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김희갑과 콤비로 ‘킬리만자로의 표범’·’타타타’ 등 히트곡 쏟아내
에세이 ‘그 겨울의 찻집’ 출간…”실험적인 곡 덥석 잡던 조용필, 가슴 뛰는 사람”
(용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가사를 쓰는 건, 야외에서 도시락을 먹는 피크닉 같아요. 짧은 말 하나하나가 생각날 때마다 큰 기쁨을 주거든요.”
작사가 양인자(79)는 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모양새를 달리하며 글을 쓰다 보니 50년이 닷새처럼 지나갔다”며 글쓰기 반세기를 맞은 소감을 밝혔다.
양인자는 지난 1974년 소설 ‘외항선’으로 등단해 ‘부부 만세’, ‘제3교실’, ‘사랑의 계절’ 등 TV·라디오 드라마 작가로 활약하다가 1985년부터 본격적으로 작사가로 활동했다.
남편인 유명 작곡가 김희갑과 콤비를 이뤄 1980~90년대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킬리만자로의 표범’, 임주리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 김국환의 ‘타타타’ 등 당대 최고의 히트곡을 줄줄이 뽑아냈다. 그는 대중음악계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양인자는 약 4년 전 김희갑과 경기도 용인의 한 시니어 타운으로 이주했다.
그는 이곳에서의 생활에 대해 “하루가 파도치는 바다가 아니라 편안한 강 같다”며 “아침에 일어나 놀다가 쉬다가 생각나면 글도 쓰며 지낸다”고 말했다.
그저 일상을 물어봤을 뿐인데 가사 한 소절 같은 대답. 그의 입을 거친 단어는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쓰이지 않았고, 마디마다 생동감이 넘쳤다. 역시 우리나라 최고의 작사가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양인자는 최근 자신의 히트곡 제목과 같은 에세이 ‘그 겨울의 찻집’을 내놓고 노랫말과 함께한 세월을 차분하게 정리했다.
“소설에는 예를 들어 ‘왠지 오늘 우울해서 만나러 가고 싶었다’는 문장이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드라마에는 ‘왠지 오늘’은 있을 수 없어요. 그 이유가 있어야 해요.”
양인자는 “드라마도 약 30년간 쓰다 보니 가사에 스토리가 있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며 “‘눈물이 난다’면 그 까닭을 될 수 있는 대로 풀어내야 한다. 애매모호한 이야기는 쓰지 않으려 했다”고 자신만의 원칙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래하면 구체적인 사연이 그려져야 한다”면서도 “요즘은 가사의 문법이 달라진 것 같다. 어느 아이돌 가수에게 내 가사를 보여줬더니 ‘이렇게 쓰면 우린 못 부른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양인자는 중학교 방학 숙제로 쓴 글이 어느 문학 교사의 눈에 띄었고, 그의 도움으로 출판되면서 글쓰기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갑작스러운 호평과 호의에 보답하고자 ‘제대로 글을 쓰자’며 놀란 가슴을 붙잡고 문학 공부에 매진했다. 가사마다 이야기 한 편을 녹여내는 그의 정성은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그는 “처음에는 교사 자격증도 없으면서 낙도(落島)에 가서 선생님을 하려고 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하지만 후일 백년가약을 맺게 된 김희갑의 요청으로 가사를 쓰게 되면서 그는 가요계 최고의 ‘미다스의 손’으로 거듭났다. 여기엔 ‘창 밖의 여자’ 작사가 배명숙의 소개로 만난 ‘가왕'(歌王) 조용필과의 인연도 큰 영향을 끼쳤다.
“조용필과의 첫 만남이요? 앉아서 제가 쓴 가사만 보고 있다가 후딱 나가버렸죠. 그가 어느 문장에서 시선을 멈췄는지 자꾸만 저도 의식하게 됐죠.”
양인자는 “가수들은 대개 익숙한 스타일의 곡만 안심하고 받으려 한다”며 “그런데 조용필은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나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 같은 실험적인 곡도 덥석덥석 잡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용필은 음악 말고는 아무것도 재미없어하는 이”라며 “곡을 주는 관계로서는 참 가슴 뛰는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또 “조용필이 그 당시에도 톱스타였기에 그렇게 유명하고 노래를 잘하면 아무 걱정이 없을 줄 알았는데, ‘목소리가 안 나올까 봐 아침마다 걱정된다’고 말하던 게 기억난다”고 덧붙였다.
양인자는 조용필이 ‘그 겨울의 찻집’을 녹음하던 중 ‘아름다운 죄’를 ‘아름다운 재’로 발음하자 ‘죄!’라고 호통쳤다는 에피소드도 소개하며 “김희갑의 ‘백’을 믿고 한 것”이라고 웃음 지었다.
그에 따르면 조용필은 약 20분 길이 대곡인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은 무엇인가를’을 녹음하면서는 목이 터져라 이 곡을 완곡으로 부르고 또 불렀다고 했다.
양인자는 “저렇게 소리 지르면 큰일 나겠다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부르더라. 그런데 본인은 노래를 실컷 해서 후련했던 것 같다”며 “김희갑이 ‘오케이'(OK) 사인을 내려도 자기가 마음에 안 들어서 노래를 또 불렀다”고 회고했다.
그가 쓰고 조용필이 부른 ‘킬리만자로의 표범’ 노랫말은 39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을 위로하고 있다.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라는 가사처럼 가왕은 데뷔 56주년을 맞았어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양인자는 “나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도 모르는 불안한 시기에 스스로를 긍정하고 싶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21세기가 나를 원했다’라는 과거형을 썼다”며 “방송국 PD들이 노래가 길어 홍보에 손해라고 해도 조용필은 상관없다며 이 곡을 불렀다”고 말했다.
숱한 히트곡에서 ‘찰떡궁합’ 혹은 ‘부창부수’를 이룬 김희갑은 그에게 어떤 존재일지 궁금했다.
양인자는 “다른 작곡가들은 가사를 써 주면 자꾸 뭘 바꿔 달라고 하는데, 김희갑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며 “김희갑은 내게 절대적인 남자였다. 평생 한결같이 존경하는 남자가 있다는 게 행복하다”고 말했다.
곡 작업으로 호흡을 맞추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두 사람은 그의 표현을 빌리면 자연스레 ‘어울렸다’. 그러다 어느 뉴스 기사로 두 사람의 관계가 알려지자 김희갑은 “얘기 나온 김에 결혼합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양인자는 “‘아, 이렇게 해서 엮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도 “수지맞았지, 뭐”라며 털털하게 웃었다.
“저를 만나기 전에는 무서운 사람으로 알려졌더라고요. 저랑 녹음 작업하다 웃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형님도 웃을 줄 아세요?’라고 놀라더라고요. 후일 왜 나를 만나고 변했냐고 물어보니 ‘철이 든 거지 뭐’라고 하더군요. 하하.”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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