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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명장면 5’…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서 이선균 [홍종선의 명장면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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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펜하이머’로 생애 첫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뉴시스 제공
영화 ‘오펜하이머’로 생애 첫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뉴시스 제공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10일 오후 4시(미국 현지시간) 시작해 3시간 반에 걸쳐 진행됐다. 식전 레드카펫까지 고려하면 4시간 넘게 축제가 열렸다.

말 그대로 축제였다. 96번째 시상식이었지만 100주년을 방불케 할 만큼 화려하고 유쾌했다. 실제론 코로나19로 인한 장기적 침체 이후 활성화되기 시작한 영화 제작과 시상식의 정상화를 기념하는 ‘성대함’이겠으나, 사회자 지미 키멜은 ‘쇼킹했던 순간의 50주년’이라고 의미 부여에 나섰다.

1974년 제4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호명하던 때, 벌거벗은 한 남자가 무대를 가로질렀던 일을 언급하며 “무대에 홀딱 벗은 남성이 가로지른다면 어떻겠나, 정말 놀랍지 않으시겠나”라고 말했고. 설마 하던 차, ‘의상상’ 시상자 배우 존 시나가 의상 없이 무대에 등장했다. 자칫 선을 넘을 수 있는 기획이었지만, 수상자 이름이 든 봉투와 황금빛 천을 이용해 나신을 면하며 ‘폭소의 향연’으로 변화시켰다.

지미 카멜의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발언은 96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명장면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 주연상과 조연상, 촬영상과 편집상에 음악상까지 7개의 트로피를 거머쥔 ‘오펜하이머’에 나오는 대사 “신은 주사위를 굴리지 않는다”는 말처럼 마치 모든 것이 필연인 것처럼 연쇄 반응을 일으켰다.

#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아슬아슬 발언을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센스

시작은 말했듯 사회자의 발언이었다. 지미 카멜은 본격적 시상에 앞서 언제나처럼 오프닝에서 자연스럽게 각 부문 후보작과 배우, 스태프 관련 내용을 담은 오프닝으로 시상식을 열었다. 뛰어난 입담의 코미디언 카멜의 농담은 이전에 세 번 진행을 맡았을 때보다 셌다. 특히 ‘오펜하이머’에서 모차르트처럼 특출난 천재인 오펜하이머와 대척점을 이루는 살리에르 격의 루이스 스트로스를 맡아 아이언맨 마스크에 일부 가려졌던, 깊이 있는 연기력을 마음껏 발산한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언급한 대목이 그랬다.

다우니가 손으로 코를 만지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자 카멜은 “코를 만지는 게 혹시 약을 했…”이라고 얘기하다 말끝을 얼버무렸다. 마치, 마약을 코로 흡입했던 때의 동작이냐고 묻는 듯한, 일찌감치 대중의 사랑을 받고 영화 ‘채플린’으로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줬던 명배우를 추락하게 했던 원인을 상기시키는 듯한 표현이었다. 보통은 이후 재활에 성공해 ‘아이언맨’으로 건재함을 알리다 못해 세계적 인기 스타로 격상하고, 심지어 이젠 단지 연기력만으로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배우에게 ‘흑역사’를 꺼내진 않는다.

미국식 유머, 연속 2년 아카데미의 부름을 받아 자신감 넘치는 지미 카멜의 선 넘을 뻔한 코미디를 명장면으로 탈바꿈시킨 건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였다. 다우니는 ‘약’이 언급될 때 웃지 않았으나 성내지도 않았다. 탐탁지 않지만, ‘뭐, 그래’ 있었던 일이고 내 과오다, 하고 인정하는 듯한 표정과 손짓을 취했다.

이 정도로 끝났으면 명장면 운운하지 못한다. 시상식 첫 번째 순서로 여우조연상이 영화 ‘버튼 아카데미’의 디바인 조이 랜돌프에게 눈물의 소감 속 돌아간 뒤. 여우조연상 때와 마찬가지로, 마치 ‘명예의 전당’을 눈앞에서 보듯 역대 남우조연상 수상 배우 5인 샘 록웰, 팀 로빈슨, 키호이 콴, 크리스토퍼 왈츠, 마허샬라 알리가 나와 5인의 후보를 소개하고 수상자를 발표하던 그때. 스털링 K. 브라운, 로버트 드 니로, 라이언 고슬링, 마크 러팔로와 함께 후보에 오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수장자로 호명된 후. 생애 첫 아카데미 수상의 주인공이 된 그가 내놓은 소감이 명장면을 만들었다.

“(‘오펜하이머’) 동료들에게 감사하고, 내 혹독했던 유년 시절과 아카데미에도 감사합니다. 보험금을 못 낼 때 내주어썬 멜 깁슨에게도 감사합니다. 아내 수잔 다우니에게도 감사합니다, (객석을 손으로 가리키며) 바로 저기 있습니다. 저를 발견해 주었고, 상처받은 강아지 같았던 저를 이렇게 키워줬습니다. 덕분에 여기 오늘의 제가 있습니다.”

“제 비밀을 하나 털어놓자면, 제가 이 역할을 필요로 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님이 그것을 알아봐 주셔서 감사하고, (함께 출연한 배우) 에밀리 (블런트), 킬리언 (머피) 모두 멋졌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홍보 담당자, 에이전트, 어머니, 스타일리스트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제 엔터테인먼트 변호사가 45년 커리어 중 절반을 저를 ‘구해내느라’ 썼는데, 정말 참 고맙습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수상을 예감하고 혹은 예감하지 못해도 예비로 소감을 마음속으로 준비할 때 ‘혹독했던 어린 시절에 감사’라는 내용이 있었을까.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하되 ‘상처받은 강아지’를 발견해 키워줬다는 표현이 있었을까, 담당 변호사가 경력의 절반을 ‘나를 구해내는 일’에 쓴 것에 대한 감사가 애초 포함돼 있었을까.

개인적 추측이지만, ‘객석을 비추는 카메라에 포착된 게 쑥스러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손이 ’코‘로 감 → 사회자 지미 카멜식 연상작용과 ’약‘ 발언 →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멋진 소감’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됐다.

모든 이와 많은 일에 감사를 표함과 동시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잘못된 선택을 했고 그것을 바로잡느라 고생했던 과거, 받았던 사랑보다 더 큰 힐난의 화살을 맞아 상처받았던 심경을 솔직히 드러내는 기회도 얻었다. ‘쉬쉬’하기보다 솔직한 인정과 반성, 감사를 표하다 보니 아픈 속내도 전할 수 있었다. 상처는 햇볕을 쬐어야 곪지 않는다.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첫 번째 오스카 트로피에 대해 국내 중계의 진행을 맡은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영화 ‘채플린’(1994), ‘트로픽 썬더’(2008)에 이어 세 번째 후보에 오른 것”이었다면서 “오히려 일찍 받았어야 마땅한, 깊은 연기력의 배우”라고 소개했다. “단순한 빌런이 아니라 인간적 매력으로 시작해 질투, 열등감, 권력에 대한 욕망을 탁월하게 연기했다”고 호평했다.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루이스 스트로스로 분한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한눈에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새로운 얼굴을 꺼내 진지한 연기를 펼쳤다. ⓒ유니버셜 픽쳐스 제공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루이스 스트로스로 분한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한눈에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새로운 얼굴을 꺼내 진지한 연기를 펼쳤다. ⓒ유니버셜 픽쳐스 제공

# 역대 수상자 5인이 5인 후보 소개·시상하는 주연상·조연상 압도적

아슬아슬한 발언을 아름답게 승화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소감을 시작으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아카데미 트로피를 받은 적 없는 게 ‘논란’이었던 과거를 지운 것 외에도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명장면이 많았다.

앞서 일부 언급했듯, 시상된 순서대로 하자면 여우조연상과 남우조연상,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 부문에서, 역대 수상자 5인이 나와 후보 5인을 소개하고 수상자를 발표하는 장면은 감동을 안겼다. 한 세기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시상식의 위엄을 백문이 불여일견 ‘압도적’으로 보여주었고, 수상자의 영광이 이번 한 해로 그치는 게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 역사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고 강력히 시사했다. 수상자 이상으로 시상자에게 존경을 표하는 풍경, 그 기립박수를 받는 시상자들에게 어리는 영예가 멋져 보였다.

# 장편 다큐멘터리상 감독 “영화는 기억을 만들고 기억은 역사를 만든다”

장편 다큐멘터리상에서는 숙연한 분위기가 드리웠다. ‘마리우풀에서의 20일’로 상을 받은 엠스티슬라브 체르노프, 미셸 미즈너, 레이니 아론슨 래스가 무대에 올랐다. 체르노프 감독은 “이 상의 후보 감독 중 처음 하는 말일 것이다”라는 말로 객석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영화를 기획하고 촬영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겁니다. 이 전쟁(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잃은 사람들의 목숨, 수용소에 갇힌 포로 병사와 우리 친구들과 이 상을 맞바꿀 수 있다면 바꾸고 싶습니다. 그러나 일어난 역사를 바꾸지 못합니다. 우리는 역사를 기록하고, 진실은 승리합니다. (객석의) 당신들은 특별히 재능을 지닌 분들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영화는 기억을 만들고 기억은 역사를 생성합니다. 우크라이나에 승리를!”

# 미야자키 하야오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상…아시아 애니메이션의 역사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로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이어 두 번째이고, 수상 자체가 아시아 감독으로 유일하다.

그리고 마지막 명장면은, 명장면이라는 표현이 어쩐지 죄송한 마음을 부르지만, 그 어떤 명장면보다 짧은 ‘찰나’였으나 한국인인 우리에게는 뜨겁게 뭉클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 있었다.

# ‘그리운 얼굴’ 이선균, 아카데미 추모 영상에 환한 미소로 등장 ‘울컥’

아카데미 시상식 측은 이번에 별도의 시상을 하지는 않지만 스턴트 배우들의 공을 기리는 특별영상, 지난 1년 동안 우리가 잃은 세계의 영화인들을 추모하는 특별영상을 제작해 공개했다. 두 번째 특별영상에서, 그립고도 그리운 미소가 가득한 이선균의 얼굴과 영문 이름이 등장했다. 설마, 하는 순간 등장한 반가운 모습에 울컥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더 많았지만, 오늘 소개한 다섯 명장면에는 공통점이 있다. 과거, 지나간 역사를 바꾸지는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할지의 중요한 결정에 대한 해답을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 내일은 바뀔 수 있고, 고쳐 쓰지 못하는 과거도 영광과 명예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그 시작에, 기록이 있어 졸필로나마 오늘의 명장면 일부를 적었다.

영화 ‘오펜하이머’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개 부문을 석권했다. 정점인 작품상에 호명된 뒤, 제작자이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아내인 엠마 토머스가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신선한 소재의 영화로 세계인을 놀라게 하는 놀란 감독은 생애 처음으로 오스카 트로피의 주인공이 됐다. ⓒ연합뉴스 제공
영화 ‘오펜하이머’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개 부문을 석권했다. 정점인 작품상에 호명된 뒤, 제작자이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아내인 엠마 토머스가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신선한 소재의 영화로 세계인을 놀라게 하는 놀란 감독은 생애 처음으로 오스카 트로피의 주인공이 됐다. ⓒ연합뉴스 제공

<다음은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결과>

작품상 ‘오펜아히어’

감독상 크리스토퍼 놀란 ‘오펜하이머’

남우주연상 킬리안 머피 ‘오펜하이머’

여우주연상 엠마 스톤 ‘가여운 것들’

여우조연상 디바인 조이 랜돌프 ‘바튼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오펜하이머’

각본상 쥐스틴 트리에·아더 하라리 ‘추락의 해부’

각색상 코드 제퍼슨 ‘아메리칸 픽션’

분장상 나디에 스테이시·마크 콜리어·조시 웨스턴 ‘가여운 것들’

미술상 제임스 프라이스·쇼나 히스·주저 미할렉 ‘가여운 것들’

의상상 홀리 와딩턴 ‘가여운 것들’

시각효과상 야마자키 타카시·시부야 키요코·타카하시 마사키·노지마 타쓰지 ‘고지라-1.0’

편집상 제니퍼 레임 ‘오펜하이머’

촬영상 호이트 반 호이테마 ‘오펜하이머’

음향상 탄 윌러스·조니 번 ‘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음악상 루드비히 고란손 ‘오펜하이머’

주제가상 바비 빌리 아일리시·피니어스 오코넬 “What Was I Made For?” ‘바비’

장편 애니메이션상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단편 애니메이션상 데이브 멀린스의 ‘워 이즈 오버’

장편 다큐멘터리상 엠스티슬라브 체르노프, 미셸 미즈너, 레이니 아론슨 래스의 ‘마리우풀에서의 20일’

단편 다큐멘터리상 벤 브라우드풋·크리스 바워스의 ‘라스트 리페어 샵’

국제장편영화상 조나단 글레이저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

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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