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 2관왕…정리해고 앞둔 여성 용접공 삶 그려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울산은 조선소가 최곤 기라. 니도 어데 하청이라도 들어가라.”
50대 용접공 윤화(김금순 분)가 집에서 빈둥거리는 아들 세진(최우빈)을 나무란다.
윤화는 남편이 조선소에서 일하다 사고로 죽은 뒤 기술을 배워 같은 회사에 취직해 30년간 일했다.
스포츠머리와 괄괄한 말투, 숨 쉬듯 피우는 담배에서 윤화가 남자들이 우글거리는 일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가늠할 수 있다.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수줍게 웃는 가족사진 속 새색시 모습은 마치 전생 같다.
기름밥을 먹으며 두 아이를 키우는 동안 몸은 성한 데가 없어졌지만, 길거리에 나앉지 않게 해준 조선소가 윤화는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나 회사는 경기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그를 정리해고 대상자로 정한다. 가뜩이나 벼랑 끝으로 몰리던 윤화의 가족에게, 믿었던 회사가 결정적 한 방을 날린 것이다.
정기혁 감독의 영화 ‘울산의 별’은 노동자를 소모하고 대체하는 시스템이 어떻게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무너지게 하는지를 보여준다.
고용 불안, 여성 노동, 비정규직, 하청 시스템 등 고질적인 노동 문제를 짚는 한편 약자 간 연대를 말한다.
정 감독은 아버지의 고향인 울산에서 만난 친척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나리오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이 영화로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을 받았고 주연 김금순에게는 올해의 배우상을 안겼다.
과거 호황기 울산을 비롯한 중공업 도시에서는 남편이 돈을 벌어 아내와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 남성 중심의 부양 모델이 일반적이었다.
윤화네 역시 기술자 아버지 덕에 단란한 가정을 꿈꿨다. 하지만 그가 죽으면서 기술도 경력도 없는 20대 주부 윤화가 일터에 뛰어들었다.
하청의 하청쯤에 있는 회사 내에서도 윤화는 을 중의 을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임금 후려치기’를 당하는 것은 물론 가장 먼저 정리해고 리스트에 오른다.
기술이 있으면 먹고살 만은 할 줄 알았던 울산은 2010년대 불어닥친 조선업 불황으로 더 이상 유토피아가 아니게 됐다.
윤화를 지켜보는 20대 아들 세진과 고등학생 딸 경희(장민영)는 다른 미래를 그리기 어렵다. 자신들의 삶 역시 엄마와 비슷한 모양이 될 거라 생각해서다.
이 영화는 산업 도시에 사는 가족 간 세대 갈등도 주요하게 다룬다.
세진은 “10년을 일해도 연봉은 4천만원”이라며 가상 화폐 ‘빚투’에 열을 올린다. 울산에 있어 봤자 조선소 사무직으로 일할 게 뻔한 경희는 서울에 가서 미용을 배우고 싶다.
두 사람은 ‘조선소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월급을 받고 살라’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해서 잘살 수 있던 호시절은 애초에 끝났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가족의 씁쓸한 초상을 비추는 데서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않는다.
결국엔 서로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노력하는 각각의 모습을 보여주며 희망을 말한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회사에서도 서로를 챙기는 노동자들의 연대도 그린다.
정 감독은 최근 시사회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영화는 가족의 이야기”라면서 “약자들이 서로 화해하고 보살피자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소개했다.
24일 개봉. 117분. 15세 이상 관람가.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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