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원·박학기 등 김민기 명곡으로 ‘굿바이 무대’…”학전 정신 계속”
15일 폐관, 33년 만에 역사 속으로…전석 매진·관객 ‘떼창’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14일 저녁 서울 대학로 소극장 학전에 김민기의 대표곡 ‘아침이슬’이 울려 퍼졌다.
한영애, 권진원, 박학기, 노래를찾는사람들, 알리, 정동하 등 이곳과 인연이 깊은 가수들이 무대를 지켰고, ‘천만 배우’ 황정민도 꼿꼿하게 서서 노래에 힘을 보탰다.
관객들은 두 팔을 좌우로 흔들며 호응했고, 황정민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권진원은 주먹을 쥐고 노래하다 마지막 소절을 마치고서는 북받치는 감정에 끝내 흐느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관객들은 어느새 ‘나 이제 가노라’ 하고 떼창으로 한목소리가 됐다.
15일 폐관을 앞두고 학전의 33년 역사를 마무리하는 공연, ‘학전 어게인 콘서트’의 마지막 회차에서다.
학전은 ‘아침이슬’과 ‘상록수’ 등을 만들고 부른 김민기 대표가 1991년 3월 15일 대학로에 문을 연 공간이다. ‘못자리’ 같은 문화예술계 산실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학전은 만성적인 적자와 김민기 대표의 암 투병이 겹치며 문을 닫게 됐다.
이 소식을 접한 학전 출신 가수와 배우들은 지난달 28일부터 ‘학전 어게인 콘서트’를 열어 정든 공연장을 떠나보낼 준비를 했고, 이날 마지막 무대가 마련됐다.
학전은 폐관을 아쉬워하는 관객들로 단 한 석의 빈자리도 없이 가득 찼다.
출연자들은 ‘김민기 트리뷰트’를 주제로 ‘친구’, ‘그 사이’, ‘가을 편지’, ‘그날’, ‘작은 연못’, ‘상록수’, ‘봉우리’ 등 명곡들을 자신만의 목소리로 해석해냈다.
황정민은 권진원과 함께 ‘이 세상 어딘가에’를 듀엣으로 불러 눈길을 끌었다. 그는 마이크를 두 손으로 쥐고 고음에 힘을 쏟았고, 권진원은 이런 그를 바라보며 호흡을 맞췄다. 두 사람은 ‘손에 손 놓치지 말고 파도와 맞서 보아요’라는 마지막 소절을 부르며 가사처럼 상대의 손을 맞잡았다.
황정민은 “학전 극단이 만들어지면서 1기 오디션에 합격해 ‘지하철 1호선’이란 작품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며 “저의 20대를 기술이나 테크닉 없이 오롯이 열정 하나로만 보낸 기억이 있다. (김민기) 선생님에게 기본이라는 게 뭔지를 다시 배웠다”고 회고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막 프로 무대에 서려는데 기본을 다시 시작하라고 하니 ’20대 빨간 얼굴을 가진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겠느냐”며 “그때는 몰랐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게 엄청난 저의 힘이 됐고, 지금까지 제 일에 자부심을 갖고 버틸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다”고 말했다.
‘학전 어게인 콘서트’를 기획한 박학기는 “‘싱송생송’이라는 싱어송라이터 모임에 형님(김민기)과 학전 폐관 소식을 알렸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해서 시작한 게 이번 공연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수만 선생님이 학전의 마무리를 위해 큰 금액을 기부하셨다”고도 했다.
권진원은 1995년 자신의 첫 단독 콘서트를 학전에서 연 인연이 있다.
그는 “김민기 선배의 노래에는 고결함과 숭고함이 있다”며 “그런데 선배의 노래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그런데도 선배의 음악은 누구보다도 이 세상에 대한,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했다. 후배들에게, 그리고 저에게 음악으로 등불이 돼 주신 분”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날 콘서트에는 대학로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로 김민기가 거의 매일 드나들었던 학림다방의 이충열 대표도 무대에 올랐다.
이 대표는 “1987년 김민기 형을 처음 만난 것은 내가 형이 갖고 있지 않은 판(LP)을 갖고 있던 게 계기였다. 그걸 틀었다가 아주 혼났다. 그게 자기 노래였기 때문”이라며 “김민기 형은 술에 취해도 음이 틀리면 바로바로 지적할 정도로 음감이 정말 뛰어났다”고 추억했다.
2시간 넘게 진행된 콘서트, 그리고 학전의 역사는 전 출연진의 ‘아침이슬’ 합창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학전 관계자들은 관객 한명 한명에게 “감사했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공연장 입구로 나서자 학전이 낳은 최고의 스타 고(故) 김광석의 부조가 관객을 배웅했다. 이곳에서 1천회 이상 공연했던 그가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은 학전의 최후까지 함께 노래한 듯 묘한 여운을 남겼다.
“학전은 오늘로 사라지지만 그 정신은 모든 사람, 배우, 관객이 가지고 있을 겁니다.”(황정민)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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