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대 배우가 오디션장에 등장했다. 이순재는 “늙은 배우가 필요하다고 해서 찾아온 접수 번호 1번”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한 이순재는 올해로 69년 차 배우다. 그는 또다시 새로운 배역에 도전하기 위해 오디션장을 찾았다.
지난 7일 JTBC에서 방송된 ‘백상예술대상’에서 이순재는 후배 배우들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연극 무대를 꾸몄다.
오디션 면접관은 물었다. “대사량이 많다. 대본 외우는 데 문제가 없겠냐?” 이순재는 “배우로서의 기본”이라고 답했다. 이순재는 배우의 생명력에 대해 암기력이 경계선이라고 말했다. 이순재는 “대사를 외울 자신이 없으면 배우를 그만둬야 한다”며 원칙을 단호하게 말했다.
“연차가 높은데 왜 아직도 연기에 도전하나?”라는 질문에 이순재는 “배우라는 역할은 항상 새로운 작품, 새로운 역할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이어 “똑같은 걸 반복하는 게 아니”라며 “그걸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 고민하고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이 배우의 역할이다. 그랬을 때 새로운 역할이 창조가 가능하다”며 업에 대한 본질을 잊지 않았다.
이순재는 “그동안에 연기를 쉽게 생각했던 배우들, 또 ‘이만하면 난 다 된 배우 아닌가?’ 했던 수 백명이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없어져 버렸다”며 따끔하게 현실을 지적하며 “배우라는 것은 항상 새로운 작업에 대한 도전”이라고 역설했다.
69년간 연기를 해온 그에게도 “연기는 쉽지 않다.” 그는 “연기엔 완성이 없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잘할 순 있어도 완성은 아니다. 우린 완성을 향해서 항상 고민하고 노력하고 도전하는 것”이라며 “이게 배우의 역할이고 생명력”이라고 울림이 있는 말을 전했다.
이순재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 연기에 도전했다. 그는 “사람이 최고의 위치에 있을 때 저 밑바닥 사람들 잘 이해 못한다”며 “본인이 그 바닥에 떨어졌을 때 처음 느끼는 것”이라며 딸들에게 권력을 주고 쫓겨나 광야에서 비바람을 맞는 리어왕의 한 대목을 연기했다. 연기를 보여주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후배들이 보는 앞에서 독백 대사만으로 무대를 꽉 채웠다. 아흔살의 배우의 눈빛은 살아 있었다.
양아라 에디터 / ara.yang@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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