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과거를 돌이켜보면 상처와 트라우마가 많은데 그걸 파묘하고 싶었다”는 장재현 감독의 영화 ‘파묘’가 개봉 한달 만에 ‘천만 영화’ 고지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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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가 폭넓은 관객층을 확보하기 어려운 장르인 데다 극장가 비수기로 여겨지는 2월에 개봉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흥행에 있어 ‘험한 것’들을 다 파괴한 성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23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파묘’는 개봉 30일째인 전날까지 누적 관객 수 약 970만명을 기록해 이번 주말 1천만 관객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파묘’는 거액을 받고 수상한 묘를 옮기게 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일을 그린 작품이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 등으로 이른바 K-오컬트 장르를 개척한 장 감독의 신작인 만큼 상반기 기대작으로 꼽혔으나 이 정도의 대흥행을 예상한 시각은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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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층에게는 다소 낯설 수 있는 장르이고 개봉 시기 역시 일반적으로 관객 수가 적어지는 설 연휴 직후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말부터 한국 영화 히트작이 없었다는 점도 ‘파묘’의 흥행 전망을 어둡게 했다. 일각에서는 손익분기점인 330만명을 넘기기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파묘’가 이 같은 예상을 깨고 흥행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대중적인 스토리와 소재,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가 가장 먼저 거론된다. 젊은 세대 관객이 집중될 수 있는 오컬트가 중심이지만 크리처, 역사물, 드라마, 미스터리 공포 등 다양한 장르를 덧대며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매력을 가동했다는 얘기다.
영화를 두고 일부 평론가, 관객들 사이에서 “초반엔 재밌으나 중반 이후 산만하고 늘어지는 느낌이다”란 평가가 나오긴 하지만 “재미있다”는 점에선 전체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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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V에 따르면 ‘파묘’의 세대별 관객 비중은 20대가 25%, 30대 31%, 40대 22%, 50대 이상 17% 등으로 고르게 나타났다.
한국인이라면 대부분이 관심 있어 할 만한 무속신앙, 풍수지리를 소재로 내세워 연령이나 성별과 상관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게 만든 데다 ‘꼰대’인 586 세대와 ‘힙한’ MZ세대의 헙업이란 극중 내용처럼 최민식-유해진, 김고은-이도현의 세대별 캐스팅이 여러 세대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구성된 점도 흥행에 기여했다.
온라인상에서 ‘파묘’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회자하면서 흥행 기세에 탄력이 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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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전에는 예고편에 나온 김고은의 대살굿 장면이 화제가 됐고, 개봉 후에는 영화 속 ‘항일 코드’나 일본 귀신과 관련한 각종 게시물이 쏟아졌다. 한반도 형상이 배경에 박힌 포스터를 비롯해 소품과 숫자, 캐릭터 이름에 숨겨진 항일 메시지를 해석하는 콘텐츠도 인기를 얻었다.
더불어 이승만 전 대통령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김덕영 감독이 ‘파묘’를 좌파 영화라 주장하고, 관객들 사이에서는 일본 귀신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등 한 달간 여러 말들이 많이 나오면서 ‘대체 뭐 어떻길래 그러나, 한 번 보러 가야겠다’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며 흥행으로 이어진 대목도 있다.
작년 11월 개봉해 1300만 관객을 동원한 ‘서울의 봄’에 이어 2월 개봉작인 ‘파묘’까지 천만 고지를 밟게 되면서 극장가 성수기·비수기의 경계가 흐려졌다는 목소리에도 힘을 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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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극장으로 향하는 관객수가 뚝 떨어지고, OTT 플랫폼을 통해 영화를 소비하는 경향이 짙어진 상황에서 ‘웰메이드’ 작품이라면 전통적인 흥행 대목인 여름방학 기간이나 설·추석 연휴 등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흥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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