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방영된 ‘고려거란전쟁’ 최종회는 1019년 고려군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크게 이긴 전투인 ‘귀주대첩’을 다뤘다. 고려와 거란의 26년간 전투를 마무리하는 ‘귀주대첩’은 극 중 20분 분량으로 짧게 그려졌다.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은 전쟁 도중 중갑기병의 등장으로 유리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최후의 결전을 벌이는 고려군과 거란군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는 각오를 다졌다. 극이 하이라이트로 치달을 때쯤 생뚱맞게 별 모양의 쇳덩어리가 하늘에 보이더니, 비가 뚝뚝 내렸다. 그렇게 전투가 종료되고 병사들이 환호하는 장면으로 넘어가 버렸다.
한마디로 중간 과정이 생략됐다. 마치 전쟁이 우천 취소로 중단되고 갑작스러운 승리를 맞이했다는 이야기다. 가장 중요했던 전투 장면이 허무하게 끝나버리자 시청자들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우천 취소냐’, ‘과거 회상인줄 알았다’, ‘예산 부족이냐’ 등의 지적이 따랐다.
11일 텐아시아 취재 결과 실제 촬영분은 이보다 더 디테일하고 길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더 많은 전투 장면들과 거란군의 갑옷이 잔뜩 쌓여있는 장면 등 핵심적인 연출이 빠졌다. 그러면서 강감찬이 태어날 때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하늘의 별’을 상징하는 장면만 덩그러니 남았다. 강감찬의 탄생 비화 등에 대한 사전 설명이 전혀 없었던 만큼 시청자들로선 생뚱맞게 느낄 수 밖에 없는 연출이다. 각국 사신들이 승리를 축하하며 각종 조공과 선물을 바쳤다는 장면 등 전개상 꼭 필요하지 않았던 장면은 오히려 길게 연출하면서 이미 찍어놓은 전투신은 의도적으로 뺐다는 얘기다.
이 같은 배경에는 감독 간 내부적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고려거란전쟁’을 연출한 전우성 메인 감독과 김한솔 감독 사이에 좁혀지지 않은 의견 차이가 있었다는 뜻이다. 전우성 메인 감독은 극의 전반을 통제하고 편집권을 쥐고 있다. 김한솔 감독은 전투신을 전문적으로 촬영하기로 유명한 감독이다. 흥화진전투와 귀주대첩 등 전투신은 김한솔 감독이 맡고 나머지 소소한 전투신을 포함해 내부 정쟁을 다루는 장면 등은 전우성 감독이 촬영한 식이다.
고려거란전쟁은 대규모 전투신에 대한 평가가 좋았다. ‘흥화진 전투’가 그랬다. 김 감독이 총지휘한 흥화진 전투 장면은 웅장한 스케일과 군사들 하나하나를 신경 쓴 듯한 디테일한 연출, 액션과 CG까지 3박자를 골고루 맞췄다. 활을 쏠 때 팔을 꺾는 장면부터 병사들의 부상당한 신체 표현 등도 디테일했다.
귀주대첩은 촬영 초반에 찍었다. 귀주대첩 같은 대규모 전투 장면을 촬영하는 건 감독에게도 큰 기회다. 욕심을 낼 만한 전투 장면이기 때문에 허투루 할 수 없다. 적어도 ‘우천취소’로 끝나버리는 편집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실제 편집은 전 감독 주도로 이뤄지면서, 우천취소 오명만 뒤집어 썼다. 한 핵심 관계자는 “전우성 감독이 편집을 진행하면서 기존 촬영분 중 상당 부분을 뺐다”며 “감독 간 이견으로 이 같은 결과물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귀주대첩으로 작품의 공이 넘어가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귀주대첩 장면 대신 후반부 외교 장면이 더 들어간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텐아시아 취재 결과 거금을 들여 다 찍어놓고 사용하지 않은 장면도 있다. 현종의 즉위식 장면에선 5000만원을 넘게 쓰고도 정작 통편집하면서 1초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고려거란전쟁’의 최종회는 13.8%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KBS가 공영방송 50주년을 맞이해 내놓은 대하 사극인 것을 감안하면 낮은 수치다. 막대한 제작비와 최수종 10년만의 복귀작이라는 기대 등을 반영하면 최소 20% 이상 나와야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작품의 흥망을 결정하는 중요한 3가지 요소에는 연기력, 연출, 극본이 있다. 특히나 전쟁 신을 다루는 사극에서는 탄탄한 연출력이 성공의 키다. ‘고려거란전쟁’은 고려궐안전쟁에 이어 ‘우천취소’ 귀주대첩이라는 오명만 뒤집어 썼다. 감독간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고려와 거란의 전쟁사라는 훌륭한 사극 소재를 허비한 셈만 됐다. 사극 강자였던 KBS의 위상도 바닥으로 추락해버렸다.
류예지 텐아시아 기자 ryuperstar@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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