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필요’ 베를린영화제 기자회견
이자벨 위페르 “현재와 인간의 상태 포착”
(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홍상수 감독은 19일(현지시간) “영화를 계획적으로 만들기보다는 내게 주어진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제74회 베를린영화제를 찾은 홍 감독은 이날 독일 베를린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신작 ‘여행자의 필요‘에 독백 기법을 쓰지 않은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홍 감독은 “꼭 어떻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관객을 생각하고 찍는 것도 아니다”며 “딱히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영화를 만드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믿는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작품 속 등장인물의 대사나 독백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연출 방식을 즐겨 써왔다.
그는 ‘연출 방식이 전혀 한국적이지 않다. 외국인의 시선이냐’라는 질문에도 “과거에는 이유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려 했지만, 지금은 딱히 그렇다고 할 수 없다”며 “내 안에 있는 것들이 하루하루 표현된다. 캐릭터는 그 과정에서 그렇게 된 것 같다”고 답했다.
나이 많은 여배우의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작품에 담은 이유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다. 그 감정이 나한테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무책임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도 내가 뭘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답변에는 폭소가 터졌다.
홍 감독의 31번째 장편 ‘여행자의 필요’는 프랑스에서 한국에 왔다는 이리스(이자벨 위페르 분)가 한국인들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막걸리를 마시며 생활하는 이야기다.
프랑스 배우 위페르가 ‘다른나라에서'(2012), ‘클레어의 카메라'(2018)에 이어 세 번째로 홍 감독과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위페르는 “홍 감독이 작업하는 방식은 매우 독특하고 경험을 되풀이하는 데 열정적”이라며 “사실대로 말하면 이야기 안에서 역할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이야기와 세계에 투영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런 점이 정말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는 “세상에는 스토리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현재의 순간과 특정한 세계에 직면한 인간의 상태를 포착하는 방식이 있다”며 “이런 관점에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위페르에 대해 “용감하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서 예술가로서 그를 믿는다. 이자벨과 작업 자체가 행복하다”고 말했다.
올해 64세인 홍 감독은 영화 속 이리스가 소주 아닌 막걸리를 마시는 이유에 대해 “내가 이제 나이가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소주를 마실 수 없다”고 답했다.
홍 감독의 연인이자 제작실장으로 영화에 참여한 김민희는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않았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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