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손흥민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카타르 아시안컵 4강 탈락이 확정되던 순간 그라운드에서 덩그러니 서서 바닥만을 멍하니 바라보다 탈골된 손가락을 친친 동여맨 테이프를 벗겨내던 손흥민의 얼굴엔 복잡한 감정이 가득했다. 애써 울음을 참는 듯 얼굴이 씰룩였다.
경기 후 믹스드존 인터뷰에서 국가대표팀 은퇴를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가 하면 무언가에라도 쫓기듯 2시간 만에 카타르 공항을 통해 런던행 비행기를 타러가는 순간엔 고개를 푹 숙인채 한손으로 눈가를 가리고 있었다.
토트넘으로 돌아간지 1주일 가까이 흘렀다. 그 사이 영국매체 더선에 의해 요르단전 전날 대표팀 내부 분열상이 터졌고, 국내 매체와 축구협회가 ‘핑퐁’을 하듯 주고받으며 그날 저녁 상황이 속속 드러나며 전국민이 경악했다.
‘하극상’ ‘몸싸움’ ‘주먹질’ ‘내분’ ‘보이콧’ 등 자극적인 단어들이 난무했다. 외신까지 일명 ‘탁구게이트’를 보도하며 한국 축구대표팀의 혼란상이 전세계에 까발려졌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클린스만 감독, 반대에도 문제의 인물을 기용해 이 사단을 만든 정몽규 축구협회 회장, 선수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사태 확산을 부채질한 축구협회…총체적 난국이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어도 9살 차이 나는 대선배 면전에서 반기를 들고 주먹까지 치켜들었다는 내용은 국민적 정서에 생채기를 냈다.
더욱이 12년간 국가대표로 차출돼 수고와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국민적 영웅이자 축구 레전드를 향한 행동이기에 한순간에 자부심을 훼손당한 느낌이라 여기저기서 분노의 목소리가 솟구치는 게 아닐까. 단순한 ‘마녀사냥’으로 치부하기엔 목소리 기저에 ‘맴찢’과 허탈함이 넘실댄다.
그간의 숱한 인터뷰에서 손흥민은 ‘막내’ 이강인을 걱정하고 아끼는 진심을 많이도 보여줬다. 과거 김민재와 불화설이 불거졌을 때도 “내가 좋아하는 선수이고 충분히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다”며 혹여라도 후배에게 불똥이 튈까봐 적극 엄호했다. 착하고 겸손한 성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동료·후배를 앞장 서서 ‘쉴드’ 치는게 몸에 밴 인물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번엔 다르다.
파리로 돌아간 이강인이 14일 SNS 사과문을 올려 “앞으로 형들을 잘 돕겠다”란 다짐을 했음에도, 한국에서 언론매체와 온라인, SNS에 이강인 관련 비판 기사가 쏟아지고 비난이 넘쳐남에도, 결국 클린스만 감독이 경질되고 정몽규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는 와중에도 단 한마디 언급조차 없다.
“축구로 입은 상처를 축구로 회복하겠다”는 자신의 선언처럼 모든 것을 단절한 채 EPL 경기에만 몰두하는 모양새다. 토트넘 선수들은 여기저기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보유한 주장의 위대함을 설파하는데 시간을 할애한다. 여봐란 듯이 “우리의 캡틴”이란 캡션의 사진을 SNS에 올린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팬들과 함께한 ‘오픈 트레이닝’에서 연습하는 손흥민을 걱정 어린 눈빛으로 한참을 몰래 훔쳐본다. 그곳에서 손흥민은 ‘행복축구’로 조금씩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이강인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잘못된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하지만 잘못을 깨달았다면 제대로 사과하고, 마음을 얻으려 노력해야 한다. 24시간만에 사라지는, 팬들에게 하는 사과가 자신으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의 마음에 닿기라도 할까. 멀지도 않은 거리인 파리에서 런던으로 달려가는 절실함을 보여야 한다.
살벌한 욕을 하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면서도 축구팬들은 여전히 갈망한다. 한국축구의 현재와 미래가 크로스를 올리고 슛을 때리는 환상의 그림을. 맏형과 막내가 서로 챙기며 뜨겁게 안아주는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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