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매체 기준에 맞춘 편집, 변질되는 코미디 본연의 ‘맛’
“아슬아슬한 선 타기는 코미디의 숙명…놀림의 미학 중요”
“인터넷 방송이 훨씬 재밌지, 요즘 누가 (공영방송을) 봐. 하지 말란 게 너무 많잖아.”(‘개그콘서트’의 코너 ‘봉숭아 학당’ 신윤승 멘트 中)
TV 속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몰락이라는 현 시대에도 부활의 움직임은 계속 시도되고 있다. ‘개그콘서트’가 휴지기에 들어간 이후, KBS는 후속 프로그램 격의 ‘개승자’를 방송한 바 있고 지난달 12일부터 ‘개그콘서트’ 방송을 재개했다. 넷플릭스에서도 ‘코미디로얄’을 지난달 28일 첫 공개했다.
업계에서 가장 주목한 건 ‘개그콘서트’의 부활이었다. 한때 20%를 육박하는 시청률을 자랑하며 20년 이상 방송한 장수 프로그램의 몰락을 겪었던 터라, 어떤 새로움을 입혀 돌아올지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연 ‘개그콘서트’는 기대 이하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익숙한 공개 코미디는 예전 그대로인데, 재미있는 유튜브 콘텐츠를 많이 접목하려고 했다”는 김상미 PD의 말처럼 숏폼 등 요즘 인기 장르를 끼워넣긴 했지만 사실상 익숙함이 주를 이뤘다. ‘개그콘서트’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봉숭아 학당’도 그대로 등장하고, 많은 출연진이 ‘개그콘서트’ 시절에 이미 활동하던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소재나 표현 면에서 예전과 다를 바 없다며 박한 점수가 이어졌다.
이런 평가 때문인지, KBS는 유튜브에 ‘개그콘서트’의 각 코너 무편집 풀영상을 게시했다. 의외로 대부분 호평일색이다. 기승전결이 있는 코너를 방송 시간이나 심의 기준에 맞춰 자르고 붙이다 보니 이 과정에서 현장의 관객과 시청자가 느낀 온도차는 커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된 것이다. 방송 매체에 등장시키기 위한 편집이 결국 신선도를 떨어뜨리고, 본연의 ‘맛’을 변하게 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꼭 방송 매체를 통한 공개 코미디가 꼭 필요할까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한 유튜브 코미디 채널 제작자 A씨는 “플랫폼의 종류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플랫폼을 말 그대로 코미디가 송출되는 채널의 차이일 뿐이다.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서 공개하는 공개 코미디가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창작의 제한이 있는 방송 매체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이번 ‘개그콘서트’의 부활을 두고 방송사 차원의 필요성에 의한 선택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KBS는 수신료 분리 징수가 결정되면서 ‘수신료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한 기로에 섰다. 실제로 KBS는 ‘개그콘서트’ 부활을 공식화하면서 “지상파에서 사라진 공개 코미디의 명맥을 이으며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할 계획”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개그콘서트’ 중단 이후 많은 코미디언이 유튜브 플랫폼을 통해 코미디의 중흥기가 다시 시작된 것처럼, 꼭 방송 매체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코미디언들의 공통적 의견이다. 이들은 ‘개그콘서트’의 방송 재개를 두고 ‘부활’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조차 섣부른 일이라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코미디언은 “아직 ‘개그콘서트’는 성공적인 ‘부활’을 했다고 말하긴 이르다. 오히려 시대를 읽고,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마지막 갈림길에 놓였다고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제약에서 자유로운 유튜브 등의 플랫폼이라고 안심할 건 아니다. 최근 넷플릭스 ‘코미디 로얄’이 자극적인 멘트로 선을 넘으면서 시청자들의 불쾌감을 불러일으킨 것이 그 이유다. 결국 코미디는 ‘눈치는 보지 않되, 선을 잘 타야 하는’ 예술인 셈이다. 아슬아슬한 선 타기는 코미디의 숙명이다.
메타코미디 정영준 대표도 여러 차례의 강연에서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꾸준히 전하고 있다. 정 대표는 “코미디는 결국 누군가를 놀리는 건데, 누군가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 불편함을 줄이거나 피해가고, 혹은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놀림의 미학’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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