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의 동조자 되어 시청자를 ‘박찬욱 동조자’로 만드는 배우들
새로 기억해야 할 이름, 호아 쉬안데…주인공 ‘나’ 롤러코스터 연기
로다주의 연기 변신은 계속된다…미국 상징하는 1인 4역 맡아 명연
감독 박찬욱의 국외 세 번째 작품, 미국 영화 ‘스토커’와 영국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에 이은 미국 드라마 ‘동조자’가 국내에 공개돼 수준 높은 만족감을 선사하고 있다.
7부작 중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3편까지 모두 공개된 상황. 특유의 밀도 높은 미장센과 감각 넘치는 편집, 배우들의 에너지 꽉 찬 연기와 촘촘한 이야기 전개, 그리고 그 위로 흐르는 음악까지 뭐 하나 흠잡을 데 없이 ‘매끈한’ 매무새가 돋보인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흠잡을 데 없는 게 아니라 사소한 장면 전환 하나에도 치환과 은유를 사용하고 과거로의 시간 회귀에마저 열과 성을 다한 연출에 탄성이 새어 나온다. 월드클래스 ‘웰-메이드’ 작품성에 볼수록 빠져드는 건 기본, “4월 방영을 시작한 미국 HBO 드라마를 빠르게 국내로 사 온 건 고마운데 왜 한 주에 1회분만 공개하느냐”는 배급사 쿠팡플레이를 상대로 한 볼멘^^ 댓글에 공감이 갈 정도다.
집중력 있게 한글 자막으로 한 번 보고, 1~6편까지 작가 박찬욱이 모두 참여한 대본의 맛을 보겠다는 욕심에 영어 자막으로 놓고 일시 정지에 정지를 이어가며 다시 보다 보면 일주일이 흐른다. 그렇게 3주. 물론 끝까지 시청할 테지만, 팔은 안으로 굽어선지 드라마 절반까지 와 선지 우선 박 감독의 연출분이 모두 공개된 시점에 오니 ‘박찬욱 찬가’가 절로 나온다.
모든 면에 있어 혀를 내두르는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래 이 정도는 해줘야 진정 관객에 대한 존경이고 사랑이지’ 생각하며 박찬욱 감독 이하 모든 제작진에게 사랑과 존경을 되돌려드리고 있지만. 아무래도 화면 위에서 박찬욱의 대본과 박찬욱의 연출을 시청자인 우리에게 열심히 배달하는 배우들에게 눈이 갈 수밖에 없다.
특히 대위(캡틴) 신분으로 남베트남 비밀경찰대에 잠입한 북베트남(베트공) 스파이인 주인공 ‘나’는 감독 박찬욱의 페르소나로 다가온다. 이름조차 없는 데다 그가 베트공에 잡혀 지난날을 회상하는 글을 쓰는 현재 시점에서, 그의 내레이션 속에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대위를 연기한 배우 호아 쉬안데에게 시선이 머문다.
연극 무대에 선 경험은 있어도 대위 역을 맡기 전까지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다는데 연기가 일품이다. 북베트공의 비밀경찰이라는 정체성과 공산주의 철학을 잊지 않아야 함과 동시에 그것을 싹 잊고 남베트남 비밀경찰로서 누구보다 완벽하게 위장해야 살아남는 ‘현실’. 남베트남 비밀경찰대를 이끄는 장군을 비롯해 소령 등의 군인들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이자 처단해야 할 적으로 생각하고 임해야 하는 ‘사명’. 베트남인 어머니와 프랑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반반’으로 놀림 받고 자란 아픔이 숙명처럼 이어져 남과 북,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반반을 동시에 품고 살아가는 ‘번뇌’. 이 세 가지, 아니 그 이상의 만 가지를 때로는 매력적 미소와 더불어, 때로는 촉촉한 눈물 속에 기가 막히게 표현해냈다.
예상하듯 박찬욱 감독이 캐스팅했다. 박찬욱 감독은 배우 김태리(영화 ‘아가씨’)와 강혜정(영화 ‘올드보이’)을 발굴하듯 호아 쉬안데에게 과감히 주인공을 맡기며 ‘배우 알아보는 혜안’을 다시금 확인시켰다. 눈에 익지 않은 배우의 호연이 관객의 마음을 파고들기란 쉽지 않은데, 호아 쉬안데는 감독 박찬욱의 믿음에 신뢰감 가는 연기로 호응했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눈에 익은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이하 로다주)의 명연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언맨 사표를 쓰며 마블 세계관에서 빠져나갈 때 아쉽다 못해 살짝 밉기도 했는데, 탁월한 선택에 박수를 보내는 오늘을 로다주가 일구고 있다.
지난 3월 열린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루이스 스트로스를 연기한 로다주를 남우조연상 트로피의 주인공으로 호명했다. 천재 과학자 오펜하이머에게 열등감과 경쟁의식을 느끼는 성공지향형 인물의 심리를 심도 있게 연기한 로다주, 아무 정보 없이 관람을 시작했다면 로다주임을 재빠르게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새로운 얼굴을 꺼내 보였다.
연기 변신은 드라마 ‘동조자’로 이어졌고, 더욱 강력하다. 3화까지 공개된 현재, 1인 4역의 광폭 연기 스펙트럼을 과시했다. 주인공에게 직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주는 미국 CIA(중앙정보국) 요원 클로드, 대위의 미국 대학교 스승이자 인종차별주의자 해머 교수, 정치적 모략과 술수에 능한 네드 고드윈 하원의원, 그들의 언저리에서 꿀 빨아먹는 선동꾼 니코스 데미아노스 영화감독을 모두 로다주가 연기했다. 3화 말미, 주인공 대위와 로다주가 연기한 4명의 인물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스테이크를 씹으며 베트공을 씹어먹을 프로젝트를 얘기하는 장면은 로다주 연기의 압권이다.
박찬욱 감독은 참 짓궂을 만큼 해학적이고도 영민하다. 세계 경찰(폭스 아메리카나)을 자처하는 미국의 마스크 안쪽, 그 여우 같은 속내와 비열한 면모를 아시아 관점에서 정확히는 비미국적 관점으로 일갈하되. 미국 제국주의 대표 얼굴들을 한 명의 배우에게 맡김으로써, 1인 4역이라는 코믹한 설정 아래 비판을 가함으로써 ‘코미디인데 왜 다큐로 받아? 그냥 웃어~’라는 반박론마저 틀어쥐고 있다. 골계미 있는 장면으로 깊이 있게 즐겨도 좋고, 감독 박찬욱의 또 다른 페르소나 로다주의 1인 4역으로 즐겨도 좋다.
피도 사회적 정체성도 반반이지만 일할 때는 전부를 거는 주인공. 미국으로 망명한 남베트남 장군의 믿음직한 부하를 넘어 클로드의 말처럼 ‘첩보의 세계’로 진입해 공산-자유세계의 이중첩자가 될 대위의 활약, 또 긴박한 탄로와 체포의 순간들이 펼쳐질 ‘동조자’(The Sympathizer) 후반부는 엿새 뒤에나 시작된다. 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FlixPatrol)에서 2주 연속 톱10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는 만족하기 어렵다. 전 세계 1위의 낭보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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