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걸그룹 (여자)아이들이 정규 2집으로 복귀했다. 이들의 복귀가 각별한 주목을 받는 것은 이들의 케이팝 내 위상이 매우 특별하기 때문이다. 리더인 전소연이 총괄 프로듀서를 맡는 등 자신들의 노래와 전체적인 방향성을 스스로 결정한다. 타이틀곡은 대부분 전소연이 만들고, 그밖에 민니와 우기도 곡 작업에 가세한다.
이렇게 스스로 곡을 만들고 총괄 프로듀싱까지 하면서 상업적 성공까지 이뤄낸 케이팝 걸그룹은 (여자)아이들이 유일하다. 그래서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물론 더 상업적으로 성공한 그룹들이 있지만 자신의 음악과 방향성을 스스로 결정하는 아티스트의 관점에선 그렇다는 이야기다.
특히 남성에 비해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좁은 편이기 때문에 (여자)아이들의 존재가 더욱 빛난다. 이들이 케이팝의 지평을 대폭 넓혀주고 있는 것이다. 서구권에선 아티스트의 진정성을 중시하는데 (여자)아이들의 음악은 그들이 직접 만들기 때문에 진정성 그 자체다.
사실 아이돌에게 음악 작업을 스스로 하라고 요구하는 건 무리다. 케이팝 스타급 아이돌의 일정은 살인적이라고 널리 알려졌다. 그런 일정을 소화하면서 언제 음악 작업을 한단 말인가? 케이팝 아이돌은 세계적인 퍼포먼스 전문가들이다. 그런 퍼포먼스 전문가가 음악 작업이라는 부담까지 짊어질 필요가 없다. 노래 만드는 건 그쪽 전문가들이 해도 된다.
이런 식으로 활동해도 문제는 없는데,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대단히 특별한 존재가 기적적으로 나타나서 아이돌 활동도 하면서 음악 작업까지 잘 수행해낸다면 그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걸그룹계에서 그 금상첨화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는 경이적인 팀이 바로 (여자)아이들이다.
이들은 공백기를 이겨내고 2022년에 ‘톰보이’이라는 기념비적인 히트곡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걸그룹과 거친 전기기타 록사운드는 서로 맞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지만 이들이 그걸 깼다. 전소연의 작품이었다. 이 노래에서 이들은 자신들이 톰보이라고 규정하며, 톰보이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여자)아이들 자기 자신이라고 했다.(팀 이름에 (여자)가 들어간 건 소속사의 아이디어다. 전소연은 ‘아이(I=주체)들’이라고만 했다)
그러한 자기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누드’로 표현했고, ‘Allergy’에서 외모 콤플렉스에 빠진 주인공이, ‘퀸카’에서 자신감의 의미를 깨달아, 이번 앨범 타이틀곡인 ‘Super Lady’(슈퍼 레이디)를 통해 마침내 슈퍼 레이디로 각성한 것 같은 느낌이다.
‘슈퍼 레이디’는 대중성이 아주 크지는 않지만 충분히 강렬하다. 요즘은 보는 음악의 시대라서 뮤직비디오도 중요한데 이 곡의 뮤직비디오는 대단히 놀라운 수준으로 만들어졌다. 절로 경탄이 나올 정도로 시청각을 압도한다. 이 노래의 록 편곡 버전을 별도로 발표해도 좋을 것 같다.
이번 앨범의 선공개곡인 ‘와이프’는 선정성 논란에 휩싸이면서 국내에서 질타를 받았다. ‘우렁각시처럼 가사일을 하고 요부처럼 성적 만족도 주는 그런 와이프는 안 할 거야’, 또는 ‘너와 성관계 등 많은 걸 할 수 있지만 니 와이프는 안 될 거야’ 이런 정도 의미로 해석되는 노래다. 그런 속에서 어느 정도는 성적 욕망이 표현된 듯한 느낌도 있다.
이미 ‘톰보이’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톰보이라고 선언한 터다. 성적인 부분도 당연히 포함되는 것이고, 또 한국의 여성에게 성적인 억압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발로 성적인 표현이 들어갔을 수 있다. 그러면서 가장 큰 주제는 전통적인 아내상에 대한 풍자인 것으로 보인다. 상업적 고려도 있었을 것이다.
가사만으로 이 곡이 매도되는데 가사가 음악의 모든 것이 아니다. 멜로디, 리듬, 또 보는 음악의 시대이니 뮤직비디오와 퍼포먼스 등도 모두 중요하다. 이런 부분들을 종합적으로 봤을 때 ‘와이프’는 걸작이다. 뮤직비디오를 통해 성적인 표현도 많이 상쇄된다.
이에 대해 KBS에서 방송불가 판정을 내렸다. KBS가 할 일을 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19금 판정 같은 심의로 대처하면 되는 것이지, 인터넷상에서 (여자)아이들 자체에 대해 비난이 쏟아진 건 너무했다. 이 팀은 ‘톰보이’ 이후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팝스타이기 때문에 표현이 훨씬 자유로운 서구팝의 현황도 고려해야 한다.
이 팀이 한국의 일반적인 걸그룹과는 또 다른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제는 우리나라가 이 정도 도발적인 팝스타도 포용할 수준이 되지 않았을까?
톰보이라면서 실제로 내보이는 모습은 결국 아이돌의 예쁜 여자 스타일 아니냐는 비판도 있는데, 이들의 정체성은 원래 아이돌이다. 성공적인 케이팝 아이돌인데 그 영역을 뛰어넘는 음악역량과 메시지까지 동시에 성취해내니 그게 놀라운 것이다. 이들은 메시지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수준의 메시지와 상업적인 아이돌 스타일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대단한 성취를 이뤄왔다.
메시지를 따지기 이전에 노래 자체가 일단 좋다. ‘톰보이’ 신드롬 이래로 ‘말리지마’, ‘Allergy’, ‘Change’, ‘I DO’, ‘I Want that’ 등 명곡 행진을 이어왔고 이번 ‘와이프’, ‘슈퍼 레이디’에까지 이어졌다. 다음 방향성이 가장 궁금한 아티스트 중의 한 팀이다. 이번에 ‘슈퍼 레이디’ 선언까지 마쳤으니, 다음엔 대중성을 높여서 보다 쉬운 방향으로 가는 것도 방법일 듯하다. 방탄소년단도 ‘다이너마이트’부터 가벼운 팝으로 가서 대성공을 거뒀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여자)아이들만의 강렬한 사운드가 기대되기도 한다. 결국 팀이 스스로 결정할 일이다. 뭐가 나오건 이들로 인해 케이팝은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바라는 게 있다면 부디 ‘슈퍼 레이디’ 록 버전만은 내주길…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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