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W 노이슬 기자] “이순신 장군을 널리 잘 알리고, 장군의 정신이 우리 시대에 소중하게 리마인딩 됐으면”
10년의 여정을 마친 김한민 감독은 홀가분해보였다. ‘이순신 3부작’은 촬영부터 개봉까지는 10년의 여정이었으나, 기획은 훨씬 더 이전부터 시작됐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존경하는 인물인 ‘이순신 장군’의 생애 업적을 스크린에 담아내기 까지 김한민 감독은 그 누구보다 고뇌하고 또 고뇌했다.
‘이순신 3부작’의 첫 시작인 ‘명량’은 1761만 관객을 동원하며 대한민국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명량’은 세월호 참사로 이후 개봉됐기에 우려했다. 또 2년에 걸쳐 촬영된 ‘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과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는 코로나19로 인해 촬영조차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한민 감독은 우여곡절 끝에 ‘이순신 3부작’을 통해 임진왜란 7년 전쟁을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감독은 “이런 날이 왔구나 싶다”며 10년 여정을 완성한 소감을 밝혔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김한민 감독/롯데엔터테인먼트,㈜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김한민 감독이 10년만에 완성한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는 임진왜란 발발 후 7년, 조선에서 퇴각하려는 왜군을 완벽하게 섬멸하기 위한 이순신 장군의 최후의 전투를 그린 전쟁 액션 대작이다. 개봉 이후 10일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 2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372만 관객을 동원하며 새해부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명량’의 흥행은 자연스럽게 대중에는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지만, 김한민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한산’과 ‘노량’은 연이어 촬영한 감독은 ‘노량’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 “‘명량’의 흥행에 힘 입어 ‘한산’, ‘노량’이 단순히 후속편으로 가는 그런 작품이 되는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면서 ‘한산’과 ‘노량’의 의미를 더 철저하게 생각했다. 의미가 있는 작품으로 찍는게 맞겠다 싶었다. 그렇게 찍어야지만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을 수 있고 관객들에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하다보니 8년만에 연달아 준비하게 됐다.”
‘명량’의 이순신은 용장, ‘한산’의 이순신은 지장이었다. ‘노량’의 이순신은 현장(현명한 장군)이다. 특히 ‘노량’은 이순신 장군이 이끈 임진왜란 7년 전쟁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왜 그렇게 치열하고 집요하게 전투에 임했는지가 중요했다. “장군님의 마지막 전투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마지막에 장군이 돌아가실 때에도 싸움이 급하니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전쟁이 끝나서는 안된다는 말이 그분이 살아계신다고 하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대의나 유지를 거스르지 않는 마지막 대사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 지점에서 ‘노량’을 만들 결심이 섰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메인 포스터/롯데엔터테인먼트,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극 중 등장하는 이순신의 ‘이렇게 전쟁이 끝나서는 안 된다’는 대사는 감독이 치열한 고민 끝에 만들었다. “그토록 집요하게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야 한다는 결의에 있어서 그 대사가 노량을 만드는 의미이고 대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난중일기’ 어디를 봐도 그런 대사는 없었다. 맹세에서 여운을 발견하긴 했다. 완전한 종결이 장군 바란 종결이지 않았을까 확신에 찬 믿음으로 영화를 만들게 됐다.”
‘노량’은 100분이 넘는 해상전쟁 씬으로 스크린을 압도하는 반면, ‘명량’처럼 드라마틱한 전개나 감정이 최고조로 이르는 신파는 없다. 장군의 죽음이 닥쳐와절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런 부분들을 놀랍다는 반응이 많았다. 저도 생각해보니 그러려고 한게 아니라 장군님의 유지를 따른 것 같다. ‘완전한 항복’. 이 전쟁을 올바르게 끝내야하는가에 대한 진실성과 진정성을 확보하다보니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김윤석 배우와도 그런 식으로 소통했다. 왜 나라나 명나라 당시 그들은 자기 나라 입장에서 그랬을 것이라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 시나리오다. 그 어떤 진정성을 담기 위해서는 피해가지 못하고 정공법으로 갔다. 100분의 해전을 어떤식으로 리얼리티를 표현할것인지가 중요했다. 그래야만 죽음도 진정성 있고 공감할 방향으로 풀릴 것이라 생각했다.”
해상전쟁을 이처럼 실감나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는다. ‘노량’을 위해 전 세계 25개 업체에서 800명이 함께 공들였다. 무엇보다 ‘한산’에 이어 단 한척도 물에 띄우지 않고 촬영했다. “장군님의 유지를 생각한 시나리오를 쓰다보니 자연스럽게 해전을 설계하는 것도 보였다. 물론 중간에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그것들도 극복하고 완성할 수 있었다. 사실 물 있게 해전을 찍을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하지만 요즘 주52시간 표준계약이라 철저한 스케줄링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더구나 ‘노량’은 밤 해전이다. 어딘가에 세트를 짓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됐다. 프리프로덕션까지만 해도 실패 반, 성공 반이었다. 버추얼 프로덕션에 대한 힘듦도 있었다. 해전이라는 것이 단순히 비주얼적인 지점에서의 완성 뿐만 아니라, 100여분을 끌고 가는데 완급 조절과 리듬도 중요하다. 거의 하나의 거대한 오케스트라 같은 느낌이었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롯데엔터테인먼트,㈜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김한민 감독이 가장 신경 쓴 점은 사운드였다. 감독은 “‘명량’은 현장이 제일 힘들었고, ‘한산’은 GC가 힘들었다. ‘노량’은 사운드 때문에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언론 시사 하루 전까지도 사운드 작업에 매진했다. 사운드 설계가 중요했다. 지휘에 따라서 이 영화가 어떻게 보여지는지 많이 달라졌다. 회사 스태프들 뿐만 아니라, 관계자들이 어떨 때는 실망하고 어떨 때는 좋아했다. 감정적인 부분에서 굉장히 변화가 심하더라. 마지막 사운드 작업은 시간에 쫒겼지만 과감하게 했다. 사운드의 밸런스가 제일 중요했다. 그 작업을 하는 게 중요했다.”
특히 ‘노량’은 클라이막스로 향하는 전장 한복판을 비추면서, 순간 모든 소리가 사라지는 장면이 인상깊다. 감독은 “치열한 전장의 중심에 어떻게 이순신이 서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했다. 치열함에 대해 표현하는 방법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총 소리가 난무하거나 배들이 깨지는 것으로 표현할 것인가. 그렇다면 이순신이 전장의 중심에 있게 하는 중요하다. 3국의 병사들의 시점을 따라가자 싶었다. 명나라로 시작해서 조선 장수, 왜나라가 고함을 지르며 달려드는 이순신의 모습으로 설계했다. 그 장면을 촬영할 때 스태프들이 대체 어떻게 찍을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더라. 이건 꼭 우리가 해야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이순신 장군이 이 싸움을 하는 이유와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시간과 노력 소모가 있어도 완성하자 했다. 근데 사운드가 변수였다. 좀 더 비트있고 긴장감 있는 음향을 넣으니 안되더라. 신디 사운드 계열로 택하면서 롱테이크 장면을 표현했었다. 환영까지 보는 장면도 신스 계열로 했는데 느낌이 안 붙더라. 연출을 잘못했나 생각이 들더라. 해가 뜨는 것과 최소한의 사운드로 답을 찾았다. 100분의 오케스트라에 완급에 있어서 콘트라스트 같은 느낌이었다. 상업영화인데 이런거 해도 되나 질문을 받았다. 너무 실험적이라고. 그럼에도 처절한 전장에 서 있는 이순신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럴 수 밖에 없겠다 싶었다. 비주얼뿐만 아니라 사운드도 매우 중요했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이순신 스틸/롯데엔터테인먼트,㈜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노량’이 끝나고 나면 극 내내 극장에 울려퍼졌던 북소리에 대한 여운이 가득하다.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 장군의 대의가 북소리로 요약된다”고 했다. “‘노량’을 만들어야 하는 의미가 잡히자 하부 구조도 놀랍게도 잡혔다. 이순신의 대의나 결의에 반대하는 인물, 동정하는 인물들로 나눴다. 격에 맞게끔 배치가 되고 기능을 한 것 같다. 이순신의 대의가 북소리로 요약된다. 고니시(이무생)는 결국 도망가고 시마즈(백윤식)는 그것 때문에 미치는 지경에 이른다. 진린(정재영)과 조선 장수들은 열의가 생긴다. 이순신은 그것 때문에 부상을 당한다. 그 북소리가 처지면서 다른 영향이 미친다.”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 김윤석과의 촬영장 에피소드도 전했다. “‘노량’의 현장은 ‘한산’의 지략과 전략 전술, ‘명량’의 두려움을 용기로 극복하고 용기로 바꿔가는 중심에 선 용맹스러운 모습까지 두 가지의 면모를 다 갖췄다. 현장이라고 하면 지혜로우면서도 혜안이 있는 느낌이다. 그런 인물에 부합한 배우가 김윤석이라는, 좋은 아우라를 지닌 배우였다. 북을 치는 장면에서는 너무 많이 치는게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과하다는 생각보다 저 북소리고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윤석 선배도 군말없이 잘 치셨다(웃음).”
또 감독은 “시나리오에 ‘시마즈는 누각 안으로 들어가서 몸부림을 친다’라고 돼 있었다. 북소리와 연관이 되게 시마즈를 퇴장시켜야 했다. 그래서 귀를 틀어막아야겠다, 토해야겠다 생각했다. 백윤식 선생님이 그걸 다 읽으시고는 ‘귀를 틀어 막는다’ ‘고꾸라지고 토한다’ 그 다음은 내 마음대로 한다 하신다고 해서 현장에서 한참 웃은 기어이 있다”고도 덧붙였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김한민 감독/롯데엔터테인먼트,㈜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장군의 마지막 유지는 이순신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다. 역사가 스포일러이지만, 모두의 기대감 속 장군의 마지막 순간을 담아내는 방법에 대해 고민할 수 밖에 없다. 감독은 “처음에는 그 장면을 뺄까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괜히 찍어서 득이 될 것 같지 읺았다. 그것도 참신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뺄 수 없었다. 타이밍적으로 변화를 줬다. 윤석 선배랑 이야기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눈을 안 감았으면 했다. 마지막 대사를 흘리시면서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담백한 슬픔이 베어나오는 장면이 됐다.”
김한민 감독은 기획부터 개봉까지 10년 넘게 준비했던 ‘이순신 프로젝트’를 떠나보내게 됐다. “어릴 때 순천에 살면서 내가 소풍가던 순천왜성이라는 존재가 일제강점기 때 것인 줄 알았다. 그로부터 350년 전인 임진왜란 때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이런 역사가 반복된다면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임진왜란은 사실 지리한 전쟁이었다. 너무 오래 끌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도 6년째다. 국제 원조도 없었던 시대에 당시 조선은 얼마나 처참했겠나. 그 전쟁의 중심에 이순신과 백성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순신은 들여다 보면 볼수록 위대한 면모가 드러나는 것 같다. 성웅을 넘어선 혜안을 가진 현장의 느낌이다. 제 목표는 이순신을 널리 잘 알리고, 이순신의 정신이 지금 우리 시대에 소중하게 리마인딩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지금의 역사도 잘 종결돼 보이지 않는다. 그런 지점에서 공감하고 의미있게 보시지 않을까 싶다.”
또 감독은 “이순신 장군의 워딩을 빌리지만 ‘천운이었다’. 세월호와 코로나19가 있었고, 여러 변수들에 더해 개인적인 슬럼프까지 있었지만 잘 넘어갔다. 처음으로 ‘한산’, ‘노량’ 찍을 때 현장이 즐거웠다. ‘한산’ 촬영을 마치고 2개월 반을 준비해서 ‘노량’을 찍었다. 사람들과 공감하는 것이 좋았다. 이전에는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느낌이었다”고 소회를 덧붙였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김한민 감독/롯데엔터테인먼트,㈜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노량’은 ‘한산’에 이어 미국 LA 지역 4개관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해외에서도 확대 개봉한다. 미국에서는 지난달 12월 22일 LA에서 시작을 알렸고,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오는 1월 4일 순차적으로 개봉한다. 이는 사극 장르를 넘어 대한민국 에픽 무비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허준호(등자룡 역) 선배가 라스베이거스에 산다. LA 개봉 소식을 듣고 무한 자긍심을 가지더라. 그런 이야기를 하실 때 자부심이 많이 느껴졌다. 기회가 된다면 1박 2일이라도 미국에서 무대인사를 하면서 반응을 보고 싶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랑 대담할 기회가 있었는데 관심을 많이 갖더라. 서로가 짧지만 의미있는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있다.”
감독의 다음 여정은 익히 알려진 것처럼 이순신 장군에서 한층 더 넓어진 시리즈다. “‘오성과 한음’의 이덕형에 대한 이야기다. 이순신이 완전한 주연은 아니고 광해 때까지 정치하다가 인조반정으로 정치 생을 마감한 사람이다. 이덕형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드라마가 펼쳐지지 않을까 싶다.
또 다른 차기작인 SF영화의 소재는 로봇이다. “사극과 연결 고리가 없는 것 같지 않다. 구원에 대한 이야기다. 이순신 장군을 통해 사람을 구원하는 이야기처럼 로봇들을 빙자해 그런 식의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제는 ‘에덴'(가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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