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포테이토 지수 73%] ‘살인자ㅇ난감’, 기발한 연출보다 더 신경 썼어야 했던 건
이번 인생은 주관식이 아닌 객관식으로 정의내린 청년이 있다. 군 제대 후 무기력하고 의욕 없는 삶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갈 생각이지만, 의지나 의욕이 넘치는 건 아니다. 텅 빈 눈동자로 허공을 쳐다보며 “뭐 이렇게 스펙터클한 게 없냐?”는 말을 내뱉기 무섭게 우연히 살인을 하게 되고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지난 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살인자ㅇ난감'(극본 김다민·연출 이창희)은 평범한 대학생 이탕(최우식)이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깨달은 뒤 범죄자들에 대한 단죄에 나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연재된 꼬마비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살인자ㅇ난감’은 다소 난감하게 읽힐 수 있을 만한 ‘텍스트’이다. 공식적으로는 ‘살인자 이응 난감’이라고 제목을 읽지만, 작품을 보고 나면 살인자가 된 이탕의 난감한 상황을 일컫는 ‘살인자의 난감’, 이탕과 극중 형사인 장난감을 뜻하는 ‘살인자와 난감’을 비롯해 ‘살인 장난감’, ‘살인자 오난감’, ‘살인자 영난감’ 등 극중 어떤 캐릭터와 상황에 이입했느냐에 따라 다채롭게 읽을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원작자 역시도 이를 의도했다.
● 고뇌하는 다크 히어로가 된 평범한 대학생
이탕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한 손님을 만난다. 의도치 않은 몸싸움이 벌어지고, 이탕은 더 의도치 않게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자신의 인생에 반격 같은 것은 선택지에 없었지만, 그날만큼은 반격이라는 키워드를 꺼내든 것이다.
촉 좋은 강력계 형사 장난감(손석구)은 살인 용의자로 이탕을 의심하지만, 살인의 증거는 사라졌다. 그가 죽인 피해자가 지명수배 중인 흉악한 연쇄살인마로 밝혀지자 사건의 방향도 달라진다. 이어 벌어진 살인사건도 마찬가지다. 이탕이 죽인 사람들은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었고, 이탕을 범인으로 가리키는 증거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범죄를 저지르고 괴로워하던 이탕은 자수를 하려 하지만, 범행도구를 도난당하는 등 마치 세상이 그의 자수를 방해하는 듯한 상황에 빠진다. 방황하던 이탕은 자신의 “사이드킥”(조수)을 자처하는 노빈을 만난다. 이후 이탕은 “죽어 마땅한 범죄자들”을 심판하고, 무기력한 대학생에서 악인 감별 능력을 지닌 다크 히어로로 다시 태어난다.
범죄자들에 대한 단죄라고 하지만, 이탕은 점차 피폐해져 간다. 그에 의해 죽임을 당한 피해자이면서 사회적 범죄의 가해자이기도 한 이들은 이탕의 꿈에 나타나 심리적으로 옥죈다.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에 선 이탕은 딜레마에 빠진다. 범죄자를 감별해 죽이지만, 그 능력이 우연인지 진짜인지 본인도 확신하지 못한다. 때문에 눈앞에 범죄가 벌어져도 앞에 나서기를 주저하거나 현실을 회피하는 등 여타 히어로물의 주인공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 기발한 편집 돋보이지만…피해자 다룰 때 섬세하지 못해
‘살인자ㅇ난감’은 이탕 외에도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얽히고설켜 부딪히고 충돌하며 파열음을 낸다.
탁월한 직감과 본능으로 이탕을 집요하게 쫓는 장난감에게도 사연은 있다. 아버지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이를 추적하면서 내적 갈등을 겪는 인물이다. 4회 말미에는 의문의 추격자 송촌(이희준)이 등장해 이탕을 찾는다. 자신만의 정의를 구현하면서 폭주기관차가 된 송촌은 “정의구현”에 대한 뒤틀린 신념으로 긴장감을 안기며 극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이처럼 각각의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딜레마는 ‘죄와 벌’이라는 주제에 대해 곱씹게 한다. 법의 테두리 밖에서 범죄자들을 처단하는 것과 관련해 다양한 인간군상과 그들의 사연을 통해 “죽어 마땅한 범죄자를 죽이는 것이 정의인가?”라는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무엇보다 ‘살인자ㅇ난감’은 기발하면서도 독특한 방식의 편집이 돋보인다.
이탕이 살인을 할 때 어울리지 않게 뽀샤시한 화면과 경쾌한 음악으로 반전의 재미를 안긴다. 극적 효과를 주는 슬로 모션, 연관되지 않아 보이는 장면들을 마치 하나처럼 잇는 감각적인 화면 전환 등 스타일리시하고 과감한 연출로 시선을 붙든다.
다만 여러 장점에도 ‘살인자ㅇ난감’은 캐릭터의 활용, 특히 피해자를 다루는 태도에서 큰 아쉬움을 갖게 한다.
갑작스러운 노출 장면은 논외로 하더라도 고등학생 성폭행 피해자의 최후를 그리는 방식은 꽤나 잔혹하다. 때문에 아무리 이탕이 성폭행 가해자들을 처단한다고 하더라도 통쾌하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불법 촬영 피해자의 고통을 다루면서 이를 화면에서 재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조금이나마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연출했으면 어땠을까라는 물음표를 남긴다. 불법 촬영이라는 범죄가 그저 극의 장치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연출: 이창희 / 극본: 김다민 / 출연: 최우식, 손석구, 이희준, 김요한 외 / 플랫폼: 넷플릭스 / 공개일: 2월9일 /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 장르: 스릴러, 범죄, 수사, 액션, 서스펜스, 누와르, 다크 히어로 / 회차: 8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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