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이영자가 그룹 르세라핌 멤버들에게 허리 사이즈에 대한 질문을 던진 후폭풍이 거세다. 허리 사이즈를 묻는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과, 자연스런 관심에 따른 질문이었을 뿐이라는 반론이 뒤섞이며 논란이 커진 모양새다. 아이돌에게 체중감량·성형 강요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던 만큼 여론이 예민해져 있던 영향이 컸다.
지난 24일 방송된 MBC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에는 르세라핌 김채원, 사쿠라가 출연했다. 이날 이영자는 김채원과 사쿠라에게 “혹시 허리 사이즈가 몇이냐?”라고 질문했다. 질문을 들은 사쿠라는 “최근에 쟀는데 17인치”라고 밝혔고, 김채원은 역시 “17인치”라고 답했다. 이어 “밥을 안 먹고 재서 얇게 나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발언을 놓고 일각선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인기 그룹인 르세라핌은 청소년을 포함한 젊은 세대들의 ‘워너비’가 될 수 있다. 이들의 허리사이즈를 질문하고 이에 놀라워하는 자체가 ‘선망의 대상’으로 그들을 인식하게끔 한다는 지적이다. ‘가는 허리’ 자체가 신기한 대상이 되고, ‘잘 관리된’ 아이돌의 표상인 것처럼 비쳐질 수 있다는 데서 일부 일리가 있는 지적으로 보인다.
실제 방송이 끝난 이후 나온 의견들도 맥락을 같이했다. 누리꾼들은 “진짜 말랐다” “아이 몸이다” “부럽다”라고 반응했다. 일각에서는 “시대착오적 질문이다” “왜 여자아이들에게 허리 사이즈를 묻냐” “청소년들에게 좋지 않은 정보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같은 지적이 과도하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이영자는 평소 몸매와 상관없이 자신만의 당당함을 무기로 방송활동을 이어왔다. 그에겐 자신과 대비되는 ‘깡마른’ 르세라핌이 단순히 신기했을 수 있다. 이를 놓고 아이돌의 체중감량 문제로 결부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는 게 반론의 주요 근거다.
이영자의 단순 질문이 이 같은 논란을 일으킨 원인은 무엇일까. 아이돌의 체중 감량 강요 문제가 반복적으로 논란이 되면서 대중적 예민도가 높아진 탓이다. 실제로 사과 1개, 메추리알 4알 등으로 끼니를 때우는 ‘극한 다이어트 방법’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연습생 시절부터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되고, 데뷔 이후에도 건강 문제로 활동을 중단하거나 컨디션 난조로 공연 도중 쓰러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걸그룹 AOA의 설현은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제 키가 167cm인데 소속사가 정해준 몸무게는 48kg이었다”며 “내가 너무 잘 먹어서, 다이어트가 너무 힘들어 연예인을 그만둘까 고민까지 했다”고 털어놓았다. AOA의 임도화도 최근 “엄청나게 굶었다”며 “그땐 사과를 4등분 해서 하루에 한쪽만 먹는 거다. 아니면 계란 두 개를 삶아서 먹고, 탄산수를 계속 마셨다. 배고프니까”라고 털어놨다.
대중들의 예민도가 높아진 것은 다른 사례로도 확인 가능하다. 김숙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으로 뭇매를 맞기도 했다. 당시 영상에 출연했던 박소현과 산다라박에게 신체 사이즈에 빗대어 ’44좌’, ’66좌’로 표현했다. 이후 유튜브 영상 댓글 및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해당 영상이 정상 체형인 김숙의 옷 사이즈를 비정상처럼 표현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소식을 미화했다는 비판도 일었다.
이 같은 이슈에 대한 사회적인 움직임도 있었다. 서울시는 아이돌 업계의 지나친 경쟁, 일률적인 미의 기준 및 ‘성 상품화’ 등을 방지하기 위해 관련 조례를 통과시켰다. 최근 서울시와 서울시의회 등에 따르면 김규남 시의원(국민의힘·송파1)이 대표 발의한 서울특별시 청소년 문화예술인의 권익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가 지난해 12월 정례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해당 조례에는 체중감량·성형 강요 등 청소년 연습생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훼손을 방지한다는 취지가 담겼다.
이영자와 ‘전참시’ 출연자들이 르세라핌의 허리 사이즈를 놓고 놀라워 한 것은 대중의 일반적 반응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만큼 그들의 ‘마름’이 신기한 대상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르세라핌이 마름을 강요받았거나 ‘마름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는 그 어떤 증거도 없다. ’17인치 허리’로 대변하는 그들의 마른 몸도 그들의 자연스런 모습 중 하나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은 그들의 허리 사이즈가 아닌 아이돌의 음악과 그들의 진정성을 사랑한다.
윤준호 텐아시아 기자 delo410@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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