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무속·장례 전통에 역사 요소 가미…예매 첫날 270여석 매진
(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상덕(최민식 분)은 흙의 맛과 향으로 토질을 가늠하는 풍수사다. 대통령 시신을 염하는 베테랑 장의사 영근(유해진)과 동업한다.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이 상덕에게 사건을 들고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장재현 감독의 세 번째 장편 ‘파묘’가 16일 밤(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영화제에서 관객에게 첫선을 보였다. 서양 관객들은 풍수지리와 무속, 동아시아 장례 전통을 전면에 내세운 이 영화를 134분 내내 숨죽이며 지켜봤다. 베를린동물원 근처 상영관의 270여석은 예매 첫날 매진됐다.
화림은 상덕을 찾아가기에 앞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갑부 집안으로부터 사건을 의뢰받았다. 가족은 기이한 병을 대물림하고 있었다. 화림은 한국에 있는 묫자리가 문제의 원인임을 직감하고 이장 전문가인 상덕과 영근에게 동업을 제안한다. 문제의 묫자리에서 흙을 입에 넣어본 상덕은 ‘악지(惡地) 중의 악지’라는 판단을 내린다.
부주의나 무지로 묫자리를 잘못 쓴 것은 아니었다. 과거 누군가의 고의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흔적과 심증이 잇따라 나오면서 풍수사와 장의사·무당들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영화는 호러보다 미스터리 추리물에 가깝다. 네 명의 전문가가 문제 해결에 머리를 맞대면서 떼도둑이 등장하는 케이퍼 무비의 느낌도 난다. 장 감독은 “호러 요소가 담긴 미스터리 버디 무비”라고 했다.
네 명의 전문가 가운데 가장 논리적이면서 망자에 대한 예의도 갖춘 상덕이 이야기를 주로 이끈다. 최민식은 ‘올드보이'(2003)의 오대수로 아직도 외국 관객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유해진의 감초 연기는 다른 작품들보다 많지 않았지만 서양 관객들도 제때 반응했다. 여러 차례 굿 연기를 선보인 김고은은 여우와 뱀 등 각종 동물과 함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관객들은 서양 귀신과는 또다른 초자연적 존재에 호기심을 보였다. 베를린영화제 포럼 부문 프로그래머 파비안 티트케는 “육체적인 면과 영적인 면을 동시에 살린 점이 이 영화를 초청한 이유”라고 소개했다.
상영이 끝난 뒤 한 관객은 “영적이고 종교적인 내용을 다루는 한국영화를 자주 본다”며 “혹시 영감을 받은 서양 영화가 있느냐”고 물었다. 장 감독은 “어릴 때 ‘미이라’를 보면서 느낀 호기심과 오싹함이 영향을 미쳤다”며 “시간이 된다면 명상이라든가 동양 사상을 알아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답했다.
사건이 비롯되는 매장 시점이 20세기 초반인 만큼 영화에는 역사 코드가 가미돼 있다. 그러나 한국 근현대사가 영화를 읽는 데 장애물이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알제리의 다큐멘터리 제작자 엘케이에르 지다니는 “사실이 아닌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역사가 있고 나도 그런 소재로 작품을 만들고 있어서 공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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