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사모아 축구대표팀 첫 승 거둔 이야기…2011년 실화 바탕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영화 ‘넥스트 골 윈즈’는 국제대회에서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아메리칸사모아의 축구 대표팀이 2011년 월드컵 오세아니아 지역 1차 예선에서 통가를 상대로 역사적인 첫 승을 거둔 실화를 토대로 한 작품이다.
최약체 팀이 천신만고 우여곡절 끝에 감동적인 승리를 거두는 여느 스포츠 영화와 비슷할 거란 인상을 줄 수도 있지만, 이 영화가 가진 스토리텔링의 힘은 그런 선입관을 깨뜨린다.
마블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2017)를 연출한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신작 ‘넥스트 골 윈즈’는 미국 축구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토머스(마이클 패스벤더 분)가 아메리칸사모아 대표팀 감독에 부임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때 잘 나가는 감독이었지만, 불같은 성질 탓에 경기장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등 물의를 빚어 퇴출 위기에 몰린 토머스는 국제축구연맹(FIFA) 최하위 팀의 감독 제안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갈 곳 없는 토머스가 아메리칸사모아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건 루저와 루저의 만남인 셈이다.
그의 눈에 비친 아메리칸사모아 팀 선수들은 한심하기 그지없다. 축구의 기본기가 안 돼 있고, 체력도 형편없다.
게다가 어찌나 종교적인지 한창 훈련하다가도 기도 시간만 되면 다 같이 운동장에 주저앉아 기도하고, 일요일엔 무조건 쉬어야 한다며 훈련을 거부한다.
몇 번이고 감독을 그만두려고 하던 토머스는 선수들에게 미운 정이 들었는지 지휘봉을 내려놓지 못하고, 결전의 날은 다가온다.
이 영화에서 변화하는 건 아메리칸사모아 선수들이 아니라 토머스다. 자기만의 기준으로 선수들을 재단하던 토머스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할 줄 알게 된다.
이런 변화는 그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과정과 맞물린다. 그렇게 한마음이 된 토머스와 선수들은 아메리칸사모아의 전 국민을 열광케 할 기적을 일으킨다.
이 영화는 아메리칸사모아와 통가의 경기를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경기가 끝난 뒤 선수 한 명이 아메리칸사모아 축구협회장 타비타(오스카 카이틀리)에게 전하는 승전보를 통해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재미를 더한다.
미국 축구협회가 토머스를 앉혀 놓고 슬픔의 극복 과정에 관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 아메리칸사모아 감독직을 울며 겨자 먹기로 수락하게 하는 장면도 재치가 돋보인다.
토머스가 선수들과 티격태격하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웃음을 자아내고, 그가 변화하는 모습은 감동을 준다.
영화 내내 스크린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토머스와 선수들은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공을 차고, 체력 훈련을 하려고 높은 산에 올라 바다를 내려다본다. 이 영화는 아메리칸사모아에선 촬영하지 못하고, 하와이 오아후섬에서 찍었다.
와이티티 감독은 ‘토르: 라그나로크’로 국내에서 485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조조 래빗'(2020)으로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색상을 받았다.
24일 개봉. 104분. 전체 관람가.
ljglory@yna.co.kr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