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김의성 인터뷰 / 사진=안컴퍼니 제공 |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배우 김의성에겐 이미 ‘삼천만’ 관객의 기록이 있다. 이어 ‘서울의 봄’으로 ‘사천만’을 앞둔 김의성이다.
천만 관객을 눈앞에 둔 영화 ‘서울의 봄'(연출 김성수·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은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영화다.
지난달 20일 개봉 이후 박스오피스 1·2권을 다투며 천만 관객을 눈앞에 둔 ‘서울의 봄’에 대해 김의성은 “무슨 말이 필요하겠냐. 너무 좋다. 크든, 작든 작품에 참여한 일원으로서 이렇게 좋은 성과를 내고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시니까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다”며 “지금 시기가 굉장히 오랫동안 한국영화가 힘든 시기였다. ‘서울의 봄’이 좋은 영화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큰 흥행을 할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흥행 못할 요소들을 너무 많이 갖고 있는 영화라 그런지 그걸 다 깨고 잘 됐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봐주시는 것뿐만 아니라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시는 것들이 너무 감격스럽다. 이걸 계기로 한국 영화가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서 상승기로 접어들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소감을 전했다.
서울의 봄 김의성 인터뷰 / 사진=안컴퍼니 제공 |
‘서울의 봄’에서 김의성은 국방부장관 오국상 역을 맡았다. 전두광(황정민)의 쿠데타 말미, 극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다.
흔쾌히 작품에 참여했다는 김의성은 “평생 김성수 감독님이랑 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갖고 있었다. 감독님과 서로 알고 지낸 지는 30년이 넘었다”며 “20대 때부터 감독님을 알았고, 장편 영화로 데뷔하시기 전에 단편 영화를 준비하실 때도 같이 하기로 했었다가 일이 생겨서 못 했다. 제가 너무나 존경하고, 작품 세계에 너무나 공감하고, 그런 감독님이라 뭐든 시켜주시면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장군으로 출연한 정우성은 김성수 감독과 호흡 소감에 대해 “흰머리가 났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해당 발언이 언급되자 김의성은 “정우성은 엄살을 떨었다고 생각한다. 김성수 감독과 ‘무사’를 했을 땐 완전 도깨비 같은 사람이었다. 지금은 순한 감독이 됐는데 그걸 다 경험해 놓고는”이라며 “감독님이 다리 부러져서 쉬니까 좋다고 했던 사람이 이제 와서 왜 그러냐. 정우성이 힘들다고 하는 건 엄살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농담했다.
이어 “감독님은 약간 ‘슬램덩크’ 북산의 안 선생님 같은 분이다. 순한 얼굴로, 모두에게 존댓말을 하시지만 그 안에 무시무시한 열정을 갖고 계시다. 양보하지 않으신다”며 “현장에서 일할 때 깊게 의논해 주신다. ‘이러면 어때요’라면서 툭 던져 주신다. 제가 차에서 내리면서 ‘나 많이 찾았냐’라고 하는 것도 감독님이 생각해 주셨다. 사실 그런 건 제가 생각해야 하는데 감독님이 생각해 주시니까 부끄러운 마음도 있다. 저에게 연기 지도를 해주셨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김의성이 연기한 오국상은 작품 내 분노유발 캐릭터 중 한 명이다. 이에 대해 김의성은 “이런 역할에는 제가 장인 급이니까 믿고 시키신 거 아닌가”라고 웃음을 보였다.
또한 김의성은 “이 역할이 아니더라도, 무슨 역할이어도 하고 싶었다. 다만 이번 역할은 단순히 맨날 하던 걸 하는 느낌은 아니었다”며 “이 영화 안에서 다들 군복을 입고 있을 때 저 혼자 잠옷을 입고 도망 다닌다면 돋보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굉장히 긴박한 상황에서의 공기의 흐름도 이 사람이 나올 땐 느리고 하찮아진다. 그런 부분이 재밌었다. 이렇게까지 관객분들이 좋아해주실 줄도 몰랐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와 함께 김의성은 “오국상은 ‘악인’보다는 ‘약인’이다. 약한 인간이다. 사실 스스로 악하다고 생각하고 연기할 순 없다. 저는 저를 좋아한다. 욕망이 강한데, 그 욕망이 도덕을 이기는 순간이 많은 삶인 거다. 오국상은 겁이 많은데, 그 겁이 도덕을 이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의 봄 김의성 인터뷰 / 사진=안컴퍼니 제공 |
다만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벌어진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만큼, 작품에 임하는 배우들로선 어느 정도 무게감을 느끼고 있을 법도 하다.
그러나 김의성은 “이 작품은 그냥 역사의 한 장면을 다룬 이야기다. 다큐멘터리도 아니다. 게다가 김성수 감독님이 만드신 거라 너무 즐겁게 참여했다. 부담감은 없었다”며 “이 인물에 대해서 역사적인 인물로 생각하고 깊이 탐구하진 않았다. 나무X키 정도 찾아보는 정도로 충분했다. 어차피 이 인물은 감독님과 저의 상상력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 인물이라 생각했다. 역사에 매몰되면 좁은 인간을 만들어낼 것 같았다”고 답했다.
더불어 김의성은 “작품이 예민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역사에 나와있는 헌법을 위반한 군사반란을 소재로 다룬 거고, 역사적으로 선·악이 분명하다”며 “실제로 법원에서 사형 판결까지 내려진 이야기다. 논란이 될 것이 있나 싶다. 나중에 논란이 되는 걸 보고 놀랐다. ‘군사 반란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네?”라고 말했다.
작품 자체는 무거운 역사적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현장은 그 어느 순간보다 화기애애했다. 김의성 역시 “다 뻔한, 거기서 거기인 사람들이 모였다. 주연 배우들도 그렇고 별을 달고 있는 사람들도 다 연극하던 사람들이었다. 근데 다 군복을 입으니까 반(半) 군인처럼 계급별로 행동하게 되더라”며 “처음 현장에 갔는데 육군본부 벙커 사람들이 ‘어휴 장관님 왜 이제 오셨어요’ ‘반란군한테 수모를 많이 당했습니다’라고 하더라. 회식도 많이 했는데 그때도 반란군이 오면 ‘왜 왔냐 꺼져라’라고 했다. 그만큼 배우들이 진압군과 반란군 사이에 과몰입했다”고 웃음을 보였다.
서울의 봄 김의성 인터뷰 / 사진=안컴퍼니 제공 |
그동안 김의성은 영화 ‘암살'(2015), ‘부산행'(2016), ‘극한직업'(2019)으로 세 번의 천만 기록을 달성했다. 이어 이번 ‘서울의 봄’이 천만 기록을 세우면 벌써 네 번째 기록이다.
이에 대해 김의성은 “그동안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작품 선택의 여유가 있으니까 고를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제가 아무리 좋아해도 (흥행이) 안 되는 경우도 많았다. 제가 대체로 영향력 있는 영화들을 많이 했고, 드라마도 시청률이 엄청 높았다”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김의성은 “올해도 늘 언제나와 같이 그냥 열심히 일한 한 해였다. 상반기는 일을 조금 쉬고 다른 것들을 준비하면서 지냈는데, 다른 때보다 특별한 게 없었음에도 연말에 좋은 영화가 터져줘서 한 해 마무리가 잘 된 것 같다”며 “무엇보다 올해는 제가 회사를 설립한 게 가장 큰 일이었다. ‘안 컴퍼니’라는 소속사를 만들었는데 아직은 아기 회사다. 신인 배우들도 같이 준비하고 있는데 이 회사를 어떻게 크고 멋진 회사로 만들지 저한테 주어진 과제 같다”고 말했다.
다만 김의성은 “업계 타이밍으로썬 최악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사적인 욕망이 컸다. 전부터 좋은 배우들과 같이 일해보고 싶었고, 신인들을 성장시키는 일도 해보고 싶었다. 원래 제가 좀 활발하고, 계획을 꾸미고 싶어 하는 영화인”이라며 “제가 큰 회사에 속해서 6년을 보내다 보니 영화인으로서 즐거움이 많이 없어졌다. 소속돼서 중견 배우로 있다 보니 회사에서 제가 할 대본들을 추려서 몇 개 보내주면 결정했다. 그게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배우 생활이라고 느껴졌다. 다시 활발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너무 어려운 시기지만, 잘 준비해서 좋은 시기를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전했다.
끝으로 김의성은 “저는 ‘서울의 봄’이 김성수 감독과 일한 것만으로도 저한테 모든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이 영화가 크게 성공하지 않았더라도, 120% 만족한다. 같이 있었던 현장의 순간들이 너무 좋았다. 또 감독님이랑 같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더불어 김의성은 또 다른 감독들에게 러브콜을 보내며 “우리 봉사마(봉준호 감독), 어떤 기준으로 캐스팅하는지 궁금하다. 저랑 만나자고 하길래 ‘날 어떻게 써줄까’ 했더니 정치 얘기만 하고 갔다. 박찬욱 선배와도 너무 해보고 싶고, 류승완 감독과도 해보고 싶은데 날 안 써준다.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웃음을 보였다.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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