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성난 사람들’ 이성진·스티븐 연, 이제는 말할 수 있는 시작과 끝
“내면의 어두운 면을 조명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성난 사람들’은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면서 비로소 서로를 이해하는 작품입니다. 개인마다 느낀 점은 다르겠지만, 많은 분들의 마음을 울렸던 부분은 캐릭터 안에서 자신의 일부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성진 감독)
2일 오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성난 사람들'(BEEF)을 연출한 한국계 미국인 이성진 감독과 주연배우인 스티븐 연이 화상 기자간담회를 통해 국내 취재진과 만나 에미상 수상 등 작품이 큰 사랑을 받은 소감을 밝혔다.
‘성난 사람들’은 지난 1월16일(한국시간) 제75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TV미니시리즈·영화(A Limited Or Anthology Series Or Movie) 부문 작품상과 감독상, 남녀주연상 등 8관왕을 차지했다. 에미상은 TV 시리즈를 대상으로 하는 시상식 중에선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
에미상 이전에 열린 제8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도 작품상을 포함한 3관왕, 제29회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에서는 4관왕의 영예를 안으며 ‘성난 사람들’은 지난해 최고의 성과를 거둔 작품이 됐다.
세 개의 주요 시상식에서 모두 남우주연상을 받은 스티븐 연은 “이런 것들을 예상하는 건 쉽지 않다”면서 “기쁘게 생각하는 부분은 모두가 이야기에 깊이 관여하면서 과정 안에 푹 빠져 있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반응을 알 수는 없지만, 공개됐을 때 ‘어떤 작품인가’보다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시사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의도에 대한 자신감과 신뢰가 있었죠. 진실이라고 믿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반응해 줘서 깊이 감사함을 느낍니다.”(스티븐 연)
이성진 감독은 “온라인상에서 예술을 설명하는 벤 다이어그램이 있다. 한쪽 동그라미는 자기 의심이고, 한쪽은 고삐 풀린 나르시시스즘인데, 예술이 중간에 나오는 교집합”이라면서 “나는 양쪽을 온간다”고 웃었다.
이 감독은 “남들이 ‘내 예술을 어떻게 봐줄까?’ 생각하다가 ‘우리가 모든 상을 다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면서 “(지금은)그 중간에 도달한 거 같다”고 본인의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제가 속한 공동체 동료들과 높이 샀던 예술가들의 인정을 받는 건 기쁜 일이죠. 겸허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 마음과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많은 생각이 들어요.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이성진 감독)
● 이성진 감독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경험, 내 안에 깊이 박혀 있어”
‘성난 사람들’은 한국계 미국인 이성진 감독이 각본과 연출, 제작을 맡고 주인공 대니를 연기한 스티븐 연 등 한국계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작품이다.
운전 도중 벌어진 사소한 시비에서 시작한 주인공 대니(스티븐 연)와 에이미(앨리 웡)의 갈등이 극단적인 싸움으로 치닫는 과정을 담는 내용으로, 한인 교회를 다니는 대니를 통해 미국에 정착한 한국계 이민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분노’로 가득 차 있는 두 사람이 사소한 사건이 발단이 돼 극단적으로 치닫는 내용을 그린 ‘성난 사람들’은 현대인들의 분노와 갈등을 흡인력 있게 풀어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이 감독은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한 캐릭터를 그려보고자 했다”면서 “시작과 끝은 정했다. 시작은 난폭운전이고, 마지막은 서로의 어둠을 인식하고 유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과정을 최대한 진실되게 그리자고 마음먹었다”던 이 감독은 “메시지는 보는 사람에 달려 있다. 창작자가 알지 못했던 메시지를 보는 사람들이 알아채는 것은 창작 활동에서 가장 사랑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성난 사람들’은 이성진 감독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이자, 유년기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면서 쌓은 정체성을 녹여낸 작품이다. 대니와 에이미의 갈등의 도화선이 된 난폭운전 또한 이성진 감독이 직접 경험한 일이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영상매체를 제작한다는 건 많은 협력을 요한다”면서 “작가를 비롯해 스티븐 연, 앨리 등 굉장히 많은 사람들과 대화한 결과물이다. 한인교회에서 있었던 일은 스티븐 연과 웃으면서 얘기했고, 작품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수많은 대화를 한데 모았어요.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만들고 집어넣기로 하면 작품은 자기 스스로 변모하기도 합니다. 난폭운전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아마도 그 사람의 하루가 안 좋았았던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감사해요. 그날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이 순간도 없지 않았을까 합니다. 타이밍이라는 건 아름답고도 희한한 거 같아요.”
한국계 미국인으로 살아온 경험에 대해 이 감독은 “전면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난 사람들’에)유기적으로 녹아들었다”면서 “그 주제가 내 안에 깊이 박혀 있다. 앞으로 내놓을 작품, 기회가 된다면 영화에도 담아내고 싶다”고 희망했다.
● 스티븐 연 “대니 연기할 때, 나조차도 통제력 잃어버려”
스티븐 연의 뛰어난 연기는 ‘성난 사람들’을 성공으로 이끈 결정적인 요인이다.
그는 극중 한인 2세로 우울한 현실을 살아가다 우연히 운전 도중 부딪친 또 다른 아시아계 여성과 시비가 붙어 처절한 분노로 맞서다 끝내 일상의 파국으로 몰리는 대니 역을 맡아 고단하고, 외롭고, 힘겨운 이민자의 삶을 그렸다.
스티븐 연은 “대니는 여러 가지 수치심을 집약한 인물”이라며 “대니는 몹시 무기력하다. 통제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배우로서 연기할 때 통제력을 잃어버린 사람을 연기하지만, 나는 통제력이 있는 상황에서 연기할 수 있다. 하지만 대니는 그렇게 접근하면 안 됐다”고 말했다.
“저조차도 그 인물에 녹아 들어서 통제력을 잃어버려야 하는 캐릭터였어요.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두렵지 않을까?’ 그런 마음마저도 내려놓어야 했죠. 수상 소감에서도 말했는데 앤드류 쿠퍼(포토그래퍼)가 ‘대니를 포기하지 마라’라고 말했어요. 대니를 포기하는 건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죠. 결국 우리는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고, 수용 받기를 원하는 거 같아요.”
또한 스티븐 연은 “이 이야기의 일부가 되고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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