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건·이장우·한예슬 등이 솔직하게 밝힌 연기 공백의 이유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작품을 너무 하고 싶은데 섭외가 없다”, “캐스팅이 안 된다”, “1년에 대본 2권 받아본다”
무명 배우들의 신세 한탄이 아니라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법한 유명 배우들이 직접 말한 요즘 드라마 시장의 현실이다.
1일 방송가에 따르면 방송사와 토종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Over the Top) 플랫폼이 드라마를 줄이면서 배우들도 녹록지 않은 현실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배우 이동건은 최근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김지석의 유튜브 ‘김지석 [내 안의 보석]’에 출연해 “요즘 드라마 제작 편수가 어마어마하게 줄어서 나도 진짜 힘들더라”고 밝혔다.
그는 “전에는 차기작을 고민할 때 두세권 정도를 놓고 작품을 고를 수 있었는데, 요즘은 1년에 대본이 총 두 권 정도 들어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그래도 예능 ‘미운우리새끼’를 통해 계속 시청자에게 보여지고 있어서 그나마 마음이 편한데, 만약 이게 아니었다면 ‘과연 배우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건가?’ 싶어서 쫄렸을 것 같다”고 고백했다.
1998년 가수로 데뷔한 이동건은 드라마 ‘세 친구’, ‘파리의 연인’,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등을 흥행시킨 주연급 배우다. 2008년 MBC 연기대상 우수상, 2016년, 2017년 KBS 연예대상 우수연기상을 받았을 만큼 연기력도 안정적이다.
요즘 고민이 많다는 그는 “원하는 작품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싶은데,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는 타협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장우도 유튜브를 통해 비슷한 고민을 전했다.
드라마 ‘오자룡이 간다’, ‘하나뿐인 내편’, ‘오! 삼광빌라!’ 등 주말극에 출연하며 ‘주말극의 왕자’로 불리던 이장우는 요즘 본업보다 예능에서의 활약이 더 돋보이는 배우다. 최근에는 본인의 이름을 건 식당을 오픈하기도 했다.
유튜브 채널 ‘장금이장우’를 운영 중인 그는 ‘이장우가 먹는 거에 올인하는 이유’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악플을 읽으며 배우로서 연기 공백기가 길어지는 이유에 대해 직접 설명했다.
그는 “드라마 판이 개판”이라고 꼬집으며 “너무 힘들다. 요즘은 카메라 감독님들도 다 놀고 계신다”고 말했다.
이어 “(방송가) 황금기에 있던 자본은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진짜 슬프다. 제가 한때는 MBC, KBS ‘주말의 아들’이었는데, 요즘은 주말 드라마들도 시청률이 너무 안 나온다”고 짚었다.
실제로 올해 방송 편성표를 살펴보면 드라마 감소 추세는 뚜렷하게 드러난다.
SBS는 평일 드라마가 한 편도 없다. ‘국민사형투표’ 이후 후속 수목드라마를 아직 편성하지 않았고, 월화드라마 역시 작년 5월 종영한 ‘꽃선비 열애사’ 이후로 맥이 끊겼다.
MBC도 마찬가지다. 월화드라마는 진작 없어졌고, 수목드라마 역시 2021년부터 편성이 뜸해졌다. 주 1회 수요일 방송하던 ‘오늘도 사랑스럽개’가 연초 종영한 뒤로는 후속 작품을 편성하지 않았다.
많은 인기작을 쏟아냈던 tvN은 꾸준히 드라마를 편성해온 수목 저녁 시간대에 작년 5월 ‘스틸러: 일곱 개의 조선통보’가 종영한 것을 끝으로 더는 새 드라마를 내놓지 않고 있고, 종편 중 가장 많은 드라마를 방송해온 JTBC도 3개월 공백기 끝에 새로운 수목드라마를 편성했다.
배우 오윤아는 지난 23일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작품을 해야 하는데 (출연할) 작품이 없다. 요즘은 드라마 편성 수가 반으로 줄어서 이미 찍어놓은 드라마도 편성을 못 잡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디즈니+ ‘형사록’ 시즌2, ‘최악의 악’, 드라마 ‘연인’, ‘7인의 탈출’ 등에 출연했던 다작 배우 지승현도 비슷한 말을 했다. KBS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 방송 중 진행했던 인터뷰에서 그는 차기작을 묻는 말에 “올해 드라마가 없다. 제작을 많이 못 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급격한 출연료와 제작비 상승, 광고 시장의 침체가 맞물린 상황에서 올해는 작년보다 드라마가 더 줄어들 것으로 우려된다.
제작사들은 드라마를 납품할 플랫폼이 미리 정해지지 않으면 사전제작을 하지 않으려 잔뜩 웅크린 상황이고, 캐스팅 단계에서 알려져 관심을 모았던 작품들의 제작 무산 소식도 심심찮게 전해진다.
배우 한예슬도 4년 만에 드라마 ‘서울에 여왕이 산다'(가제)로 안방극장에 복귀할 예정이었으나, 제작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예슬은 최근 개인 유튜브를 통해 “드라마나 영화가 너무 하고 싶은데 요새 작품이 너무 없다”며 “‘환상의 커플’ 속 이미지는 그만 묻어두고 연기자로서 이제 새로운 모습으로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작품을 수도 없이 쏟아내던 방송사들이 드라마 편성을 줄이고, 활발하게 활동하던 배우들이 기근에 시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제작비를 원인으로 꼽는다.
넷플릭스와 디즈니+ 등 글로벌 OTT가 한국 드라마 시장에 뛰어들면서 특정 인기 배우들의 몸값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올랐고, 그 결과 캐스팅 과정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우 김지훈은 최근 유튜브 채널 ‘스튜디오 수제’ 속 아나운서 장성규가 진행하는 웹예능 ‘아침먹고 가’에 출연해 본인이 체감하는 배우들의 출연료 차이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한 바 있다.
그는 “OTT는 제작비가 거의 무한정이라고 봐도 되니까 수요가 많은 ‘슈퍼스타’급 배우들에게는 원하는 만큼 줄 수 있고, 나 같은 배우들은”이라며 뒷말을 흐렸다.
배대식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사무총장은 “배우들뿐 아니라 제작사, 방송사, OTT 등 업계 관계자 모두가 드라마 산업이 위축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해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장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cou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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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보이장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