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아이와 베이비시터의 사랑…칸영화제 비평가 주간 개막작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클레오(루이즈 모루아 팡자니 분)는 프랑스 파리의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 가족이라곤 아빠뿐인 클레오를 돌봐주는 사람은 서아프리카의 섬나라 카보베르데에서 온 베이비시터 글로리아(일사 모레노 제고)다.
클레오가 유치원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 글로리아가 학부모들과 기다리고 있다. 글로리아와 눈이 마주친 클레오는 군중 속에서 엄마를 찾아낸 아이처럼 활짝 웃는다.
마리 아마슈켈리 감독의 신작 ‘클레오의 세계’는 클레오와 글로리아의 아름답고 귀여우며 가슴 찡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두 사람에겐 여느 아이와 베이비시터 사이에서는 찾기 힘든 애착이 있다. 이는 각자가 가진 상실에서 오는 것으로 보인다.
클레오는 엄마가 없고, 글로리아는 카보베르데에 자녀를 남겨둔 채 홀로 프랑스에 와 있다. 그런 두 사람이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면서 모녀처럼 깊은 애착을 갖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카보베르데의 노모가 세상을 떠나자 글로리아는 가정을 돌보려고 짐을 싸 고향으로 돌아간다.
글로리아는 클레오의 아빠에게 여름방학 때 딸을 카보베르데로 보내 달라고 부탁하고, 아빠의 허락을 얻어낸 클레오는 방학을 맞아 꿈에 부풀어 카보베르데로 간다.
새로운 현실이 클레오를 맞이한다. 글로리아에겐 딸 페르난다와 아들 세자르가 있고, 어린 나이에 임신한 페르난다는 아이를 낳는다. 숙박업을 하려고 하는 글로리아는 건물을 짓는 데도 신경을 많이 쓴다.
사랑의 꿈은 늘 그렇듯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현실의 변화에 맞닥뜨려 고통과 방황을 겪는 이야기란 점에서 ‘클레오의 세계’도 여느 러브 스토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특별한 점은 어린아이와 베이비시터의 관계에서 이걸 포착해냈다는 데 있다. 새로운 현실 속에서 아이가 느끼는 순진한 기쁨, 불안, 좌절, 분노와 같은 감정을 이 영화는 놀랍도록 인상적으로 그려낸다.
사랑의 꿈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깨지지만, 그 잔해를 딛고 사람은 성장한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관객은 클레오가 지금처럼 예쁘고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주길 기원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아마슈켈리 감독은 어린 시절 자기를 돌봐준 포르투갈 출신의 여성을 회상하면서 ‘클레오의 세계’를 연출했다고 한다. 그만큼 자전적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클레오 역의 루이즈 모루아 팡자니는 이 영화가 데뷔작이다. 공원에서 캐스팅 담당자의 눈에 띄어 오디션을 거쳐 발탁됐다. 글로리아를 연기한 일사 모레노 제고는 실제로 카보베르데 출신으로, 그 또한 영화 출연은 처음이다.
클레오의 꿈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것도 이 영화의 특징이다. 이는 실사 영화로 그려진 클레오의 현실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피에르 에마뉘엘 리에 감독이 애니메이션을 맡았다.
‘클레오의 세계’는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 주간 개막작으로 선정돼 호평받았다. 아마슈켈리 감독은 ‘파티 걸'(2014)로 칸 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받은 바 있다.
3일 개봉. 84분. 전체 관람가.
ljglo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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