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 표까지 받았는데 입장이 안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전국 각지와 중국·일본 해외에서 영종도를 찾은 수백명 K팝 팬들에 25일 크리스마스가 악몽으로 변했다. A(20)씨는 이날 오후 5시부터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열린 SBS 가요대전을 방청하려고 했다가 헛걸음을 했다.
A씨가 온라인 중고마켓에서 산 티켓이 가짜라며 입구에서 제지당했기 때문이다. A씨는 “번개장터를 통해서 만난 사람에게 지난 15일 즈음 서울까지 가서 실물 표를 받아왔다. 행사대행사 측에 배당된 표라면서 판매했는데, 알고 보니 나한테 표를 판 사람도 (사기 업체 측) 알바였다”며 황당해했다. A씨는 40만 원짜리 표를 4장 구매했고, 판매자가 택시비 명목으로 10만원을 더 요구해 총 170만원의 피해를 보았다. A씨는 판매업체 측을 인천경찰서 사이버수사대에 고소할 계획이다.
당시 현장의 관람객들에 따르면 이날 공연장은 ‘가짜 티켓’ 소동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주최 측이 가짜 티켓을 현장에서 구별해내지 못해 입장해버리면서 뒤늦게 진짜 티켓을 가진 사람이 입장하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자신이 구매한 티켓이 가짜라는 걸 알게 된 관객들은 “크리스마스를 망쳤다”며 분노했고, 현장에는 약 1만석인 좌석보다 많은 관객이 몰리면서 평소보다 더 혼잡한 상황이 연출됐다.
수백명으로 추산된 가짜 티켓 피해자엔 부산에서 상경한 팬들부터 중국인, 일본인 등 해외 K팝 팬들까지 대거 포함됐다. 온라인에서는 “가짜 티켓 가려내는 법”이라면서 다이소에서 파는 UV등을 추천하는 글까지 올라왔다.
이날 확인된 가짜 표는 진짜 방청권과는 다른 세로 모양이거나, 같은 가로 모양이더라도 UV등을 비출 때 로고가 비치지 않는 위조된 표였다. SBS 측은 가짜 티켓 논란이 계속되자 25일 오후 “공연 당일 현장에서 가짜 티켓이 판매된 사실을 알게됐다”며 “피해 사실을 파악하고 즉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황”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25일 열린 SBS 가요대전에는 아이브, 뉴진스, 있지(ITZY), (여자)아이들, 동방신기 등 유명 연예인들이 총출동했다. 티켓을 구하려는 경쟁도 그만큼 치열했다. 행사가 치러진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1만여 석 규모의 행사장인데, 표 대부분은 “NOT KOREAN””이라고 적힌 외국인 전용 표였고, 출연하는 각 K팝 그룹 팬들의 전용석은 단 90석이었다고 한다. 일부 행사 지원 업체 규모로 할당된 표는 300석이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사전 응모에 당첨되면 무료로 표를 받을 수 있지만, 국내에 풀린 표 자체가 5000여장밖에 되지 않아 암표 거래가 횡행했다는 게 관람객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중고거래 장터와 SNS에서는 SBS 가요대전 표를 수십만원에 판다는 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이번 범죄가 조직적인 티켓 사기라는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관람객들에게 가짜 티켓을 직거래로 판매한 B(20)씨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나도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B씨는 “지난 4일, 알바몬 공고를 보고 (주)갤럭시라는 업체에 지원했다”며 “회사 직원이라는 C씨와 문자를 주고받았고, 강남 사무실 근처에서 만나 표를 배부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C씨는 B씨에게 “비매품 표를 양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판매자들의 이름과 연락처를 엑셀 파일에 기록해뒀다고 한다. B씨에게는 표 1개를 거래할 때마다 커미션으로 5%를 지급했다. B씨는 “나는 SBS 가요대전 표를 담당했는데 어제 새벽까지만 해도 통화가 되다가 25일 오전, 돌연 연락이 끊겨버렸다”고 말했다. B씨는 자신이 C씨에게 받은 5% 커미션을 자신에게 티켓을 사갔던 피해자들에게 돌려주었다. B씨는 26일 대구 달서경찰서에 C씨를 상대로 고소를 진행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B씨가 판매한 가짜 티켓은 40~50장 가량으로 파악된다. B씨가 표를 판매한 이들과 추가로 공연 당일 입장을 거부당한 가짜 티켓 피해자들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는 이미 90여명이 모인 상황이다. B씨는 “업체 측이 다른 알바까지 고용한 거로 보이고, 31일에 열릴 방송국 행사표까지 팔려고 시도하던 터라서 추가 피해가 우려된다”며 “피해 보신 분들께 죄송하고,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연말 행사 티켓 사기는 매년 반복되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해 4월부터 올해 7월까지 임영웅 콘서트 티켓을 판다는 글을 SNS에 허위로 올리고 745명의 피해자로부터 2억여원을 갈취한 업자들이 올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연말연시를 맞아 공연 티켓 사기가 반복되고 있다”며 “‘더치트’ 등 사이트를 통해 사기 계좌나 계좌명을 검색한다고 해도 현행법상 1명이 여러 금융기관을 통해 다수 계좌를 만들 수 있는 데다, 대포통장을 사용한 사기도 많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정식적인 방식 외에는 거래를 삼가달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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