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고등학교 졸업만큼 설레면서도 두려운 이별이 있을까.
요란한 졸업식을 끝내고 학교 밖을 나서면, 다시는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다는 걸 누구나 직감하게 된다.
그래서 졸업식은 단순히 축하 자리가 아니라 한 시절을 보낸 나를 위한 작별의 세레머니에 가깝다.
나카가와 슌 감독이 연출한 일본 영화 ‘소녀는 졸업하지 않는다'(이하 ‘소녀’)에는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들이 나온다. 이들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어린 날의 자신을 잘 보내줌으로써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이 영화는 소설 ‘누구’로 최연소 나오키상을 받은 아사이 료의 동명 소설을 뼈대로 했다. 아사이의 또 다른 작품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도 앞서 2012년 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이하 ‘키리시마’)로 만들어졌다.
10대가 겪는 혼란과 상실감, 아득함을 섬세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소녀’는 ‘키리시마’와 겹치는 면이 많다.
‘소녀’의 주인공은 마나미(가와이 유미 분)와 고토(오노 리나), 쿄코(고미야마 리나), 사쿠타(나카이 도모) 등 4명의 여고생이다.
이들이 졸업 이틀 전부터 졸업식 당일까지 겪는 일을 각각 보여주는 형태로 영화가 전개된다.
네 사람은 고등학교에서 보낸 3년의 모습은 물론 진로도 판이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진심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점만은 같다. 중학생 때부터 짝사랑해온 동아리 친구, 갑갑한 학교에서 숨구멍이 되어 준 선생님, 대학교에 가면 헤어질지도 모르는 남자친구….
특히 마나미는 오랫동안 자신이 준비한 도시락을 함께 먹은 동급생 슌(쿠보즈카 아이루)에게 할 말이 많다. 그는 졸업식 날 3학년을 대표해 답사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그동안 쌓아온 말들을 쏟아내려 한다.
마나미는 글감을 찾기 위해 학교 곳곳을 누빈다. 교내에서 떠오르는 추억은 전부 슌과 함께한 기억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묵혀둔 속마음을 털어놓을 그의 표정은 내내 어둡다.
주인공들의 서사에 멜로가 얽혀 있어 언뜻 하이틴 무비로 보일 수 있으나 ‘소녀’는 10대의 로맨스에 치중한 작품은 아니다. 이들의 사랑과 우정이 풋풋한 시작이 아닌 쓰라린 끝자락에 있어서다.
이별해야 하는 건 남자친구나 친구를 사랑했던 그때의 자신이기도 하다. 졸업 전야의 교실은 떠들썩하고 들뜬 분위기지만, 학생들 얼굴 하나하나를 뜯어 보면 이들이 실은 학교를 떠나기 싫어한다는 것을 금세 눈치챌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끝이 있기에 지난날을 뒤로 하고 성장한 나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은 안다. 네 가지 이야기를 담담하게 보여주는 것뿐인 이 영화가 아련함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다.
도쿄국제영화제와 베이징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소녀’는 지난해 일본에서 소규모로 개봉했다. 이후 점차 관객들 사이에 입소문이 났고 각종 영화 평점 사이트에서 높은 평점을 기록하면서 장기간 극장에서 상영됐다.
오는 24일 개봉. 120분. 12세 이상 관람가.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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