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줄거리
‘황제’와 하코넨 가문의 모략으로 인해 멸문한 아트레이데스 가문. 하지만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 ‘폴'(티모시 샬라메)은 반란군 프레멘의 도움을 받아 어머니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퍼거슨)와 사막으로 피신하는 데 성공한다. ‘챠니'(젠데이아)에게서 프레멘의 생존 방식을 배운 폴은 프레멘 전사인 페다이킨이 되어 ‘폴 무앗딥’이라는 새 이름을 얻는다. 그 이후, 그는 하코넨 가문에 대항할 테러 작전을 이끌어 나간다.
그런 폴을 보면서 프레멘은 그가 그들이 기다려 온 외부 세계의 구세주, ‘리산 알 가입’이라고 믿기 시작한다. 비극적인 미래를 예견한 폴은 프레멘의 기대를 저버리려 하지만, 전황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황제와 하코넨 가문이 잔혹한 암살자 ‘페이드 로타'(오스틴 버틀러)를 보내 프레멘에게 잔혹한 반격을 가했기 때문. 이에 폴은 끝이 정해진 운명을 따를지, 새로운 길을 개척할지 기로에 선다.
<듄>을 지탱하는 두 축
소설의 영상화는 항상 두 가지 난관에 부닥친다. 제작자는 소설 속 세계를 어떻게 보여줄지 머리를 싸맨다. 독자의 상상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압도하는 광경을 보여줘야 하니까. 각색도 고민거리다. 주인공의 서사와 변화를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분량이 한정된 가운데 원작의 여러 장점 중 몇 가지에만 주목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이 그 예시다.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호빗> 트릴로지는 중간계를 스크린으로 옮겼다는 극찬을 받았다. 반면에 아마존 프라임 시리즈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는 같은 시기에 방영한 <하우스 오브 더 드래곤>에 밀려 조용히 잊혔다. 시각효과는 환상적이었지만, 갈라드리엘을 비롯한 주요 인물의 서사가 원작으로부터 동떨어져있다는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듄>(2021)은 호사를 누렸다. 할리우드 대표 비주얼리스트 드니 빌뇌브가 사막으로 가득한 아카리스 행성의 온도, 습도, 채도까지 재현해 냈다. 원작 팬답게 핵심만 뽑아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데도 성공했다. ‘구원자가 되는 운명을 의심하고 경계하나 결국 몰락할 영웅 서사’의 기반을 착실히 닦았다. 그 덕분에 팬데믹 중에 개봉한 <듄>은 극찬 속에 월드와이드 4억 달러가 넘는 흥행을 기록했다.
<듄: 파트 2>(이하 <듄 2>)도 마찬가지다. 외려 형보다 나은 아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볼거리는 더 화려해졌고, 폴의 이야기는 심오해졌다. 단, 의외의 문제도 있다. 확신 가득한 빌뇌브의 영상과 의심 가득한 폴의 서사가 간간히 충돌하기 때문.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불협화음은 도리어 다음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끌어올리고, 그렇게 <듄 2>는 막을 내린다.
절대 눈길을 뗄 수 없도록
<컨택트>와 <블레이드 러너 2049>로 비주얼을 인정받은 드니 빌뇌브. <듄 2>에서도 그의 솜씨는 유감없이 발휘됐다. 일례로 빌뇌브는 위성사진처럼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구도를 애용하는데, 이번에도 같은 구도를 적극 활용해 전투씬처럼 인원이 많은 장면에서 스케일을 강조하고, 웅장함을 살려냈다. 한스 짐머의 서정적이고 장엄한 OST가 고막을 울리는 가운데, 아이맥스 스크린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의도가 돋보이는 순간이다.
대상의 크기를 비교해 위압감을 극대화하는 구도도 인상적이다. 페다이킨의 스파이스 채취 기계 기습, 황제 군대와 폴 군대의 전면전, 황제의 아카리스 행성 도착 장면이 대표적이다. 앞에 서 있는 군인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큰 하베스터, 모래벌레, 황제의 우주선은 스크린을 가득 메운다. 여기에 템포를 한 두 박자 쉬고 상황이 전개되는 연출이 더해지면 순간 숨이 멎을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느낄 수 있다.
방대한 이야기를 압축해 제시하려는 노력도 독특하다. 일례로 페이드 로타는 ‘검은 해’가 뜬 검투장에서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생존자들과 싸운다. 흑백 화면 속에서 펼쳐지는 싸움은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하코넨 가문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환기한다. 정의와 신뢰를 중시하며 백성을 아끼는 전자와 달리, 후자는 돈과 폭력으로 충성을 강제한다. 특히 후자의 잔인함과 야만이 흑백 화면 덕분에 더 날 것처럼 느껴진다.
클로즈업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듄 2>는 할 말이 많다. 예언을 둘러싼 폴, 챠니, 레이디 제시카의 삼각관계를 풀어내야 한다. 황제와 하코넨 가문의 대립과 베네 게세리트의 계략, 마지막으로는 폴과 황제의 전쟁도 보여줘야 한다. 이에 영화는 배우들의 얼굴을 자주 클로즈업하며 이야기의 흐름을 암시한다. 그 덕분에 주인공들의 표정 및 목소리 톤 변화만으로도 <듄 2>는 로맨스, 정치극, SF, 에픽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다.
도화선에 불 붙이는 액션
<듄 2>의 러닝타임은 전편보다도 10분가량 더 긴 166분이다. 그런데 체감 길이는 전편보다 짧다. 템포가 느리고 진중한 분위기가 돋보인 전편과 달리, 대중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기 때문. 전편이 세계관과 설정을 설명하며 판을 깔아준 덕분에 <듄 2>는 거침없이 내달릴 수 있는 듯하다. 전편이 기승전결 중 ‘기승’을 맡았다면, <듄 2>는 ‘전결’만 맡은 형국이다.
차이는 액션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상대적으로 정적이었던 전편에 비해 <듄 2>는 곳곳에 액션씬을 배치해 템포를 계속해서 끌어올린다. 당장 폴 일행과 하코넨 군인 간의 추격전이 시작부터 등장한다. 이 도입부는 빌뇌브의 전작인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에서 CIA가 밀수 땅굴을 이용해 멕시코 마약 카르텔을 제압하는 액션씬을 연상시킨다. 팽팽한 긴장감을 자랑하며 관객을 곧장 아카리스 행성으로 초대한다.
그 이후에 영화는 폴의 페다이킨 수련 과정, 프레멘의 테러 공격, 하코넨의 보복 작전을 연달아 보여주며 장작을 착실히 쌓아 올린다. 뒤이어 폴의 군대가 황제군을 급습할 때 장작에는 마침내 불이 붙는다. 폴과 그의 추종자들은 모래벌레를 타고, 또 모래 폭풍을 뚫고 돌격한다. 이 클라이맥스는 <반지의 제왕>이나 <스타워즈> 시리즈의 전투씬에도 밀리지 않는 스케일과 박력을 자랑한다.
이때도 스펙터클에 주도권을 내주지 않고, 관객을 감질나게 하는 빌뇌브의 연출법은 유효하다. 일례로 전투 시퀀스는 의외로 짧다. 부대 차원의 전략적 움직임과 각 주인공의 활약상을 보여준 후 곧장 드라마 파트로 되돌아간다. 전투의 거대한 규모와 세밀한 묘사를 고려하면 분명 아쉬움이 남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순간의 임팩트는 극대화된다.
의심하는 영웅, 폴 아트레이데스
화려한 볼거리를 토대로 <듄 2>는 전편이 암시한 폴의 서사도 한층 구체화한다. 폴 아트레이데스는 신화적인 영웅상을 답습한 캐릭터다. 그에게서는 여러 영웅의 모습이 보인다. 예언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지만 결국 자기 손으로 예언을 실현하고, 비극을 맛본다는 모티브는 오이디푸스와의 공통점이다.
뛰어난 영웅과 초인의 폐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다윗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억압받는 민족을 구해낸 후 왕좌에 앉은 메시아. 그는 주변 종족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왕국의 위세를 드높인다. 하지만 영광은 잠시 뿐. 구세주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추종자, 왕국마저 고통에 빠트리고 만다.
핵심은 그가 실패하고 몰락할 운명을 타고났다는 점이다. <듄>의 분위기가 일반적인 판타지, SF 작품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블록버스터 영화는 예언 속 영웅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공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영웅의 인간적인 결점을 부각해도 이들의 활약상은 끝내 대체적으로 평화롭고 밝은 장조 화음으로 귀결된다. 반면에 예언과 초인을 경계하는 <듄>은 음울한 단조 화음과도 같다.
<듄 2>에서는 이 단조 화음이 더 또렷하고, 풍성해진다. 폴이 프레멘의 구세주로 거듭나는 순간만 봐도 그렇다. ‘생명의 물’을 마시고 ‘퀴사츠 해더락’으로 각성한 폴에게서는 음습한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온다. 북부와 남부의 모든 프레멘을 휘어잡는 연설도 전율이 일지만, 불편하다. 개인의 복수와 공동체의 생존 사이에서 선틀 타며 숱한 죽음을 유발하는 독재자 같기 때문. 자연히 그의 승전도 마냥 즐겁지는 않다.
확신과 의심의 부조화
이처럼 <듄 2>는 영상화에서 가장 중요한 두 톱니바퀴를 멋지게 구현해 냈다. 빌뇌브는 확신 가득한 붓칠로 머릿속 상상을 스크린 위에 펼쳐 놓았다. 메시아가 될 운명과 미래 때문에 불안해하는 폴의 이야기도 더 명확해졌다. 그런데 이 두 축은 빌뇌브 특유의 스토리텔링 때문에 예기치 못한 지점에서 어긋나기 시작한다.
빌뇌브는 주제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등장인물을 크게 두 분류로 나누는 경우가 잦다. <듄 2>에서는 챠니를 모든 인물의 반대편에 위치시킨다. 챠니는 구세주가 아닌 인간 폴을 사랑하고 또 상징한다. 그래서 그녀는 종교적 광기를 퍼뜨리는 레이디 제시카와 폴의 추종자가 된 프레멘에게 유일하게 맞설 수 있다. 달리 말해 챠니의 관점에서 폴의 여정을 따라갈 때, 관객은 단순한 영웅이 아닌 폴의 고통과 선택을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그 대신 챠니는 필연적으로 이질적일 수밖에 없다. 폴이 구세주로서 아버지의 복수를 완수하는 순간이 클라이맥스이기에 이질감은 더 짙다. 관객을 압도하는 연출과 시각효과도 챠니의 우려와 실망에 동조하기 힘든 분위기를 강화한다. 폴의 서사가 강조되고, 빌뇌브가 구현한 비주얼이 생생해질수록 챠니의 위치와 역할은 역으로 모호해지는 셈이다. 폴과 페이드 로타의 최종 결전에서도 그녀 때문에 분위기가 일순간 깨지기도 한다.
문제는 <듄 2>를 한 편의 독립적인 영화로 볼 때, 이 균열이 미처 가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폴과 챠니의 로맨스를 부각해 가교를 만들려는 노력도 충분치 않다. 이들의 로맨스가 그저 원작 내용과 전개를 따라가기에 급급한 인상이 짙기 때문. 다른 플롯에 밀려서인지는 몰라도, 운명 외에 둘이 사랑에 빠지는 계기나 과정은 다소 간략하게 제시될 뿐이다. 배우 개인의 역량도 이 난점을 극복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아직 정점은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듄 2>의 부조화는 다음 이야기를 더 기대하는 원동력이 된다. 독립 작품의 관점에서는 완성도 문제이지만, 시리즈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장점이기 때문. 소설에서 폴은 황제 자리에서 쫓겨나 추방자가 된다. 이 전개를 따를 경우 <듄 2>의 미묘한 균열은 그 자체로 메시아의 패망을 암시하는 강력한 복선이다. 폴이 아니라 챠니가 엔딩을 장식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처럼 <듄: 파트 2>는 속편이자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을 완벽에 가깝게 이행한다. 아카리스 행성의 사막 속으로 관객을 빠트리고, 메시아의 탄생을 목도하는 경외심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그의 몰락마저 기대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으니까. 운명을 피하려고 애쓰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는 폴 아트레이데스의 세 번째 서사시가 언제쯤 찾아올지 궁금할 따름이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빌뇌브 표 묵시록의 변곡점. 정점 일보 앞에서 멈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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