 보니 번아웃이 왔다”며 “세상으로부터 피난처로 집을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김민희는) 고통과 좌절에 대한 인내력이 높다”는 오은영의 말에 눈물을 쏟아낸 김민희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함께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김민희의 소식이 전해지자 네티즌들은 “어릴 때부터 얼마나 힘드셨을까”, “앞으로는 꽃길만 걸으시길 바라요” 등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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