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첫 네 번째 그래미 앨범상·4월 신보 깜짝 발표 ‘여유’
그래미 女風·다양성 진일보…K팝 후보 없어 아쉬움도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최재서 기자 =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4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66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네 번째 ‘올해의 앨범'(Album Of The Year) 트로피를 들어 올리면서 그래미의 새 역사를 썼다.
대중음악계에서는 이를 두고 지난해 거셌던 여풍(女風)을 상징함과 동시에 스위프트가 탄탄한 팬덤을 기반으로 유례없는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스위프트 전성시대…”공감 가는 여성상·관계성이 매력”
스위프트는 앨범 ‘미드나이츠'(Midnights)로 그래미 어워즈 ‘제너럴 필즈'(General Fields·본상)에서도 최고 영예로 여겨지는 ‘올해의 앨범’과 함께 ‘베스트 팝 보컬 앨범’까지 2관왕에 올랐다.
그는 2022년 10월 발표한 이 앨범을 통해 ‘안티-히어로'(Anti-Hero)와 ‘카르마'(Karma) 같은 히트곡을 배출한 것은 물론 그라모폰(그래미 트로피)까지 품에 안음으로써 상업적 인기와 음악성을 모두 갖춘 당대 최고의 팝스타임을 확실히 했다.
스위프트는 ‘올해의 앨범’을 수상한 뒤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최고의 순간”이라며 “내가 원하는 건 단지 이 일(음악)을 계속할 수 있게 되는 것뿐”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특히 ‘베스트 팝 보컬 앨범’을 수상하고서는 오는 4월 19일 새 앨범 ‘더 토처드 포이츠 디파트먼트'(The tortured poets department) 발매 소식을 ‘깜짝’ 공개하는 여유도 보였다.
스위프트는 2006년 컨트리 음악으로 데뷔한 이래 2010년과 2016년 그래미 어워즈 ‘올해의 앨범’ 상을 받으며 음악적 영향력을 넓혀갔다.
특히 2012년 정규 4집 ‘레드'(Red)로 컨트리와 팝의 황금 비율을 완성했다는 찬사를 받으며 세대를 초월하는 아티스트로 자리 잡았다.
그는 작년 한 해 음반, 저작권료, 콘서트, 굿즈 등으로 18억2천만달러(약 2조4천억원)를 벌어들였고, 투어 콘서트 ‘에라스 투어’로 매출 10억달러(약 1조3천억원)를 돌파했다. 연예계 인물 최초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작년 ‘올해의 인물’로 단독 선정되기도 했다.
스위프트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역사 그 자체인 셈이다.
이날 시상식 진행자 트레버 노아가 행사장에 들어오는 스위프트를 보며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지역 경제가 살아나는 것이 보이느냐”라고 너스레를 떤 것도 절대 허언이 아니었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스위프트는 전 세대를 통합해 자신만의 제국을 구축한 전례 없는 아티스트가 됐다”며 “과거 상을 타면 아티스트가 감격하던 것과 달리, 스위프트가 이날 수상 소감으로 새 앨범 계획을 여유 있게 공개한 것은 시상식보다도 커진 그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고 평했다.
스위프트는 10대부터 활동해온 싱어송라이터로서 열애사와 가정사를 비롯한 개인적인 얘기들을 음악에 가감 없이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영대 대중음악평론가는 그의 매력으로 “MZ 세대 여성들이 공감하고 정체성을 투사할 수 있는 여성상 또는 관계에 대한 태도 등을 노래에 잘 담아낸다”고 짚었다.
김 평론가는 “스위프트는 팝이라는 카테고리로 할 수 있는 사실상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는 가수”라며 “작사를 포함해 송라이터로서의 능력이 탁월하다. 해석의 여지를 남겨둔 가사 등으로 팬의 흥미를 자극해 ‘덕질’하기 좋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 그래미서 거센 여풍…다양성 확대 속 K팝 부재 아쉬움도
이날 그래미 어워즈에서는 스위프트를 필두로 그 어느 때보다 여풍이 거셌다.
‘올해의 레코드'(Record Of The Year)에 마일리 사이러스의 ‘플라워스'(Flowers),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에 빌리 아일리시의 ‘왓 워즈 아이 메이드 포?'(What Was I Made For?), 신인상에 빅토리아 모네 등 주요 부문 트로피를 여성 아티스트가 싹쓸이했다.
또 피비 브리저스가 이날 가장 많은 4개의 그라모폰을 품에 안은 것을 비롯해 보이지니어스·시저(SZA)·빅토리아 모네가 각각 3관왕, 빌리 아일리시·마일리 사이러스가 각각 2관왕에 오르는 등 주요 다관왕은 모두 여성이었다. 남성 아티스트 가운데에서는 3관왕에 오른 래퍼 킬러 마이크 정도가 눈에 띄었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세상을 직접적·간접적으로 반영하는 게 음악이기에 여성 아티스트의 강세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시상식에서는 이 밖에도 주최 기관인 레코딩 아카데미가 다양성 확대에 심혈을 기울인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래미가 과거 여성과 비(非)백인 아티스트에게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래미는 올해 시상식부터 ‘베스트 아프리칸 뮤직 퍼포먼스'(Best African Music Performance) 부문을 신설했고, 나이지리아 출신 뮤지션 버나 보이를 무대에 세우는 등 변화를 꾀했다.
하지만 주요 부문 4개 가운데 신인상을 제외한 ‘올해의 레코드’·’올해의 노래’·’올해의 앨범’ 3개가 백인 여성 아티스트에게 돌아간 것을 두고는 ‘화이트 그래미’라는 비판이 여전히 제기된다.
특히 시저는 2022년 말 발매한 ‘킬 빌'(Kill Bill)과 ‘스누즈'(Snooze) 등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음에도 이들 주요 부문에서는 수상에 실패했다.
팝스타 비욘세의 남편인 래퍼 제이지는 이날 “그녀(비욘세)는 가장 많은 그래미를 수상했지만, 한 번도 ‘올해의 앨범’을 수상하지 못했다”며 “이는 말이 되지 않는다(That doesn’t work)”고 꼬집기도 했다.
또한 올해 시상식에서는 예년과 달리 K팝 가수들이 한 팀도 후보에 오르지 못해 아쉬움을 안겼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제63·64·65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3년 연속으로 ‘베스트 팝 듀오 그룹 퍼포먼스'(Best Pop Duo Group Performance) 등의 부문에서 후보로 오른 바 있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마일리 사이러스도 이번에 처음 상을 받았을 정도로 싱어송라이터가 아닌 팝 가수가 그래미 어워즈 후보에 오르고 수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K팝이 그래미를 노린다면 싱어송라이터로서 주도적으로 제작에 임하고 음악적으로도 좋은 만듦새를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시상식에서는 진행자 트레버 노아가 숏폼 플랫폼 틱톡이 저작권 협상 결렬로 유니버설뮤직 소속 산하 유명 가수들의 음악 제공을 중단한 것과 관련해 “부끄러운 줄 알라”(Shame On You)고 외쳐 눈길을 끌기도 했다.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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