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병환으로 들어선 배우의 길…연기 깊어지며 다양한 배역 소화
모범적 가정생활에 성공적 자녀교육으로도 유명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5일 세상을 떠난 원로배우 남궁원(본명 홍경일)은 한국영화사에서도 손꼽힐 만큼 잘생긴 외모로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이다.
1934년생인 고인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180㎝의 장신에 서구의 미남을 연상케 하는 조각상 같은 얼굴, 신뢰감을 주는 낮은 톤의 목소리를 가졌다.
그의 이미지는 거친 반항아보다는 신뢰감을 주는 모범생에 가까웠다. 이 점에서 당대 한국의 미남 배우 신영균이나 신성일, 최무룡 등과 구별됐다.
실제로 고인은 어린 시절부터 모범생이었다. 중학교 시절에도 잘생긴 외모로 주변 여학생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순진한 성격에 도망을 다니곤 했다고 한다.
한양대 재학 시절 꿈은 교수나 외교관이었다. 미국 콜로라도대 유학을 준비하던 중 모친이 자궁암 진단을 받아 치료비가 필요해지자 급한 마음에 친구의 부친인 아세아영화사 사장을 찾아가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데뷔작은 노필 감독의 ‘그 밤이 다시 오면'(1958)이다. 이 영화에서 소박한 시골 선생을 연기한 그는 ‘혜성 같은 신인’으로 떠올랐다.
신상옥 감독이 연출한 ‘자매의 화원'(1959)에 출연한 걸 계기로 신 감독이 운영하던 신필름의 전속 배우가 된 그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연기를 공부하며 대배우로 성장해갈 입지를 다졌다.
특히 홍콩과의 합작 영화를 준비하던 신 감독이 그를 홍콩으로 데려간 게 본격적인 연기 수업의 시작이었다. 당시 고인은 홍콩에서 시간만 나면 극장에 찾아가 영화를 보고 배우의 연기를 메모하며 공부하듯 연기를 파고들었다고 한다.
고인의 연기가 깊어지면서 그가 소화한 배역의 폭은 넓어졌다.
잘생긴 외모에 걸맞게 신사적인 배역을 주로 하던 고인은 신 감독의 ‘빨간 마후라'(1964), 장일호 감독의 ‘국제 간첩'(1965), 이만희 감독의 ‘여섯 개의 그림자'(1969) 등 액션 영화에서 호방한 히어로의 면모를 보여줬다.
신 감독의 ‘내시'(1968)와 같은 작품에선 잔인한 절대권력자를 연기했다. 구중궁궐에서 벌어지는 애욕의 세계를 그린 이 작품은 외설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의 연기 변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기영 감독의 ‘화녀'(1970)에서 관능적인 여성에게 넘어가 파멸하는 우유부단한 부르주아 중년 남성의 모습을 스크린에 펼쳐냈다. 이만희 감독의 ‘청녀'(1974)와 정지영 감독의 ‘산배암'(1988)에서 맡은 배역도 큰 틀에서 같은 범주에 들어간다.
이 밖에도 이두용 감독의 ‘피막'(1980)에서는 주인집 청상과부 며느리와 정을 통해 죽게 되는 피막지기를 연기했고, 하명중 감독의 ‘화분'(1972)에서는 동성애자 역을 맡기도 했다.
단정한 모범생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펼쳐낸 건 그가 끊임없이 자기 틀을 깨뜨리고 성장해가는 배우였기에 가능했다.
국회의원을 지낸 홍정욱 올가니카 회장의 부친이기도 한 고인은 모범적인 가정생활에 성공적인 자녀 교육으로도 유명하다. 여기엔 고인의 아내 양춘자 씨의 내조가 큰 역할을 했다.
고인은 영화 촬영 중 부상 치료를 받으러 대만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당시 스튜어디스이던 양 씨를 만나 결혼했다고 한다.
ljglory@yna.co.kr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