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씨름 유망주 ‘백두’ 역할…14㎏ 늘리고 2개월 훈련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정말 상남자의 스포츠다, 생각했죠. 힘으로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전혀 그렇지 않고 바둑처럼 수 싸움을 하는 것도 재미있고요.”
ENA 드라마 ‘모래에도 꽃이 핀다'(이하 ‘모래꽃’) 종영을 기념해 31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기자들을 만난 배우 장동윤은 인터뷰 도중 씨름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수다스럽게 씨름의 매력을 늘어놓았다.
장동윤은 ‘모래꽃’에서 한 번도 장사 타이틀을 따내지 못한 만년 씨름 유망주 김백두를 연기하기 위해 몸무게를 14㎏ 늘리고 용인대에서 두 달 동안 씨름 훈련을 받았다. 경기 장면은 일부 대역을 썼으나 대부분 장동윤이 직접 촬영했다고 한다.
장동윤은 “편하게 음식을 먹어도 되는 역할을 맡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기회가 금방 왔다”며 미소 지었다. 그는 “체중을 늘려도 용납이 되는 캐릭터라서 좋았다”며 “이번에 인생 최대 몸무게를 찍었다”고 털어놨다.
촬영을 마친 지 한달여가 지나 진행된 인터뷰에서 장동윤은 과거처럼 날씬한 체형으로 돌아와 있었다.
“운동도 좋아하고 식단 관리도 잘하는 편이라 옛날엔 수월하게 살을 뺐는데, 이번에는 한계를 넘어서 살을 찌웠더니 힘들었어요. 예전보다 대사량도 줄어든 것 같고, 나이 들수록 관리를 해야겠다 싶었죠.”
한국 전통 스포츠인 씨름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흔치 않다. 2006년 개봉한 류덕환 주연의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제외하면 씨름을 주된 소재로 내세운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장동윤은 “씨름은 짧으면 5초나 10초, 길어 봐야 1분 남짓한 시간 동안 상대가 어디로 무게를 이동시킬지 파악해서 내가 선수를 쳐야 하는 스포츠”라며 “심리전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점이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장동윤이 연기한 백두는 극 중반부 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눈앞에서 놓칠 정도로 선전하는 등 여러 선수와의 경기 장면이 등장한다.
어릴 때부터의 친구이자 장사 출신 씨름 코치 곽진수(이재준 분)와의 대결이나 유명 씨름 선수 출신인 아버지 김태백(최무성)에게 씨름으로 혼나는 장면 등 경기 외에도 백두는 끊임없이 씨름을 한다.
여러 장면을 소화하면서 다친 부분은 없었는지 묻자, 장동윤은 “안전하게 촬영을 끝냈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골반과 사타구니 쪽에 맨 샅바를 상대방이 잡고 제 몸 전체를 들어올리기 때문에 나중에는 그 부분에 피멍이 들었다”며 “혹시 자세가 잘못된 탓인가 해서 선수들한테도 물어봤는데 ‘원래 그렇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끈 하나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며 “그것조차 저는 재미있었다”고 덧붙였다.
‘모래에도 꽃이 핀다’는 청년 백두의 성장물이기도 하지만, 백두가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오두식(이주명)과 오랜 세월이 지나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로맨스물이자 가상의 지역인 거산군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수사물이기도 하다.
만년 유망주로 설움을 겪은 백두는 술김에 “이번 대회에서 장사 타이틀을 못 따면 은퇴하겠다”고 공언했다가 결국 은퇴한다. 속마음은 계속 씨름을 하고 싶지만, 결국 경기에서 지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선수 생활을 접는다.
그런 그의 앞에 어린 시절의 단짝이자 씨름 친구였던 두식이 나타난다. 완전히 달라진 외모에 이름도 ‘유경’으로 바꾸고 표준어를 쓰지만, 백두는 한눈에 두식을 알아보고 주위를 맴돈다.
장동윤은 “백두는 유경이를 좋아하면서도 시원하게 자기 마음을 말하지 못하고, 자기가 씨름을 좋아한다는 것도 주변에 말하지 못한다”며 “그런 모습이 백두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답답하게도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백두는 이후 두식에게 “내 너 좋아한다”며 마음을 고백하고, 두식을 도와주겠다는 명목 아래 씨름 선수로 복귀해 다시 모래판에 선다.
장동윤은 이런 모습을 두고 “이 드라마는 백두의 성장 이야기를 담았다”며 “매회 백두의 심경이 바뀌고 각성하고 깨닫고 자기 마음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런 부분을 최대한 신경 써서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당초 지난 25일로 예정됐던 ‘모래에도 꽃이 핀다’ 종영은 방송사의 사정으로 이날로 미뤄졌다. 장동윤은 마지막회 내용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면서도 “결말이 만족스럽다”고 평가했다.
장동윤은 2015년 흉기 강도를 검거하는 데 기여해 경찰 표창을 받았다가 잘생긴 외모로 화제가 된 끝에 연예기획사와 계약하고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매년 연기 영역을 넓혀 2022년에는 영화 ‘늑대사냥’과 드라마 ‘사막의 왕’, 2023년에는 영화 ‘롱디’, ‘악마들’, 드라마 ‘오아시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 출연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장동윤은 “잘 모르는 분들은 제가 굉장히 순탄한 길을 걷고 기회도 쉽게 얻었다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있다”며 “마냥 그렇지만은 않았고, 지금도 항상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고 털어놨다.
이어 “어떤 게 좋은 연기이고 어떤 사람이 좋은 배우인지 이 일을 할수록 혼란이 커진다”며 “다만 압도적으로 일을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고, 그래서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드라마 제목처럼 ‘장동윤에게 꽃이 피었는지’ 묻자 “아직 안 피었다고 생각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성장을 멈추면 전성기가 끝난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저는 전성기가 최대한 늦게 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저 사람은 저게 한계인 줄 알았는데 계속 성장하네?’ 이렇게 보일 수 있도록요. 그런 면에서 저는 아직 꽃을 피우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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