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포테이토 지수 79%]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젊은 거장의 불친절한 문법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현재 일본을 넘어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2021년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이 각각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과 베를린 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면서다. 영화제 수상뿐만 아니라 일상과 비일상을 넘나드는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자신만의 영화세계를 구축한 ‘하마구치’는 어느새 관객을 두근거리게 하는 대명사가 됐다.
그런 그가 신작 공개를 앞두고 있다. 의미심장한 제목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이다.
영화는 도쿄와 가깝지만 아직 개발이 진행되지 않은 작은 산골마을을 배경으로 자연과 인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전 작품들과 다르게 지역 개발과 그에 따른 갈등이라는 사회적 이슈를 부각하지만, 이를 그려내는 방식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자연과 인간, 도시와 시골이라는 이분법적 경계와 대립을 넘어서 영화는 결말에 이르러 관객들의 뒤통수를 치고 물음표를 던진다. 극중 갑작스럽게 뚝 끊겨버리는 음악만큼, 따분할 정도로 한곳을 응시하다가 후진하는 차의 시선을 따라가며 어지러움을 유발하는 카메라만큼, 불친절한 문법을 지녔다.
그래서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대로 관객들에게 숟가락을 들어 내용을 떠먹여주는 작품은 아니다. 관객은 다양한 은유와 상징들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야 하고, 사유해야만 와닿을 수 있다. 이번 영화가 ‘명장’ 반열에 오른 하마구치의 챕터2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라고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 상류에서 흐른 것은 하류에 쌓인다
영화의 배경은 도시와 조금 떨어진 외곽의 작은 시골마을이다. 타쿠미(오미카 히토시)는 아내 없이 딸 하나(니시카와 료)와 살아가고 있다. 이곳은 자연친화적인 곳으로, 타쿠미는 아직 오염되지 않은 냇가에서 물을 퍼 음식점에 날라주는 등 동네의 심부름꾼 역할을 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위기가 끝나갈 즈음 이 마을에 글램핑 야영장을 건설하겠다는 주민 설명회가 개최된다. 설명회에 나온 회사의 두 직원 타카하시(코사카 류지)와 마유즈미(시부타니 아야카)는 마을 사람들 입장에서 봤을 때 허점이 많은 발표를 한다.
타카하시는 ‘마을의 새로운 관광상품이 생기는 것’이라며 주민들을 달래려 한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속사정이 있다. 때를 놓치면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적당히 주민들의 말을 들어주면서 공사에 착수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타카하시와 마유즈미는 마치 ‘악’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그저 회사의 입장을 주민들에게, 주민들의 입장을 회사에 전달하는 역할만을 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반전을 꾀한다.
두 직원과 주민들의 실랑이가 이어지고, 이내 마을 이장의 대사를 통해 영화의 주제의식이 드러난다. 이장은 타카하시와 마유즈에게 “상류에서 한 일은 하류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상류에서 한 일은 쌓이고 쌓여 하류에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때문에 상류에 사는 사람들은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이장의 설파는 대자연의 섭리가 선과 악이 아닌 자극과 반응, 원인과 결과에 따른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같은 메시지는 야생 사슴의 습성을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다.
이 지역에 사는 야생 사슴은 인간을 절대로 해치지 않는다. 다만 사냥꾼들의 총에 빗맞아 상처를 입거나 상처 입은 사슴의 부모라면 말이 달라진다. 사슴은 그것이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사람을 향해 돌진한다. 이 또한 자연의 선택과 결정은 인간이 세운 선과 악이나 어떤 정의의 산물이 아님을 뜻한다.
하마구치 감독은 “눈앞의 이익을 좇느라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생각하지 않고 엉성한 계획을 세울 때 벌어지는 전형적인 패턴이 있다”면서 “이 때문에 환경도, 인간도 파괴될 수 있다. 여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고, 지혜를 얻지 않으면 반복될 수 있다”며 이러한 문제의식을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 담아냈다.
● ‘살쾡이’ 같은 오미카 히토시, 인상적인 첫 데뷔
극중 타쿠미 역을 맡은 오미카 히토시는 ‘우연과 상상’의 스태프로 하마구치 감독과 함께해 온 제작부원으로,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를 통해 첫 연기를 펼쳤다.
하마구치 감독은 촬영장소를 답사하면서 오미카 히토시를 대상으로 카메라 테스트를 했다. 그에게 동물, 특히 살쾡이 같은 느낌을 포착한 뒤 타쿠미 역할을 제안했다. 오미카 히토시는 속내를 알 수 없는 타쿠미의 면모를 탁월하게 그려냈다. 그가 마지막에 이르러 하는 행동은 관객들을 충격에 빠뜨리고, 타쿠미라는 존재를 곱씹게 만드는 역할을 해낸다.
감독·각본 : 하마구치 류스케 / 출연: 오미카 히토시, 니시카와 료, 코사카 류지, 시부타니 아야카 외 / 장르: 드라마, 미스터리 / 개봉: 3월27일 /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06분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